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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시위와 파업

[특파원 칼럼/김현수]고물가와 틱톡… 美반전시위를 읽는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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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김현수 뉴욕 특파원


미국 청년들의 반전 시위가 심상치 않다고 처음 느꼈던 때는 3월 말 조 바이든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자금 모금 행사차 뉴욕에서 뭉친 날이었다. 모금은 대성공이었지만 행사장 밖 공기는 달랐다. 비를 맞으면서도 수백 명이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을 외치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과 이스라엘의 맞대응 이후 대학 캠퍼스뿐 아니라 뉴욕 시내 곳곳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는 일상화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이날 시위는 달라 보였다. 시위 규모가 커지고, 언어는 거칠어졌다. 전현직 대통령 3인을 악마로 묘사한 포스터와 과격한 팻말도 눈에 띄었다. 민주당이 강세인 뉴욕에서 대통령 지지 인파가 보이지 않은 점도 적잖이 놀라웠다.

반전 시위 기저엔 분노한 청년층

당시 시위에 참여한 2030세대 청년 5명과 대화를 나눴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참상에 바이든 행정부가 세금을 대는 것은 부당하다고 입을 모았다. 아랍계인 엘리자 마서 씨(31)는 “우리는 대부분 이민자의 자녀다. 미국과 적국으로 얽혀 있는 지역에서 왔다면 팔레스타인 이슈에 동조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화가 이어질수록 미국 사회 전반에 대한 분노도 보태졌다. 손더스 엘브록 씨(35)는 “1980년대에도 범죄가 기승을 부렸지만 특정 시간과 지역을 피하면 안전했다고 한다”며 “지금 우리는 일상에서 묻지 마 폭력에 시달리는데 경찰은 정작 시민 보호에는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 정부가 이스라엘과 같은 ‘강자’의 편에서 자국 ‘약자’ 보호에는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엘브록 씨의 말에 옆에 있던 여성들은 페퍼 스프레이와 같은 호신용품을 무료로 나눠주는 시민단체를 서로 알려주며 비판을 이어나갔다.

뉴욕시립대에서 영화를 전공하는 니크먼 씨(21)는 “친구들끼리 ‘졸업 후 다른 나라로 갈까’ 할 정도로 매일 미국이 잘못되고 있다는 얘기를 주고받는다. 내 인생 첫 번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선택지라는 점도 좌절스럽다”고 말했다. 높은 물가 속에 미래가 어둡게 느껴진다고도 했다.

전쟁도, 시위도 생중계 시대

팔레스타인 참상에 대한 분노 기저에는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 미래에 대한 비관론, 경제에 대한 우려가 섞여 있는 셈이다. 실제로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이 매년 실시하는 18∼29세 여론조사에서도 이 같은 청년층의 좌절이 표출되고 있다. 지난달 발표된 올해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만이 ‘미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답했고 58%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 4년 전 조사에선 20% 이상이 ‘올바른 방향’을 택했었다.

동영상 위주의 소셜미디어도 시위 격화에 한몫을 했다. 지난달 컬럼비아대의 경찰 연행 장면도 실시간으로 퍼지며 청년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특히 주로 틱톡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미 20대는 가자지구 참상에 대한 동영상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미 의회가 중국을 핑계로 틱톡을 금지해 팔레스타인 이슈를 막으려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이 나올 정도다. ‘틱톡 금지법’을 자신들을 겨냥한 ‘표현의 자유 억압’으로 느낀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고물가와 고금리 후유증이 지속되며 청년층의 좌절감은 높아지고, 세대별로 정보가 통하는 창구가 갈리며 이들과 정치권의 괴리감도 커지는 것이다. 그사이 대학 시위에 대한 강경 진압, 이에 대한 반발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미 사회의 분열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김현수 뉴욕 특파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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