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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국가가 상속받냐” 세금 폭탄 한국서 탄생했다면…하이네켄, 4번 승계 꿈도 못 꿔 [그 회사, 한국 기업이었다면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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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한국경제인협회 공동기획

하이네켄 오너가의 상속세 시뮬레이션 해보니

네덜란드 6400억 vs. 한국에선 10조8700억

네덜란드, 상속세 낮고 기업 승계 시 공제 혜택

한국, OECD 최고 세율에 대기업은 공제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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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네켄의 창업자 제라드 에이드리안 하이네켄의 4세인 샤를렌 드 카발로 하이네켄. 배경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하이네켄 공장 모습 [하이네켄 홈페이지, 123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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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초록색 병과 붉은 오각별 로고로 유명한 맥주회사 하이네켄. 하이네켄은 1864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해 올해로 창립 160년을 맞은 장수 가족기업이다. 지금은 창업자 제라드 에이드리안 하이네켄의 4세인 샤를렌 드 카발로 하이네켄이 최대 주주로서 실질적인 소유경영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5세대로의 기업 승계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하이네켄은 지난 160년간 4대에 걸쳐 대물림하며 하이네켄은 물론 암스텔, 에델바이스, 타이거, 빈탕 등 전 세계 170개 이상의 맥주 브랜드를 보유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맥주기업으로 성장했다. 2023년 기준 매출액만 363억7500만유로(약 53조5000억원)에 달한다.

하이네켄이 지금처럼 세계적인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안정적인 기업 승계가 한몫했다. 오너가의 책임 있는 경영을 바탕으로 제품 혁신을 위한 결단을 내릴 수 있었고 적극적인 인수·합병(M&A)과 지분 투자로 성장 동력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이네켄의 승계 작업은 여느 기업이 그렇듯 전략적이었다. 하이네켄은 다층적 지주회사 구조를 도입해 경영권을 확보하면서도 직접적인 보유 지분율을 낮춤으로써 상속세 부담을 줄였다. 그러나 하이네켄도 우리나라 기업이었다면 ‘상속세 폭탄’에 기업 승계가 막히고 지금의 거대 맥주 기업으로 성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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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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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한국경제인협회가 ‘세계 부동산 및 상속세 가이드 2023’ 자료를 바탕으로 각국의 상속세 제도를 검토해 하이네켄 오너가의 지분 상속에 대한 상속세 시뮬레이션을 실시한 결과 하이네켄이 한국에 있었다면 기업 승계 시 상속세로 10조8700억원을 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네덜란드에서 내야 하는 상속세 추산액(6400억원) 대비 17.1배 많은 금액이다.

세액이 무려 10조원 넘게 차이 나는 것은 네덜란드가 우리나라보다 상속세율 자체가 낮은 데다 기업승계와 관련해 공제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다. 여기에 최대주주 주식 할증 평가까지 감안하면 세율은 60%까지 뛴다.

반면 네덜란드의 상속세율은 최고 20%에 불과한데 ▷상속 후 5년간 기업을 계속 경영하고 ▷10년간 지분을 보유하는 조건에서는 그마저도 공제받을 수 있다. 공제율도 높은 편인데 121만유로(약 17억8000만원)까지는 100%, 초과분부터는 83%다. 약 18조6800억원 규모의 지분을 소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하이네켄 오너가 지분 전부를 가족에게 물려줄 때 천억원대 상속세만 내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뮬레이션은 오너 일가가 가진 전체 주식을 최대주주 소유라고 보고 최대주주가 자신의 지분을 직계비속에게 모두 상속한다고 가정했으며 상속재산공제 요건을 모두 만족한다고 전제했다. 기업승계 관련 공제 외 다른 공제는 고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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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아르노 LVMH그룹 회장이 지난달 16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그룹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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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네켄뿐 아니라 유럽의 대표적인 장수 가족기업인 프랑스의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독일의 BMW, 스웨덴의 발렌베리 등도 자국의 없거나 낮은 상속세, 높은 수준의 세제 지원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기업 승계를 이어왔는데 이들 역시 한국 기업이었다면 상속세의 무게감이 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동일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LVMH의 아르노 가문은 현재 271조200억원 규모의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를 상속할 때 30조4900억원의 세금을 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프랑스에서는 최고 45%의 상속세율이 적용되지만 일정 기간 환매하지 않는 조건에선 최대 75%까지 공제받을 수 있어서다. 그러나 LVMH가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그보다 5.2배 많은 157조7300억원을 상속세로 내야 한다.

