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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후공정을 담당하는 한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반도체 성장세가 인공지능(AI)에 쏠린 탓에 업황 반등의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지만, 정작 AI 관련 경쟁력을 구축하기에는 국내 반도체 생태계의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의미다. 첨단 패키징 훈풍으로 후공정 영역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에도 성장세가 둔화된 현실을 토로한 것이다.
국내 반도체 후공정 업계는 시스템반도체 매출이 주력인 글로벌 업체와 달리, 메모리 매출에 의존하는 기형적인 매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대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0년대 이후 몇 차례 시도됐던 팹리스 부흥이 실패로 끝나면서 이러한 구조가 고착됐다.
그러던 와중 반도체 후공정 업계에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생성형 AI로 촉발된 첨단 패키징 분야가 주인공이다. 기존에는 첨단 패키징 영역이 크지 않았던 만큼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TSMC와 그 하위 생태계가 대부분 물량을 소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AI칩 수요가 급격히 늘면서 TSMC의 공급에도 한계가 생겼고, 이를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나면서 국내 업계에도 기회가 찾아오게 됐다.
후공정 업체별로 자체적인 기술 개발과 해외 진출 시도는 2020년대 초반부터 이어져 왔다. 네패스가 전력관리반도체(PMIC) 분야에서 팬아웃웨이퍼레벨패키지(FO-WLP)·패널레벨패키지(FO-PLP) 등 첨단 패키징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앨비세미콘이 디스플레이구동칩(DDI) 매출 의존 탈피를 위해 각종 인증 확보 추진과 시스템반도체 패키지·테스트 영역 확대에 나섰다. SFA반도체·하나마이크론도 메모리 편중도를 낮추기 위한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 대비 가시적인 성과는 다소 미진하다. 해외는 이미 생태계가 구축돼 있어 진입 장벽이 높아서다. 해외 기업 공급망에 진입하더라도 본격적인 성과를 내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로부터 떨어지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관련 낙수 효과가 미비하다. 양사가 아직 HBM에 대한 첨단 패키징 영역을 자체적으로 소화하고 있어 당장 관련 수혜를 보기 어렵다는 관측도 존재한다.
일부 업체는 첨단 패키징 설비투자를 위한 자금 지출 여력조차 부족하다고 토로하고 있다. 아직 첨단 패키징 기술력이 여물지 않은 데다, 기업들의 자체적인 투자 여력도 수천억원대에 머무르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글로벌 3대 외주 패키지·테스트 전문 업체(OSAT)인 ASE·앰코·JCET 등은 미국·중국·대만 등지에 매년 조 단위 투자를 쏟아부으며 관련 경쟁력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내 OSAT의 경쟁 열위가 지속된다면 국내 반도체 업계 자체의 경쟁력 저하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모든 투자를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만큼, 관련 생태계가 구축돼야만 국내 반도체 산업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후공정 업계는 투자 여력은 물론, 미진한 생태계 및 메모리 중심 매출에 따른 잦은 인력 유출이 지속되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려면 후공정 생태계가 인력을 지킬 수 있도록 안정화되는 한편, 전략적인 재정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의 시선은 반도체 후공정 육성을 선언한 정부의 지원책에 쏠리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0일 HPSP를 찾아 "소재부품장비 기업, 팹리스, 제조시설 등 반도체 전 분야의 설비투자 및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10조원 이상 규모 반도체 지원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라는 계획을 밝히면서다.
이미 AI 시대는 눈앞까지 찾아왔고, 첨단 반도체 칩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글로벌 경쟁전은 개전의 막을 올렸다. 더군다나 미국, 일본, 대만 등이 AI칩·첨단 패키징 산업 육성에 열을 올리면서 산업 육성은 더 이상 개별 기업의 몫이 아니게 됐다. 정부가 K-칩스법 등 실효성이 미비한 반도체 정책으로 국내 반도체 산업 지원 기회를 놓쳐왔던 만큼, 보다 실효성 있고 빠른 지원 정책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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