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기환송심을 맡은 고등법원이 앞서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취지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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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농어촌공사가 전직 공사 직원 3명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먼저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원용해 "상고심으로부터 사건을 환송받은 법원은 그 사건을 재판함에 있어서 상고법원이 파기이유로 한 사실상 및 법률상의 판단에 관해 환송 후의 심리 과정에서 새로운 주장이나 입증이 제출돼 기속적 판단의 기초가 된 사실관계에 변동이 생기지 않는 한 이에 기속된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환송판결의 파기이유는 환송 전 원심이 피고들별로 승진 전후 실제로 수행했던 업무 등을 비교해 각 근로의 가치가 실질적으로 다른지에 관해 판단했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임이 분명하다"라며 "그런데 환송 후 원심은, 피고들이 승진 전후 실제로 담당해 수행한 구체적 업무를 비교하지 않은 채, 승진 전 직급에서 담당 가능한 다양한 업무들의 평균 업무난이도와 승진 후 직급에서 담당 가능한 다양한 업무들의 평균 업무난이도를 비교해 그 업무의 직무가치가 동등하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봐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결국 환송 후 원심이 환송판결의 파기이유와는 다른 기준으로 승진 전후 제공된 근로의 가치를 판단한 것은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반하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라며 "따라서 원심판결에는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농어촌공사는 2003년도부터 2011년도까지 승진시험의 문제출제 및 채점 등을 외부업체에 위탁해 치렀는데, 2013년 12월 앞서 실시된 승진시험에서 일부 직원들이 업체로부터 시험문제와 답을 제공받아 합격하고 그 대가를 지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2014년 1월 충남지방경찰청은 피고들을 포함한 공사 직원 62명이 승진시험에서 이 같은 부정행위를 했다는 수사결과를 통보했다.
이후 공사는 인사규정에 따라 피고들에 대해 파면, 해임 등 징계처분을 내리고 승진 인사발령을 취소했다. 그리고 비리에 연루된 직원 24명을 상대로 승진으로 인해 수령한 급여상승분과 연차수당, 인센티브 등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하라는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농어촌공사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승진자들이 승진에 따라 변경된 업무를 수행했고, 그 대가로 급여를 받았으니 부당이득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1심 재판부는 "피고들은 해당 승진일부터 승진취소일인 2014년 2월 14일까지 3급 직원으로서 해당 업무를 수행했고, 피고들이 원고에게 제공한 근로의 금전적 가치는 승진결격사유가 없는 원고 소속 3급 직원이 피고들과 동일한 업무에 동일한 기간 동안 근무해 온 경우 원고로부터 지급받게 될 근로대가의 총액 상당이라고 봄이 타당하다"며 "비록 피고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승진해 이 사건 각 승진발령이 무효라고 하더라도, 피고들이 3급 직원으로서 해당 업무를 수행하고 원고로부터 급여를 지급받은 이상, 피고들이 '법률상 원인 없이' 원고의 재산으로 인해 부당한 이익을 얻었다거나 그로 인해 원고에게 어떠한 손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22년 8월 이 같은 2심 판결에 잘못이 있다며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당시 재판부는 "승진발령이 무효임에도 근로자가 승진발령이 유효함을 전제로 승진된 직급에 따라 계속 근무해 온 경우, 승진 전후 각 직급에 따라 수행하는 업무에 차이가 있어 승진된 직급에 따른 업무를 수행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임금이 지급됐다면, 근로자가 지급받은 임금은 제공된 근로의 대가이므로 근로자에게 실질적인 이득이 있다고 볼 수 없어 사용자가 이에 대해 부당이득으로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그러나 승진 전후 각 직급에 따라 수행하는 업무에 차이가 없어 승진 후 제공된 근로의 가치가 승진 전과 견주어 실질적 차이가 없음에도 단지 직급의 상승만을 이유로 임금이 상승한 부분이 있다면, 근로자는 그 임금 상승분 상당의 이익을 얻었다고 볼 수 있고, 승진이 무효인 이상 그 이득은 근로자에게 법률상 원인 없이 지급된 것으로서 부당이득으로 사용자에게 반환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여기서 승진 전후 제공된 근로의 가치 사이에 실질적으로 차이가 있는지는 제공된 근로의 형태와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 보직의 차이 유무, 직급에 따른 권한과 책임의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이고 객관적으로 평가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원심으로서는 피고들의 승진 전후 각 직급에 따른 업무에 구분이 있는지, 피고들이 승진 후 종전 직급에서 수행했던 업무와 구분되는 업무를 수행함에 따라 제공한 근로의 가치가 실질적으로 다르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를 살핀 다음, 그에 따라 이 사건 급여상승분이 부당이득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했어야 한다"라며 "그럼에도 원심은 이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이 사건 급여상승분은 승진에 따른 업무를 수행한 데에 대한 대가로 지급됐으므로 피고들에게 귀속돼야 한다고 봤다"고 지적했다.
승진자가 승진 전후에 수행한 구체적 업무가 무엇인지 비교해서 따져보라는 것이 대법원의 요구 사항이었다.
그런데 광주고법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승진자들의 실제 업무가 아니라, 승진 전 직급과 승진 후 직급에서 수행할 수 있는 다양한 업무의 평균 난이도를 비교했다. 이후 직무 가치에 실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농어촌공사의 청구를 재차 기각했다.
당시 재판부는 승진자들이 받은 급여는 직무에 따라 지급된 부분과 직무능력에 따라 지급된 부분이 불가분하게 혼재된 점, 같은 직무여도 구체적으로 수행하는 업무는 제각각인 점 등을 고려해 평균을 산출해 비교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들이 승진 전후 수행하는 업무의 직무가치가 동등하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라며 "따라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급여상승분은 직무급 상승분과 직능급 상승분이 불가분적으로 혼재돼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뿐, 그중 직무급 상승분과 명확히 구분되는 직능급 상승분의 존부 및 범위가 구체적으로 입증됐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 사건 급여상승분에 대한 부당이득이 성립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파기환송심의 판단은 대법원의 파기환송의 취지에 따르지 않은 것으로 위법하다며 다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하며 지적한 대로 피고들이 승진 전후에 수행했던 구체적인 업무를 비교해보지 않고, 승진 전 직급과 승진 후 직급의 평균적인 업무 난이도를 비교해 서로 다르다고 판단한 것은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반한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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