BMW의 크반트 가문도 비슷하다. 13조7400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상속세가 우리나라였다면 26조7100억원으로 2배 가까이 뛰었을 것으로 계산됐다. 독일도 일정 기간 지분 보유 등의 조건을 갖추면 상속세를 최고 100%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 자산가격 기준이 있어 BMW 같은 대기업은 공제 폭이 크진 않지만 상속세율이 30% 수준이라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상속세액 차가 크다.

스웨덴의 경우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발렌베리 그룹이 보유한 스웨덴 시총 1·2위 기업의 지분만 상속한다고 해도 자국에서라면 내지 않아도 될 세금을 우리나라에선 17조600억원이나 내야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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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베이징 국제 자동차 전시회에서 참석자들이 BMW 부스에 전시된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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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상속세 최고세율은 1997년 45%, 2000년 50%로 계속 인상됐다. 여기에 일정 규모 이상의 대기업 최대주주가 지분을 상속할 때는 평가액의 20%를 이른바 ‘경영권 프리미엄’으로 할증 과세하게 돼 있다. 이때 상속세율은 60%까지 올라 일본(55%)보다 높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1위다. OECD 국가의 평균 상속세율은 27.1%다.

이는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최고세율을 인하하는 주요 7개국(G7)의 행보와 반대된다고 산업계는 지적한다. 캐나다는 이중과세를 해소하기 위해 1972년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로 전환했다. 자본이득세는 자산을 매각해 발생하는 이득에 과세하는 방식이다. 미국은 55%였던 최고세율을 2012년 40%로 고정했다. 독일은 2000년 35%에서 30%로 인하했고 이탈리아는 2001년 상속세를 폐지했다가 재정부족 문제로 2007년 이후 4%를 유지하고 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상속세 부담은 국제적으로 최상위권”이라며 “높은 상속세는 안정적인 기업 승계에 장애가 될뿐더러 경영 기반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글로벌 기업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 주요 기업 오너가에 부과된 상속세를 살펴보면 그 규모가 상당하다. 이건희 선대회장 별세 이후 삼성가(家) 상속세는 12조원에 달하고 LG 일가도 구본무 선대회장의 유산 몫으로 1조원에 가까운 상속세를 내고 있다. 롯데가 역시 신격호 명예회장 타계 후 상속세로 약 4500억원을 냈다. 지난 3월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별세로 효성가가 내야 할 상속세도 최소 4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경제계는 예측한다.

최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삼성전자 주식 524만주를 팔았는데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한 재원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고 기업도 주식을 정리해 재원을 마련할 만큼 상속세 부담이 과하다는 의미다. 일부 기업은 상속세 때문에 경영권을 내놓기도 하고 회사를 팔기도 하는 실정이다. 최근 떠들썩했던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도 54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 재원 마련이 시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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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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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협 측은 원활한 기업 승계 지원을 위해 ▷상속세율 인하 ▷최대주주 주식 할증 평가 폐지 ▷가업상속공제 대상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과세근거가 취약하고 기업의 세 부담만 가중시키는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를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영권 프리미엄은 기업의 지배구조, 최근 경영 실적과 대외 위험도, 성장잠재력, 경영진의 능력·성향 등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인 주식 할증평가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과대평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에서 일부 국가가 지배주주의 주식 평가 시 할증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와 달리 할증률은 개별 상황이나 기업 특성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김 교수는 “높은 세 부담보다 더 큰 문제가 사업용 자산, 즉 기업의 지분을 상속하는 것을 부동산, 현금 등을 상속하는 것보다 불리하게 만든 점”이라며 “우리나라는 사업용 자산에 대해 오히려 가혹하게 과세하는데 다른 나라는 할증 과세가 없을뿐더러 안정적인 기업 승계를 위해 몇 가지 요건을 만족하면 주식을 처분할 때까지 과세를 안 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현재 중소·중견기업에만 적용되는 가업상속공제 대상을 대기업까지 확대하고 공제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가 기업승계를 장려하기 위해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도입했으나 적용대상이 한정적인 데다 요건이 엄격해 활용이 저조하다는 게 경제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산업계는 상속세 과세방식에 대해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상속인 각자가 취득하는 재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이 아닌 피상속인이 남긴 재산 전체를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세 방식을 적용해 상속부담이 더 크다.

정부는 그동안 상속세를 유산취득세로 전환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하는 등 상속세를 유산취득세로 변경하는 내용으로 세법을 개편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다만 22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하면서 입법이 불투명해졌다. 민주당은 유산취득세 방식 도입이 ‘부자감세’라고 주장하고 있다.

e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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