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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숙경 같은 숙경씨를 숙경함[소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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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카네이션을 만들어야 하는 5월이 싫었다
어느 해부턴가 카네이션은 소파 뒤에 숨겨졌지만
이제 카네이션은 묻는다, 내가 아직도 거짓말이냐고


동아일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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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경 씨는 전남 목포에서 2남 5녀 중 6녀로 태어났다. 평범한 집안이어서 5녀 중 3녀까지는 대학을 못 갔고, 그 3녀들이 벌어온 돈으로 딸 중엔 아래의 2녀만이 대학에 갔다. 대학을 포기한 형제의 돈으로 공부하면 뭔가 다 열심히 할 것만 같지만, 숙경 씨의 사례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학력고사를 치른 겨울, 지역의 대학에 다니게 된 숙경 씨는 동현 씨를 만났다. 아버지 돈으로 공부해 서울의 좋은 대학에 붙은 사람.

동현 씨는 결코 숙경 씨에게 첫눈에 반하지 않았다. 그는 기나긴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날을 두 번째 데이트로 꼽는다. 부끄러워 서로 눈도 잘 못 마주치던 그때, 숙경 씨는 별안간 뽕하고 방귀를 뀌었다. 동현 씨는 고막을 찢고 내리꽂힌 그 굉음을 못 들은 체함으로써 신사다움을 뽐내려 하였으나 숙경 씨는 그리 쉽게 종 잡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메, 나와부렀으야!” 32년 전 결혼 후에도 몇 년간 ‘방귀를 트지’ 못했다는 우리의 젠틀한 동현 씨는 그날 숙경 씨의 당당함에 홀딱 반해버렸다.

동현 씨와 숙경 씨는 서울과 목포를 오가는 10년의 연애 끝에 결혼해 1년 만에 딸을, 3년 뒤엔 아들을 낳았다. 고향에서 일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온 숙경 씨는 가정에서도 노동하듯 성실했다. 동현 씨가 출근하고 나면 매일 집안 전체를 비질하고 양 무릎을 쿵쿵거리며 물걸레질했다. 아이들에게 말과 글과 수를 가르치고, 밥과 사랑을 떠먹였다.

그런 나날이 흐르는 동안 13평짜리 전셋집이 18평이 됐고, 이내 23평짜리 내 집이 됐다. 딸은 9살 무렵 부모가 마련한 첫 집에 처음 들어섰을 때의 풍경을 선명히 기억한다. 숙경 씨가 그 어느 때보다 해사한 얼굴로 어김없이 양 무릎을 쿵쿵거리며 마룻바닥에 물걸레질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숙경 씨의 딸은 어릴 적부터 다소 별난 면이 있었다. 딸은 엄마를 볼 때면 왜 애정과 혐오, 존경과 무시, 인정욕구와 해방되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이 뒤섞이고 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어 자주 절망했다. 그러나 숙경 씨가 경험했던 모녀 관계는 그다지 복잡해질 기회가 없었던 엄마와 ‘6녀’ 사이의 찰나들일 뿐이어서, 그 방면으로는 지혜가 모자랐던 것 같다.

딸은 5월이 정말 싫었다. 카네이션을 만들자는 학교의 소동이, 그걸 부모의 가슴에 달고 오라는 숙제가 싫었다. 엄마의 가슴에 꽃을 다는 행위는 딸에겐 일종의 거짓말이었다. 어느 해부턴가 카네이션은 부모의 가슴이 아닌 소파 뒤 먼지 구덩이 속에 숨겨졌고, 스승의날 즈음 몰래 버려졌다. 언젠가 숙경 씨가 그 카네이션을 발견했다 무언가 상실한 표정을 하고 가만히 제자리에 돌려놨을지는, 모를 일이다.

동아일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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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숙경 씨는 생리 현상에 관한 것만 빼고는 다소 내성적인 면이 있어서 학기 초면 아이들에게 반장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당부하곤 했다. 그러나 딸은 말을 잘 안 들어 기어이 반장을 맡아 왔고, 아들은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 부반장 임명장을 펄럭이며 기뻐했다. 담임 교사 소풍 도시락을 몇 번 싸다 바치고, 몇 개의 교내 행사를 치르다 보면 어느새 한 해가 갔다. 아이들은 차례차례 교복을 입었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멀어져 갔다.

