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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예술과 오늘]하지도 않은 말과 ‘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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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의미로 종종 언급되는, 영국의 극작가이자 사회비평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으로 알려진 말이다. 하지만 묘비명 원문은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당연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정도의 번역이 과하지 않다. 흥미로운 사실은 조지 버나드 쇼는 묘지를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후 화장된 그의 유해는 오랫동안 은둔하며 작품을 썼던 런던 교외의 ‘쇼스 코너’ 정원 곳곳에 뿌려졌다. 묘비는 아예 세워지지도 않았다. 그 이전부터 사용되었다고 하지만, 2000년대 중반 한 이동통신사가 만들어낸 묘비 사진과 과장된 말은 이제 정설처럼 사람들 사이를 떠돈다.

조지 버나드 쇼가 의미만큼은 통하는 말을 ‘직접’ 남겼다면, 어떤 이들은 하지도 않은 말들이 그 자신의 말처럼 후대에 전해지기도 했다. 대표주자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로 유명한 소크라테스다.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기둥에 새겨진 이 문구는 현명한 그리스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들어야 했던 신탁(神託)이었다. 정작 이 말을 처음 했던 사람은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로 알려진 탈레스라고 한다. 그럼에도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과 소크라테스를 동일시하는 이유는, 그가 이 오랜 신탁의 의미를 깨닫고 시장의 철학자로 살며 모든 이들에게 그렇게 살아보자고 권유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 않은 말의 주인공이 된 또 다른 인물로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있다.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던 그는 재판정에서는 지동설을 비난했지만, 법정을 나서면서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E pur si muove)라고 중얼거렸다고 알려졌다. 지동설과 천동설 등 과학의 실체나 배경에는 관심이 없는, 하여 ‘에피소드 과학’에만 몰입하는 세태가 만들어낸 웃지 못할 풍경 중 하나다.

영국의 정치가이자 법률가인 토머스 모어가 16세기 초반 선보인 <유토피아>는 사실과 다른 말들의 집합체 같은 작품이다. 일단 유토피아가 그리스어 없다(ou)와 장소(topos)를 조합한 말로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5년을 유토피아에서 보냈다면서 토머스 모어에게 그곳 사정을 세세하게 설명하는 화자(話者) ‘라파엘 히슬로다에우스’라는 포르투갈 선원도 믿을 만한 사람은 아니다. 히슬로다에우스는 “허튼소리를 퍼뜨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허튼소리 중 몇 가지만 살펴보자. 유토피아 사람들은 대개 6시간만 일했는데 “누구나 유용한 일들을 하면서도 과소비하지 않아서 모든 게 풍족”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유토피아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양서(良書)를 가까이하고 또 일생 동안 여가 시간에 책을 읽으면서” 삶을 영위했다. 황금만능 풍조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서, 금을 변기나 노예 족쇄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 허튼소리를 퍼뜨리는 사람의 이야기지만, 60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솔깃한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양서를 가까이한다는 말은 더더욱 그렇다.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나 소크라테스가 깨달은 신탁,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로 자신의 신념을 지켰던 갈릴레이의 말은 어쩌면 긍정적인 영향을 우리에게 남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과 다르게 전한다”는 뜻을 가진 ‘와전’(訛傳)은 오늘날 우리 사회를 몇 걸음씩 퇴화시키고 있다. 발 없는 말은 천 리를 가고, 천 리를 가는 도중에 침소봉대(針小棒大)되거나 본래 의미는 사라지면서 듣는 이들로 하여금 전혀 다른 뜻을 생각하게 한다. 말과 글은 단지 사고를 표현하는 ‘수단’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기억할 때다.

경향신문

장동석 출판평론가


장동석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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