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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골목시장 국밥서 태동한 ‘K푸드’… ‘전통적 한식’과는 다르게 발전[권대영의 K푸드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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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국밥, 국수 등 간단한 한 끼 음식을 팔아 ‘K푸드’ 발전의 모태 역할을 한 동네 전통시장.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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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란(本欄)에서 서양 음식과 한식의 근본적인 차이점의 하나로 선택권을 존중하는 것을 이야기했는데, ‘그러면 정의 차원에서 한식과 K푸드의 차이는 무엇이냐’고 묻는 이가 많았다. 한식의 영어 표현이 K푸드(K-food) 아니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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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이에 답을 주기 위해 2015년 식품학자, 음식학자, 영양학자, 의사들이 중심이 돼 발표한 ‘서울 선언’에서 한식과 K푸드를 규정하고 한식의 10대 특징을 선포한 바 있다. 한식은 한국인의 전통적인 식습관과 역사를 대표하는 식단(diet)으로 규정하며 영어로는 ‘Korean diet’ 또는 ‘K-diet’로 하고 한식 구성의 특징인 밥, 국, 김치, 장, 나물, 반찬, 요리 자체를 K푸드라고 말하며, 특히 이 요소 중 홀로이거나 둘 이상이 조합을 이루어 맛있는 한 끼 음식이나 정찬으로 시장화된 음식을 ‘K푸드’라고 정의했다. 굳이 K푸드를 광의의 의미로 해석하면 한식도 포함할 수 있으나 통상 말하는 K푸드는 습관과 본질을 포함하지 않은 협의의 K푸드로 이해한다. 즉, 국밥, 비빔밥, 김밥, 설렁탕, 냉면, 불고기, 삼겹살, 떡볶이, 호떡 등이 포함되며 요즈음은 라면, 자장면까지도 K푸드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남도 음식, 백반과 같은 정찬을 빼는 것은 아니다.

조심해야 할 것은 K푸드의 역사가 우리 전통 한식의 역사를 대변하는 것으로 호도하는 일이다. K푸드의 역사는 사실 오래전 5일장을 포함한 전통시장에서 이루어져 왔다. 대부분 식량을 자급자족해 살아오다 옹기나 도기, 칼, 가위, 삽, 곡괭이, 호미 등 농기구가 농사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하고 이때 농산물을 사고팔면서 시장이 활성화됐다. 20세기 초만 해도 우리 아버지들이 지게를 지고 시장에 갈 땐 먼 길이기 때문에 대부분 먹을 것을 싸가지고 가서 중간에 허기를 때우거나 시장 가까이에 있는 친척집에 들러 밥을 얻어먹고 돌아왔다. 당시 시장 가까이 사는 일가집(친척집)은 장날만 되면 으레 친척이 올 것이라고 생각해 밥을 많이 해 놓고 기다렸다. 어떤 시장에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이 일상이 된 경우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나라가 넘어가고 살기가 힘들어진 와중에도 일본으로부터 시장주의 개념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시장 한 골목에 천막을 치고 국밥이나 국수를 팔기 시작했다. 이러한 전통시장의 K푸드는 6·25전쟁 당시 피란민이 몰려든 부산에서 발전하기 시작해 전쟁 이후 먹고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서울로 몰려들기 시작한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초에 본격적으로 탄생하고 발전해 왔다. 특히 이북에서 아무것도 갖고 오지 못한 실향민들은 먹고살기 힘들어지니까 악착같이 살려고 동네나 시장 골목에서나 작은 가게에서 한 끼 음식을 배고픈 사람들에게 팔기 시작했는데, 그때 K푸드가 본격적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발전하다 1980년대를 거쳐 미식가들이 탄생하면서 대표적인 K푸드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물론 K푸드가 한식에 기반했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한식의 탄생 및 발전과 K푸드의 탄생은 완전히 다른 궤도를 밟았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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