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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승격보다 중요한건 선수… 긴호흡으로 팀 끌고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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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K리그 돌풍 김천상무 정정용 감독 인터뷰

조선일보

지난 2일 경북 문경 국군체육부대 축구장에서 만난 정정용 감독. 정 감독은 올 시즌 선두 경쟁에 대해 “우리가 우리의 축구를 하면 만족한다. 성적은 그 다음 딸려오는 것”이라고 했다. /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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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용 김천 상무 감독 집무실 안 화이트보드에 ‘당직’이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신분이 군무원이라 한 달에 한 번꼴로 당직근무를 선다고 한다. 국군체육부대 다른 종목 감독들도 마찬가지다.

올 시즌 프로축구 1부 리그(K리그1) 최고 돌풍은 김천 상무다. 지난 시즌 K리그2(2부)에서 우승을 거머쥐면서 1부로 건너온 승격 팀이 초반 1위에 올라서더니 선두 싸움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3일 기준 김천(승점20·14골)은 포항(승점 21), 울산(승점 20·21골)에 이어 간발의 차로 3위에 있다.

지난 2일 경북 문경 국군체육부대에서 만난 정 감독은 “하필 인터뷰하는 날에 3위가 됐다”면서 웃었다. 김천 상무는 엄연히 군 부대이다 보니 선수들이 1년 6개월 의무 복무 기간을 마치면 떠난다. 그 시점이 시즌 중일 때도 많다. 그러다보니 감독은 기껏 선수들 특성에 맞춰 짜놓은 전술을 중간에 변형해야 하는 난제를 떠안는다.

더 고심인 부분은 동기 부여다. 선수들 처지에선 괜히 상무에서 너무 열심히 하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전역 후 돈 받고 뛰는 프로 구단에서 반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정 감독은 선수들에게 개별 과제를 주고 동기 부여를 하는 데 집중했다. “입대한 선수를 앉혀놓고 이야기해요. ‘난 연령별 대표팀 감독을 여러 번 맡아왔다. 그래서 선수에게 뭐가 부족한지 보는 눈이 있다. 삼국지 게임에선 그저 그런 장수라도 좋은 무기를 장착하면 굉장한 무장이 된다. 그 무기를 1년 반 동안 개발한다고 생각해라. 도와주겠다’라고요.”

조선일보

그래픽=조선디자인랩 한유진


정 감독은 2019년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이끈 지도자다. 역대 최고 성적. 그 여세로 K리그2 서울 이랜드 지휘봉을 잡았다. 목표는 구단 역사상 첫 1부 승격. 전폭적인 지원 아래 시즌을 치렀다.

첫해는 3위와 승점은 같지만 다득점에서 밀려 아쉽게 5위. 3위까지 주어지는 승격 플레이오프 기회를 놓쳤다. 그 아쉬움에 이듬해엔 더 고삐를 당겼다. 선수들을 몰아붙였다. 그런데 역효과가 났다. 팀이 지쳐갔다. 프로 리그에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결국 2021시즌 9위, 2022시즌 7위라는 아쉬운 성적으로 사령탑에서 내려왔다.

“그때 감독을 그만둔 뒤 K리그 기술연구그룹(TSG)에서 일했어요. 관중석에서 경기를 볼 일이 많았죠. ‘이렇게 운동장이 넓었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독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선수들 움직임이 전부 눈에 들어 왔습니다. 돌이켜보니 팀을 운영하면서도 그렇게 놓친 부분이 많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옆을 가리고 승격만을 위해서 달리는 경주마 같았죠. 만약 이런 걸 모르고 이랜드에서 좋은 성적을 냈으면 그 뒤 제 감독 인생도 망가졌을 것 같아요.” 이젠 무작정 앞장서서 선수단을 움켜쥐는 대신 뒤에서 미세한 조정에 힘쓰는 데 집중한다.

최근 마음에 쓰인 소속팀 선수는 U23(23세 이하)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을 다녀온 이영준. 조별리그 2경기에서 3골을 넣으면서 팀 내 구세주로 떠오르다가 8강전에서 무리한 플레이로 퇴장당하면서 패배 빌미를 제공했다. 그 결과 한국은 40년 만에 파리올림픽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천국과 지옥을 오간 뒤 돌아온 이영준을 보자마자 정 감독은 ‘힘드냐, 나도 힘들다’라고 운을 띄우면서 분위기를 풀었다고 한다. “국제대회에서 나쁜 성적을 내고 돌아오는 비행기는 정말… 차라리 낙하산을 받아서 바다에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영준이에게는 원한다면 며칠 쉬어도 되지만, 빨리 훈련에 복귀해서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이야기해줬습니다.”

최근 대표팀에서 일어났던 주장 손흥민과 이강인 몸싸움도 안타깝다고 했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 수많은 징조가 있었을 텐데요. 그래도 먼저 싸움을 건 강인이가 먼저 사과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인이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먼저 사과하라고 조언하기도 했죠. 강인이가 먼저 사과한 건 잘한 일이었죠.”

그는 “사실 선수들끼리 싸우는 건 셀 수도 없다”고 말했다. 관건은 어떻게 잘 봉합하느냐에 달렸다는 얘기다. “감독이 직접 나서서 화해를 시키려고 하면 부담스러워할 수 있어요. 훈련에서 싸운 듯한 기류가 흐르면 코치나 고참 선수들에게 일단 상황을 파악하라고 시키죠. 그렇게 하다보면 어떻게 봉합할지 대충 감이 옵니다.”

이젠 선수들 문화가 달라지고 있어 이에 맞춘 관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전에 브라질에 지도자 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앞에서 연설하는 감독을 두고도 자기들끼리 떠들고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라고요. 감독을 존중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들 문화인 거죠. 우리 유럽파 선수들도 그런 문화를 익혀오기도 합니다. 한국 같은 수직적 체계에 익숙한 선수들하고는 더 동떨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대표팀 안에서는 그런 문화 차이로 충돌할 일이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더 신경을 써야겠죠.”

[문경=이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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