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자금 노리는 검은손]
<하> 노인사기 대책 '발등의 불'
고령층 신종 금융사기 급증에도
일반인 대상 범죄와 똑같이 취급
美, 전담법 제정·신속대응반 운영
日은 피싱예방 전화기 구입 등 지원
韓도 '노인금융피해방지법'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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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금융·신종 사기가 급증하고 있지만 이에 대응할 우리나라의 전담 조직·법률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베이비붐 세대가 노동시장에서 은퇴하며 노후 불안에 시달리는 고령층이 크게 늘어난 만큼 노인 사기 범죄에 대한 맞춤형 대응책이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1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유사수신 민원 피해자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 연령대는 60대 이상(36.5%)이다. 이는 30대(18.9%)와 50대(17%)의 약 2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60대 이상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2022년 전체의 46.7%에서 지난해 36.4%로 그 비율이 줄었지만 피해 금액은 673억 원에서 704억 원으로 4.6% 증가했다.
문제는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금융 사기 범죄에 대한 ‘족집게’식 처벌 조항이 없다는 점이다.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각종 피싱 등 금융 사기 범죄는 ‘전기통신금융 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을 적용받을 뿐 별도의 법 적용이 없는 실정이다. 금융기관에서 고령자를 대상으로 불완전한 상품을 판매할 경우에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적용되고 간병인·가족들이 노인의 재산을 임의적으로 사용하는 등 금융 착취에 대해서는 ‘노인복지법’이 적용된다.
이 중 노인복지법만이 고령층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법이다. 노인복지법은 노인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노인 학대’의 한 종류로 분류하고 ‘노인을 위해 증여 또는 급여된 금품을 그 목적 외의 용도에 사용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노인복지법에 따르면 이를 어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을 개정하는 방향으로 관련 논의가 진행된 국회에서도 해당 법안은 상임위에 발이 묶여 있는 상황이다.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2년 고령 금융소비자 보호를 골자로 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고령 금융소비자를 65세 이상으로 정의하고 과징금 부과 시 피해자가 고령 금융소비자인지 여부를 고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2년 넘게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또 별도의 법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아 정기적인 노인 대상 각종 사기 실태조사 발표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고령층 대상 사기 범죄에 대한 정부 대책 역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2020년 변화하는 금융 환경 속에서 고령층이 겪는 불편을 해소하고자 ‘고령친화 금융 환경 조성 방안’을 발표했다. 특히 고령층 금융 착취 방지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금융 사기 대응을 강화하고 ‘노인금융피해방지법(가칭)’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위원회는 당시 노인금융피해방지법에 금융상품에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 차별하거나 금융상품을 불완전판매하는 것을 규제하는 방안을 도입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 노인금융피해방지법 제정은 사실상 검토가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당시에도 필요시 (해당 내용을)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 하위 규정 제정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면서 “금융기관의 고령층 서비스 제공에 별도의 비용이 수반될 수밖에 없고 노인들의 금융 이해도 편차가 크기 때문에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기존 법 체계를 토대로 정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해외에서는 노년층 대상 금융 사기에 대해 심각성을 인지하고 전담 법률·조직을 제정하고 노인 사기 범죄와 관련한 실태조사 결과를 매년 발표하는 등 활발한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미국은 2018년 금융기관이 동의 없이 사기가 의심되는 거래를 직접 중지시키고 금융 당국에 보고하도록 하는 고령자안전법(Senior Safe Act)을 제정했고 미국은퇴자협회(AARP), 연방거래위원회(FTC), 미국 법무부·재무부 등이 참여한 고령층 사기 방지 자문단을 설치하는 ‘노인 사기 방지 법안(Stop Senior Scams Act)’이 2022년 의회를 통과했다. 자문단은 4개 위원회를 구성해 고령층 대상 사기를 예방하고 최신화된 기술을 공유하는 교육 자료를 만들어 배포 중이다.
미국 법무부는 2019년부터 고령층 사기를 전담으로 하는 ‘범국가적 노인 사기 신속대응반’을 운영하는 데 이어 전국적인 노인 사기 연락망을 가동하고 있다.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2020년 10만 5301명에 달하던 60세 이상 사기 피해자가 2022년 8만 8262명으로 약 13% 감소하는 효과를 거뒀다.
2018년 설립된 FBI 인터넷범죄신고센터 복구자산팀은 금융기관과의 연계로 신고가 들어간 개인의 자금을 빠르게 동결해 피해를 최소화한다. FBI는 지난해 60세 이상 피해자가 신고한 금융 사기 626건에 대해 5817만 달러(약 795억 원)의 피해액이 발생했고 이 중 3207만 달러(약 438억 원)를 동결했다고 밝혔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의 경우 보이스피싱 등 ‘특수 사기’ 피해자 중 65세 이상의 고령자가 약 80%를 차지하는 등 피해가 막심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2019년 ‘오레오레 사기(부모에게 자식인 척 금전을 취하는 사기) 등 대책 플랜’을 발표했다. 이후 일본 경찰청은 65세 이상 고령층에게 자동 녹음 기능이 부착된 보이스피싱 예방 전화기 구입비를 보조하고 일정 기간 ATM 송금 실적이 없는 은퇴자의 송금·인출 한도를 0엔으로 설정하도록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처럼 특별법을 제정해 발 빠르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근영 세명대 법학과 교수는 “노인은 사기 피해의 주요 대상자 중 하나인데 한국에서 노인 사기에 대한 법률이 따로 없이 일반인 사기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문제”라면서 “한국은 기본법인 노인복지법을 중심으로 대처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다만 기본법의 개정은 적절한 시기에 입법이 되지 않아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병리 현상에 대한 법적 대응을 늦게 해 많은 피해자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민주 기자 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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