학습지의 거의 유일한 순기능은 아이에게 공부를 시킬지 다른 걸 시킬지 비교적 이른 시기에 판단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숙경 씨는 진작부터 딸에겐 국영수를 좀 더 가르치고, 아들과는 다른 걸 찾아보기로 한 바 있었다. 딸이 수능을 치는 날 숙경 씨, 그러니까 ‘유리아 자매님’은 성당으로 달려가 딸 ‘요안나’를 위해 과목별 수험 시간에 맞춰 실시간으로 주님께 기도를 쐈다. 국영수 순서대로…. 2교시를 마친 후 점심을 먹다 문득 수능은 국영수가 아니라 언수외 순임을 깨달았지만, ‘주님’은 그날 접수된 기도가 너무 많아 한 자녀만 다른 과목 시험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셨던 모양이다. 딸 요안나는 완전히 망한 수리와 지나치게 잘 본 외국어 점수를 받아들고, 그다지 치밀하지 못 한 사람에게 달란트로 기도발을 주시는 건 주님이 좀 치사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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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숙경 씨에겐 꿈이 있었다. 챙길 자식이 너무 많았던 자신의 어머니와는 꿀 수 없던 꿈이었다. 유리아는 어릴 적부터 영 살갑지 못했던 요안나와 언젠가는 친구가 되고 싶었다. 이제는 그게 가능해질까 싶었던 딸의 나이 20살엔 딸에게 애인이 생겼고, 지금은 직장을 얻은 딸이 집을 나가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요안나는 제때 대학 가서 제때 취직해 제때 독립하겠다는 게 뭐가 문제냐고 따졌다. 유리아는 그런 게 중요한 적 없었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둘은 서로의 오랜 바람을 모른 체 하느라고 울었다. 숙경 씨는 사는 내내 딸이 무엇으로부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딸은 그 기다림이 사는 내내 버거웠다.

요안나가 집을 나가는 날 아들만이 누나의 이사를 도왔다. 아들은 사회 초년생이 간신히 마련한 단칸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겨우 이런 데 살려고 엄마한테 그 난리를 쳤냐?” 딸은 그 방의, 그다음 방의 비밀번호도 유리아의 집과 똑같이 유지했으나 유리아는 한 번도 딸의 방에 찾아가지 않았으므로 그걸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전해지지 않은 먼지 구덩이 속 카네이션 같은 것이었다.

요안나는 그로부터 약 3년 뒤 걸려 온 유리아의 전화를 잊지 못한다. “요새 드라마에 보니 독립한 여자들이 참 멋지게 혼자 잘 살더라. 너도 어디 한번 그렇게 살아봐.” 요안나는 그동안 유리아가 겪었을 번뇌조차 외면하고 싶은 자신이 역겨웠다. 사랑은 미안해하지 않는 것이라 했던가. 요안나는 어째서 자신이 유리아를 생각하는 마음은 이토록 죄책감을 닮았는지 궁금했다. 요안나는 여전히 5월이 싫었다. 방귀도 못 참던 열아홉의 숙경 씨가 꿈조차 폐기하는 어른이 되기까지, 자신은 무엇을 저질렀을지 자꾸만 헤아려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참으로 웃기는 것이다. 이제는 숙경 씨가 다 키웠다 싶은 아들을 내보내겠다 하고, 아들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서운해한다.

아들이 이사하기 전날 밤 숙경 씨는 3년을 먹어도 다 못 먹을 양의 김치를 쌌다. 동현 씨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아들의 짐을 차에 옮겼다. 동생이 구한 방 사진을 보고 요안나는 잊지 않고 말해주었다. “방이 참 아늑하고 좋네.” 숙경 씨는 조용히 아들의 살냄새를 맡았다. 그날 밤 이 가족의 어느 한 시절이 저물고 있음을 네 사람 모두가 알았다.

여기, 숙경 씨의 무릎이 있다. 기도와 번뇌와 체념이 있다. 저기엔 비워진 자식들의 방이, 땅에는 누군가 소파 뒤에서 건져 온 카네이션이 있다. 카네이션이 묻는다. 내가 아직도 거짓말이냐고.

다시 5월이다.

숙경
淑景 봄, 자연의 맑은 경치
肅敬 삼가 존경함


[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돌아가며 씁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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