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횡재세' 부과 논란 재점화
"영업이익률 1%대…이중과세 우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의 한 주유소에서 직원이 차량에 주유를 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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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서 발생한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유가 상승과 정제 마진 강세에 힘입어 올 1분기(1~3월) 국내 정유사들의 실적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러나 유가 상승으로 인한 초과이익을 공유해야 한다는 '횡재세' 논란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다시 떠오르면서 정유업계에선 걱정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①GS칼텍스는 1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4,166억 원으로 직전 분기(2023년 4분기) 대비 118.2% 증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9일 밝혔다. 특히 고유가가 이어지면서 정유 부문 매출액은 9조3,508억 원, 영업이익은 3,010억 원으로 전 분기보다 크게 증가했다. 환차손(환율 변동에 따른 손해) 등 금융 비용이 반영되는 당기순이익은 2,202억 원으로 40.7% 늘었다. GS칼텍스는 "유가 상승으로 재고평가이익이 증가하면서 전 분기 대비 회계상 영업이익은 개선됐다"면서도 "환율 상승으로 인한 환차손 발생으로 당기순이익은 영업이익 대비 절반 수준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②SK이노베이션은 1분기 석유사업 부문 영업이익이 전 분기 대비 7,563억 원 늘어난 5,911억 원으로 흑자로 돌아섰다.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오펙플러스(OPEC+)'가 감산에 나서고 정제 마진 강세 및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 이익이 발생한 영향이다. ③에쓰오일의 1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4,541억 원으로 564억 원 영업손실을 냈던 직전 분기에서 흑자 전환했다. 정유 부문 영업이익은 2,504억 원으로 직전 분기(영업손실 3,113억 원) 대비 크게 증가했다. ④HD현대오일뱅크도 정유 부문에서 1분기 2,192억 원 영업이익을 내면서 영업손실이 729억 원이었던 직전 분기와 달리 흑자를 냈다.
직전 분기 대비 큰 폭 실적 개선에…정치권 '횡재세' 부과 발동
그래픽=박구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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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기 좋은 실적을 냈는데도 정유사들의 표정이 밝지 않은 이유는 최근 정치권에서 다시 불을 붙이고 있는 횡재세 도입 논란 때문이다. 유럽연합(EU) 등이 초과 이윤을 낸 에너지 기업에 과세하는 횡재세를 국내에도 들여와 고유가에 따라 얻은 어부지리 이익을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께서는 유가가 오를 때는 과도하게 오르지만 내릴 때는 찔끔 내린다는 불신과 불만을 가지고 있다"면서 "정부는 막연하게 희망 주문만 낼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조치로 국민 부담을 덜어야 한다"며 횡재세 도입을 다시 제안했다.
정유사들은 장부상 기름값이 올라 영업이익이 크게 증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유가 상승이 정유사의 이익과 연결되는 구조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유가가 오르면 석유 수요가 위축되고 정제 마진이 하락해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줘 고유가에 따른 효과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정유사의 경우 해외에서 원유를 직접 시추해서 파는 산유국들과 달리 원유를 100% 수입·정제해 판매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기름값이 오르면 곧 원가 상승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정유 산업은 많이 팔아야 수익이 나는 박리다매·저마진 구조다"라며 "실제 정유업계 영업이익률이 1.8%에 불과한 상황에서 기름값이 떨어지면 손실을 보전해주는 대책도 없이 징벌적으로 과세하겠다는 셈"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에 법인세를 부과하는 상황에서 횡재세를 도입할 경우 '이중과세' 등 위헌 소지도 있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대외협력실장은 "현재 기업들에 적용되는 법인세는 4단계 누진세율 체계로 횡재세 추가 부과 시 이중과세에 해당할 수 있다"며 "이미 국내 정유사들의 기름값 판매 가격이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라 가격을 더 인하할 여력도 많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나주예 기자 juy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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