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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Who] 피격 당해 중상 입은 슬로바키아 총리 로베르트 피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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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59)가 15일(현지 시각) 수도 브라티슬라바 외곽에서 지지자들과 만나던 중 복부 등에 총을 맞아 생명이 위중한 상태다. 피초 총리는 병원에 이송돼 응급 수술을 받았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번 총격은 암살이 목적이다. 지난 수십 년간 유럽 지도자에게 가해진 공격 중 가장 심각한 수준인 이번 공격에 대해 유럽 내 정치가 점점 양극화하면서 정치적 논쟁이 폭력적으로 변질됐다는 우려 제기된다.

뉴욕타임스(NYT) 등이 전한 현장을 담은 비디오를 보면 피초 총리는 브라티슬라바 북동쪽으로 150㎞ 떨어진 핸들로바 지역의 한 광장에서 지지자들을 만나고 있었다. 이때 한 남성이 피초 총리에게 다가와 총을 쐈다. 첫 번째 총알이 피초 총리의 복부를 관통하자마자 피초 총리는 허리를 숙였고, 총격이 이어지면서 쓰러졌다. 이에 경호원들이 피초 총리를 즉각 차량으로 이동시켰다. 용의자는 71세의 시인으로 현장에서 체포됐다. 피초 총리는 이날 각료회의를 주재한 뒤 시민을 만나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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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현지 시각)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 외곽에서 로베르트 피초 총리(59)가 기자회견하는 모습. 회견 직후 총리는 총격을 당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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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계 출신, 좌파에서 우파 정치인으로 변신

피초 총리는 슬로바키아 서부의 작은 마을인 토폴차니에서 지게차 운전사와 상점 직원의 아들로 자랐다. 그는 군복무 시절 수사관으로 활동했고, 사형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주로 슬로바키아 법조계에서 일했다. 그러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체코슬로바키아(슬로바키아의 옛 국가명인)의 공산주의를 종식한 비폭력 시위 ‘벨벳 혁명’을 거치면서 좌파 정당인 민주좌파당에 가입해 정계에 들어섰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스메르(Smer)당을 창당할 무렵 우파로 이동했다. 스메르는 명목상 좌파지만, 이민과 문화 문제는 우파적 시각을 보인다.

피초 총리는 2006~2010년, 2012~2018년까지 두 차례 총리를 역임한 뒤 지난해부터 세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피초 총리는 2018년 7월, 정부의 부패를 폭로하던 언론인 얀 쿠치악과 그의 약혼자 마르티나 쿠스니로바의 살해 사건에 대한 대규모 시위 여파로 총리직에서 사임했다. 당시 시위대는 정부의 사임과 새로운 선거를 요구했다. 스메르는 2020년 선거에서 부패 척결을 공약하는 상대 정당에 패했고, 분열됐다. 하지만 피초 총리는 2023년 가을 선거에서 민족주의, 관대한 복지 프로그램 등을 약속하면서 약 23%의 득표율을 얻었고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그렇게 피초 총리는 복귀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피초 총리를 “수천만 유럽인들 사이에 생성된 분노의 물결을 타고 지난 10년 동안 등장한 민족주의·포퓰리즘 정치인의 전형적인 인물”이라며 “피초 총리는 언론, 비정부기구(NGO), 검찰을 공격하는 것으로 유명한 건강하고 뻔뻔스러운 정치 베테랑”으로 묘사했다.

◇ 푸틴 “용감하고 강인한 마음을 가진 사람”…親러 인사

피초 총리는 친(親)러 인사다. 최근 몇 년간 피초 총리에 대한 국제적 관심 역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슬로바키아의 이웃이자 파초 총리와 같은 친러 지도자인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의 관계에 집중돼 있다. 피초 총리는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협력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반대한다. 유럽연합(EU) 내 주류와 정반대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피초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모든 군사 지원을 중단했다. 다만 비군사적 지원은 이어가는 중이다. 이 같은 결정은 여타 EU 회원국의 분노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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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59)가 15일(현지 시각)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북동쪽으로 150㎞ 떨어진 핸들로바 지역에서 각료회의를 주재한 뒤 시민을 만나던 중 총격 사건이 발생하자, 피초 총리의 경호원들이 용의자 체포에 나선 모습. /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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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23년 3월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슬로바키아인의 51%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책임이 서방이나 우크라이나에 있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초 총리는 이같은 국내 정서를 이용해 전쟁의 책임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동일하게 갖고 있다는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이를 반영하듯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과거 피초 총리를 “용감하고 강인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지난 4월, 피초 총리의 동맹자인 피터 펠레그리니가 슬로바키아 대선에서 승리했다. 펠레그리니 대통령 당선인 역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및 재정 지원을 반대한다. 이로 인해 중부 유럽에서 러시아에 우호적인 정치 세력이 강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슬로바키아 내부에선 피초 총리가 언론의 독립성을 훼손했다는 비판 여론이 있다. 또한 피초 총리의 비판 세력 일부는 그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으며, 슬로바키아를 소련의 일부였던 시절로 되돌리려 한다고 우려한다.

피초 총리는 연간 5000유로 이상의 국제 자금을 받는 시민사회단체를 ‘외국 지원을 받는 조직’으로 분류하는 법안 마련을 준비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슬로바키아는 이 법안이 “당국에 비판적인 시민사회단체를 낙인찍고, 중요한 업무를 방해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한다. 피초 총리는 고위 정치인의 부패에 초점을 맞춘 특별검찰청을 폐쇄하려고 했고, EU는 슬로바키아에 할당된 일부 자금을 동결할 가능성을 언급 중이다.

정미하 기자(viva@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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