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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정동칼럼]기후정치가 남긴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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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총선을 앞둔 지난 칼럼에서 녹색정의당의 안타까운 현실을 이야기했는데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 정당 득표율 2.14%로 비례대표 의석 배분 최소기준(3%)을 채우지 못해 한 석도 못 얻었고 심상정 의원을 비롯한 지역구 도전자 17명도 모두 낙선했다. 이 결과는 2004년 민주노동당으로 처음 원내 진출했던 정의당의 역사적 후퇴로 평가되며 진보정치의 모호한 정체성 등 다양한 원인 분석을 낳았다. 그러나 녹색정의당은 노동, 기후, 성평등 정치를 내건 녹색당과 정의당의 선거연합정당으로 좌절의 원인을 정의당의 누적된 문제로만 돌릴 수 없다. 녹색정의당이 전면에 내건 기후정치 측면에서의 복기도 필요하다.

이번 총선에선 기후 문제에 민감하고 평소 지지 정당과 상관없이 기후후보에게 투표하겠다는 기후유권자가 33.5%에 이른다는 조사결과가 광범위하게 인용되었다. 이에 부응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신생 조국혁신당까지도 기후후보와 기후공약을 내세웠지만 녹색정의당은 처음부터 선명하게 이 문제에 승부를 걸었다. 그렇다면 33.5%와 2.14%의 격차는 무얼 말하는가? 기후정치란 구호는 총선 구도에 거의 영향을 못 미친 찻잔 속 태풍이었을까? 몇분들과 나눈 의견은 이렇다.

첫째, 기후유권자는 지역구에서 마땅한 기후후보를 찾기 어려웠음은 물론 비례투표에서도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을 찍었을 가능성이 높다. 기후를 걱정하는 마음은 같더라도 그에 대응하는 방법은 다르기 때문이다. 원전을 더 짓고 SMR(소형모듈원자로)을 도입하는 게 탄소중립에 꼭 필요하다고 믿는 ‘샤이 기후유권자’도 배제하기 어렵다. 기후 문제에 대응하면서 신산업도 키운다는 거대 양당의 녹색성장론은 기후유권자를 안심시킨다. 그렇기에 녹색정의당을 지지한 2.14%는 원래 정의당과 녹색당의 지지자이거나 기후운동에 참여해온 소수 기후시민에 그칠 것이다.

둘째, 녹색정의당은 다른 정당들에 비해 일관되고 앞서나가는 기후공약을 내놓았지만 그것이 실현될 수 있다는 데 대한 유권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재생에너지 비율을 2030년 50%, 2050년 100% 달성하겠다는 공약은 지난해 재생에너지 비율이 10%인 현실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없다. 기후위기 대응이 시급한지는 알아도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는 아직 인식과 공감대가 부족한 유권자들 앞에 뜬금없이 던져진 모범답안에 가깝다. 실천을 위한 공약이라기보다 정치적 지향점과 선명성을 보여주지만 이는 정치적 스펙트럼이 협소한 한국 현실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아무리 마음이 급하더라도 운동단체가 아닌 정당은 경로를 제시할 책임 또한 있다.

셋째, 우리에게 선거는 미래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하다. 더군다나 이번 총선은 역대 최강의 정권심판론으로 점철된, 지난 대선의 연장전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유권자들은 녹색정의당이 제시한 미래보다는 두 당의 과거를 본다. 그러니 소수정당이 발붙이기 힘든 정치현실에서 업적보다는 부족함이 두드러진다. 기후위기 대응은 장기적인 미래 과제이므로 이런 선거 관행과는 맞지 않는다. 더구나 전 세계가 추진하는 재생에너지 전환 문제조차 대립으로 끌어가는 퇴행적 정치로 인해 정쟁과 심판의 대상이 되는 형편이다.

넷째, 공론장 역시 기후정치를 논의하기에 충분한 준비가 안 돼 있다. 기후총선 기사(300여건)가 기대 이상으로 쏟아졌으나 분석보다는 신조어에 집중하는 캠페인성 보도였고, 각 정당이 막바지에 쏟아낸 기후공약을 나란히 싣는 데 그쳤다. 비싼 사과값, 대파값이 논란이 되었지만 물가와 민생이 초점이고 그 근본 원인까지 들어가지 못했다. 복잡다단한 현실에서 기후가 어떻게 안전, 보건, 경제, 교육, 안보 등 삶의 전반에 영향을 주고 각 정당은 어떻게 대응하려는지 분별할 방법이 없다.

그 결과 녹색정의당의 기후정치는 38개에 이르는 길고 긴 비례정당 투표용지에서 변별력이 없었다. 총선 이후 정의당도 그렇지만 녹색당 역시 후폭풍이 적잖다. 정의당이 떨어진 동력을 녹색이라는 외부수혈로 채울 수 없었듯이 녹색당도 기후, 생태, 환경, 동물권 등 고유의 이슈를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이 크다. 물론 녹색정의당의 실패가 기후정치의 실패는 아니다. 주요 정당과 많은 정치인이 기후를 입에 올렸고 어느 때보다 많은 기후후보가 국회에 입성했다. 그렇지만 정권 저격수라는 원포인트로 일약 12석을 얻은 조국혁신당을 보면서 기후정치는 왜 원포인트가 되지 못했는지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기후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의 형성, 지금부터 시작할 숙제이다.

경향신문

한윤정 전환연구자


한윤정 전환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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