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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국가구조금 받으면 살인자 감형…유족은 두번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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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상 정당한 권리…구상권 청구 절차에 따라 변제
전문가들 "악용 사례 많아, 양형기준 재정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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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피해자 보호·지원을 위해 국가가 지급하는 구조금이 피고인 주요 감형 사유가 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법원이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으로 판단하고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유족들은 울분을 토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구상권 청구 절차에 따른 변제일 뿐이기 때문에 양형에 반영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사진은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가해자 최원종 /임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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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ㅣ조소현 기자] # 춘천지법 영월지원 제1형사부는 지난 1월 여자친구를 흉기로 190여 차례 찔러 살인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17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징역 25년을 구형했지만 8년이 줄었다. 재판부는 A 씨가 유족에게 지급된 구조금 4200여만원을 변제한 점 등을 정상 참작했다.

범죄피해자 보호·지원을 위해 국가가 지급하는 구조금이 흉악범죄자 주요 감형 사유가 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법원이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으로 참작해 유족들은 울분을 토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양형 반영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생명·신체를 해하는 범죄로 사망하거나 다친 피해자 또는 유족은 국가 구조금과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구조금에는 유족구조금과 장해구조금, 중상해구조금 등이 있다. 치료비와 생계비, 장례비, 주거지원, 학자금 등 경제적 지원도 받을 수 있다. 구조금과 치료비는 국가가 먼저 지급한 뒤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지급된다.

문제는 국가가 구상권을 행사해 가해자가 채무를 변제하면 법원은 이를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참작하는 사례가 잇따른다는 것이다. 구조금 등은 헌법상 피해자 및 유족들의 정당한 권리인데도 감형 우려로 유족들은 구조금 받기를 주저하고 있다.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피해자 고 김혜빈 씨 어머니는 "항소심 1차 공판 때 최원종 측 변호사가 혜빈이 병원비를 두고 '최원종이 피해자를 위해서 노력했다'고 주장했다"며 "판사와 검사가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고 토로했다.

최원종 측은 지난달 24일 수원고법 형사2-1부 심리로 열린 살인 등 혐의 항소심 첫 재판에서 재판부에 감형을 요청했다. 최원종 측은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며 "보험사를 통해 일부 피해를 보전하며 금액을 지급한 내역도 참고자료로 제출한다"고 했다.

김 씨 어머니는 사건 직후였던 지난해 8월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치료비 300만원가량을 지원받았다. 당시 담당 검사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70%를, 검찰청에서 30%를 지원한다"며 "나중에 최원종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치료비 지원이 추후 최원종 측에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될 수도 있다는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안성훈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구조금과 치료비 등 지원은 국가의 의무로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것"이라며 "검찰의 구상권 청구에 따라 가해자가 지급했다고 법원이 '피해자를 위해 노력했다'고 보는 관례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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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지난해 8월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이후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범행을 예고하는 글이 잇따르면서 범행 예고지 중 한 곳인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 경찰들이 순찰을 돌고 있는 모습 /이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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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국가가 범죄피해자 및 유족에게 지급한 구조금과 치료비 등을 양형기준 감형인자에서 제외하는 등 양형기준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법원 양형기준에는 '실질적 피해회복'을 특별감경요인, '상당한 피해회복'을 일반감경요인으로 인정한다. 구조금 구상권을 받아들인 것도 피해회복 범주에 포함키는 판결이 등장해서 문제다. 이는 피고인이 법적 절차에 따라 채무를 갚았을 뿐, 자발적으로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 노력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안 연구위원은 "구상권을 청구해도 안 갚는 사람도 많다"면서도 "설사 피고인이 갚았더라도 내기 싫은 돈을 억지로 낸 것이지, 피해자를 위해 노력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윤해성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과거에는 '피해를 보전해주고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고 보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악용되는 사례가 더 많은 것 같다"며 "보상했다고 감형하는 것은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며 법감정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김 씨 어머니는 "법에 명시된, 받아야 할 것을 받았을 뿐인데 갑자기 이를 가해자가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고 보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가장 걱정되는 게 이 당연한 권리를 왜곡시키고 변질시키는 판결문이 남는 것"이라며 "서현역 사건처럼 큰 사건도 치료비 때문에 감형됐다고 하면 앞으로 범죄피해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냐. 나쁜 선례가 남을까 두렵다"고 호소했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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