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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영원한 주인공도, 관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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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인기 따라잡은 배드민턴 동호인들의 ‘셔틀콕 잔치’…뷰파인더 뒤에서 숨죽이던 기자도 카메라 앞으로

한겨레21

고양특례시장기 생활체육 배드민턴대회 혼합복식 경기에 출전한 선수가 셔틀콕을 향해 뛰어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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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오른 이들을 향해 객석에서 박수를 보낸다. 그라운드에서 달리는 이를 보며 스탠드에서 응원의 함성을 지른다. 카메라 렌즈 앞에 서기보단 뷰파인더 뒤편에서 피사체를 바라본다. 많은 이가 그리한다.



‘고양특례시장기 생활체육 배드민턴대회’가 2024년 4월27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고양체육관에서 열렸다. 대회 이름처럼 안세영, 천위페이, 서승재, 강민혁이 등장하는 엘리트 경기가 아니라 일상 속 배드민턴 동호인들의 잔치다.



대한배드민턴협회가 파악한 전국의 배드민턴 동호회는 3161개다. 동호인 선수는 8만2827명에 달한다. 2024년 4월 현재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축구동호회는 3500개(여성동호회 152개 포함)에 선수는 11만8184명이다. 조기축구로 생활 속에 자리한 축구를 배드민턴이 바짝 따라잡았다.



고양시장기 대회에는 17개 클럽 12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개회식에 참여한 각 클럽 선수들은 올림픽보다 다채로운 퍼포먼스를 펼쳤다. 검은 옷의 무장경호원들을 앞세운 덕이클럽, <강남스타일> 노래에 맞춰 말춤을 추며 들어선 풍동클럽, ‘오늘의 주인공은 나야~나!’라고 적은 펼침막을 선보인 행신클럽, 어깨동무한 채 <나는 행복합니다>란 노래를 부른 위시티클럽 등 저마다의 장기로 축제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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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모양의 머리띠를 한 채 개회식에 들어선 별누리클럽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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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인공은 나야~나!’란 펼침막을 앞세운 행신클럽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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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시티클럽 선수들이 <나는 행복합니다>란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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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을 카메라 뒤편에서 숨죽여(카메라가 흔들리지 않으려면 숨을 참아야 함) 일한 필자도 함께했다. 2011년 국회를 출입할 당시 동료 기자의 꾐으로 국회 본관 방호실에서 배드민턴에 입문했다. 대피공간으로 쓰여 방호실이라 부른 곳은 천장은 높지 않지만 바닥에 마루가 깔려 있어, 점심시간이나 일과 뒤에 배드민턴, 탁구, 농구 등의 운동공간으로 쓰였다. 대기시간이 많은 업무 특성상 짬짬이 하는 운동은 제법 활력소가 됐다. 돌발 상황이 벌어져 정장 윗옷에 반바지 차림으로 카메라를 멘 채 달린 일은 딱 한 번뿐이었다. 두 번이던가?



2023년 퇴직한 뒤 정년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대회 출전을 위해 2024년 1월 동네 동호회인 위시티클럽에 가입했다. 이곳에서 철인 3종 경기를 수십 차례 완주한 하상석(63) 철인을 만나 복식 파트너가 됐다. 배드민턴 동호인 경기는 나이에 따라 20~70대로 나누고 또 경기력에 따라 같은 나이대 안에서 S, A, B, C, D조로 나눠 치러진다. 일정 숫자 이상의 팀이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해야 한 단계 승급할 수 있다.



필자가 출전한 60대 전반부(60~64살) D조엔 모두 8팀이 참가했다. 배드민턴 경력 14년차 중고 초보와 4년차 철인이 한편이 된 우리 복식조는 예선 세 경기와 결승에서 이기고 우승했다. 우승 상품 고급 양말 한 켤레보다 빛나는 C조 승급 영예를 안았다. 덕분에 카메라 앞에도 섰다.



‘라떼는’ 초등학교 학급에 오락부장이란 직책이 있었다. 수업에 지친 선생님이 오락시간을 명하면 오락부장 사회로 급우들이 장기자랑을 하곤 했다. 교단에 나와 장기를 선보인 친구가 다음 출연자를 지명하는 릴레이 방식이 흔히 쓰였다. 스스로 나서는 공연자도 있지만, 대개는 노래를 마친 친구에게 눈을 부라리며 겁주거나 아예 먼 산을 보며 눈을 피했다.



우리 삶도 그러하다. 모두가 주인공일 수 없고, 언제나 관객일 수도 없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동식물이 옷을 갈아입듯, 때가 되면 무대에 올라야 한다. 이를 위해 분장도 하고 대사도 외운다. 언제까지 무대에 머물 수도 없다. 역할을 마치면 다른 이에게 자리를 내주고 지켜보며 응원한다. 배우도 선수도 권력자도 예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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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장기 60대 D조 결승전에서 승리한 필자(왼쪽)와 하상석 선수가 점수판을 든 채 기뻐하고 있다. 최성숙 심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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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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