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가 끌어들인 EU 갈라치기' 의도 속 親중국 3국 방문…FT "유럽과 화해 아닌 분열 심는 쪽 선택"
3국과 경제협력 불구 EU와 통상마찰 '빈손'…中대사관 오폭 25주년 행사 불참해 美겨냥 수위 조절
시진핑 주석과 마크롱 대통령 |
(서울=연합뉴스) 홍제성 기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일(현지시간) 5년 만의 유럽 순방 일정을 마무리했다.
미국이 유럽연합(EU)을 끌어들여 안보·경제 부문에서 대(對)중국 압박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서 EU의 대중국 견제 전선에 균열을 내기 위한 외교 이벤트였다는 점에서 그에 걸맞은 소기의 성과를 거뒀는지를 놓고 해외 언론과 중국 내부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 '친중 3국' 극진한 환대…美-EU의 中견제 연대에 '경고 메시지' 발신
시 주석이 차례로 찾은 프랑스·세르비아·헝가리는 서방 진영의 대중국 견제 강화 움직임 속에서도 중국과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국가들이다.
프랑스는 미국과 EU가 우크라이나 전쟁, 무역 문제 등을 둘러싸고 중국과 마찰을 빚는 와중에도 서방 주요국가 중 유독 중국과 긴밀하게 교류한 나라다.
동유럽의 세르비아와 헝가리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무역 관행에 대한 유럽 내 비판 흐름과는 달리 중국에 기운 입장을 보여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두 나라를 유럽의 '변절자'(renegade)로 규정할 정도다.
이를 방증하듯 순방 기간 시 주석은 3국 정상들에게서 환대받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어릴 적 추억이 담긴 산골 마을로 외국 손님으로는 처음으로 시 주석 부부를 초대해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세르비아와 헝가리는 공군기를 투입해 시 주석이 탑승한 전용기를 호위 비행하고 부치치 대통령과 오르반 총리가 직접 공항에 나가 시 주석을 영접했다.
시 주석은 순방국 정상들과 정상회담을 미국과 EU의 중국 견제 연대에 대한 '경고 메시지' 발신의 장으로 활용했다.
그는 마크롱 대통령과 정상회담 뒤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용해 제3국을 비방하거나 '신냉전'을 부추기는 것에 반대한다"며 러시아 지원 등을 이유로 자국 기업 제재에 나선 미국과 유럽을 우회적으로 겨냥했다.
시 주석은 세르비아 방문 때는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과 '미래를 공유하는 중국·세르비아 공동체'의 창설에 관한 공동 성명에 서명했다. 미국 헤게모니에 반대하는 국가들의 연합을 구축하려는 중국의 노력에 부치치 대통령의 지지를 끌어낸 것이다.
다만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일어났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중국 대사관 폭격 25주년을 맞아 세르비아를 찾았음에도 직접 중국대사관을 찾거나 희생자 추모 행사에 참석하지는 않아 미국을 겨냥한 공세 수위는 조절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 3국과 경제협력 '과시'…"美 아닌 中 손잡는 게 이득"
시 주석은 순방에서 3국과의 경제협력 성과물을 과시하는 데 공을 들였다. 중국을 배제하는 것은 '득이 아니라 실'이 된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중국과 프랑스 정상회담을 계기로 프랑스산 돼지고기와 와인의 중국 시장 수출이 확대될 전망이다.
중국은 또 시 주석 방문을 계기로 프랑스 코냑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마무리하기 전까지 세금이나 관세를 부과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세르비아와는 오는 7월부터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할 예정이어서 중국 투자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 주석은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와 정상회담을 통해서는 에너지와 인프라 등 18개 분야에서 협정을 체결하고 긴밀하게 협력사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공언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기다렸다는 듯 중국과 협력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논리를 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의 영문매체 글로벌타임스가 "중국과 프랑스가 농업 무역에서 상호 보완 잠재력을 활용하는 데 성공한 것은 중국-미국 농업 무역에 귀중한 교훈을 줄지도 모른다"고 언급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시진핑 세르비아 도착 |
◇ EU와 통상 갈등은 '빈손'…내외부 평가 극명히 엇갈려
중국 관영 매체는 순방이 성공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인터넷판인 인민망은 시 주석의 유럽 3개국 방문이 "중국과 EU 관계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에 새로운 추진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매체는 "시 주석의 이번 방문으로 중국과 3국 간 정치적 상호신뢰, 실무협력, 인문교류가 심화하고 건전한 발전에 새로운 동력이 주입됐다"고 전했다.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특히 시 주석의 헝가리 방문과 관련, "양국간 협력은 다른 EU 회원국들의 모범이 돼 진영 대결을 넘어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며 "중국이 유럽에 '도전이 아닌 기회'이며 '경쟁자가 아닌 파트너'임을 강력하게 보여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반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생산적이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신문은 "이번 순방을 유럽과의 화해를 위한 기회로 삼을 수도 있었지만, 그 대신 분열을 심는 쪽을 선택했다"며 유럽 방문 일정의 많은 부분을 유럽의 '골칫거리' 구성원들과 친중 국가들을 끌어안는 데 썼다고 지적했다.
헝가리와 세르비아의 '독재 지도자'들과 친분을 쌓는 것은 중국 지도자의 권위주의적 세계관에 대한 우려를 완화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폈다.
FT는 통상문제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EU가 제기하는 우려와 요구를 시 주석이 양보하거나 수용하지 않았다며 유럽이 중국에 대해 더 강경한 전술을 채택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시 주석-마크롱 대통령과의 3자 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중국 정부에 구조적 과잉 생산 문제를 해결하도록 촉구했다"며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시 주석은 EU가 긍정적인 대중 정책을 채택할 것을 요구하며 맞섰다. EU와 통상마찰 부문에서 성적표는 '빈손'이었던 셈이다.
공동기자회견에 나선 중국·헝가리 정상 |
j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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