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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정치권에서 엉뚱한 문제로 한국의 개고기 문화가 또 한 번 논란이 됐습니다. 개고기 발언은 미국 내 비판을 불러일으켰고 해당 글은 삭제됐습니다. 해프닝으로 끝난 셈이지만 이번 일에 관해 글을 쓰게 된 건 개고기를 둘러싼 미국 사회의 논의가 적절한 것이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발단은 이랬습니다. 공화당 소속인 크리스티 노엄 사우스다코타 주지사는 새로 출간한 자신의 회고록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난 적이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또 공격성을 보이는 개를 총으로 쏴 죽인 일이 있다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김 위원장과 만났다는 건 사실이 아니었고 이를 본 민주당 소속 재러드 모스코위츠 연방 하원의원이 두 일화를 엮어 SNS에 비꼬는 글을 올렸습니다.
개고기 하면 '한국'?...'인종적 편견' 비판
크리스티 노엄 사우스다코타 주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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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코위츠 의원은 노엄 주지사의 회고록 관련 방송 인터뷰 클립을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리면서 "그녀(노엄 주지사)가 김정은과 개를 먹길 원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라고 적었습니다. 이후 정치권 등에서 비판이 제기되자 모스위코츠 의원은 몇 시간 뒤 글을 삭제했습니다. 한국 등에서 급속히 퇴조하고 있는 개 식용 문화를 연상시켜 인종적 편견을 조장했다는 겁니다.
같은 민주당 소속인 한국계 의원들도 성명을 내고 "우리는 공화당의 극단주의에 맞서는 우리 동료에게 감사하나 그 과정에서 유해한 고정관념을 영구히 지속시킬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한국에 대한 비하 섞인 동료 의원의 발언을 지적한 것으로, 우리에게는 고마운 일입니다. 모스코위츠 의원은 현지 언론에 "오해를 사고 더 넓은 범위의 공동체의 마음을 상하게 하길 원치 않았다"며 "나는 이런 고정관념들을 규탄하고 그것들을 조정하길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분명 '개고기' 하면 한국을 떠올리는 식의 고정관념은 현시점에 맞지 않습니다. 19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대대적인 개고기 추방 운동이 일었지만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개고기를 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애를 쓰고 찾으면 없지는 않겠지만 주변에서 개고기를 먹는 사람을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찾는 사람이 없으니 파는 곳도 줄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걸로 된 걸까요?
참고로 저는 개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혐오 식품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굳이 먹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먹지 않았다고 해서 먹었던 사람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번 미국 내 논란에서 개고기 문화는 유해한 걸로 간주됐습니다. 나라의 이미지를 손상한다는 점에서 보자면 유해하다고 할 수 있지만 개고기 문화 자체가 유해한 것인지는 좀 따져볼 문제입니다.
천자가 먹고 제사에 올렸던 개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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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개고기는 동아시아에서 널리 식용으로 쓰였습니다. 중국에서는 천자가 계절에 따라 먹는 음식이자 제사에 올리던 음식이었습니다. 그냥 먹을 게 없어서 먹던 고기는 아니었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식용으로 널리 쓰였고 뇌물로도 쓰일 만큼 인기가 좋았습니다. 저명한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과 초정 박제가도 개고기 마니아였다고 합니다.
서구의 애견 문화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개고기는 이제 혐오식품이 됐습니다. '개'라는 단어보다 '반려견'이라는 표현이 각종 매체에서 더 일반화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과거 개를 가축으로 키워 집도 지키게 하고 식용으로도 썼지만 요즘 가족이나 다름없는 반려견을 잡아먹겠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개고기 문화를 '유해하다'고 규정하는 서구의 인식에 동의하는 게 정답일까요?
사실 반려동물이 개만 있는 건 아닙니다. 돼지를 키우기도 하고 심지어 메추리를 집에서 키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꼭 반려동물이 아니라도 지능이 뛰어난 인간과 교감할 수 있는 동물을 먹을 수 있느냐고 할 수 있지만 소가 도살장에 끌려갈 때 모습을 묘사한 글들을 보면 이 또한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식탁에 오른 고기는 맛있지만 어떤 동물이건 식용으로 도축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괴로운 일입니다.
개고기를 지켜야 할 전통문화라고 할 생각도 없지만 '유해한 문화'라는 서구의 비난에 맞장구치는 게 옳은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문화상대주의는 그리 거창한 게 아닙니다. 각 문화권에서 각자 필요에 따라 선택하고 시대에 맞춰 바꿔나가는 걸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입니다. 편견을 깨야 한다면 '한국=개고기'에 국한시킬 게 아니라 '문명화=서구식 가치관'이라는 고정관념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남승모 기자 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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