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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화)

어떤 웨이터의 서비스는 값으로 매길 수 없다[2030세상/박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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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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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제네바 출장 중 갑자기 저녁 약속이 잡혔다. 당일 예약이 되는 레스토랑은 중심가의 유명 레스토랑 하나뿐이었다. 도착하니 빈자리도 많은데 영 불편해 보이는 구석 테이블이 우리 자리였다. 해외에서 업무를 보다 보면 별것 아닌 일에도 기분이 식을 때가 있다. 그때도 그랬다. 식당을 잘못 골랐나 생각하며 자리에 앉자 담당 웨이터가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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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피처 디렉터


“우리 레스토랑은 이 시간엔 늘 붐벼요. 지금 빈자리들이 곧 다 찰 겁니다. 대신 여러분에게는 제가 있습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말해주세요.” 이 말과 함께 웨이터 쇼 같은 시간이 시작됐다. 우리가 전식으로 시저 샐러드를 시키고 와인을 한 잔씩 마신 뒤 각자의 요리를 다 먹을 때까지, 웨이터는 내내 우리에게 최선을 다했다. 우리에게 아양을 떤다거나 공짜 음료수라도 하나 주는 그런 게 아니다. 그는 우리에게 정말 좋은 서비스를 했다.

자기 분야에 숙달된 사람이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은 서비스임을 나는 그날 새삼 깨달았다. 이름 모를 그 웨이터는 자신의 일에 정말 전문가였다. 와인을 묻자 딱 적당히 설명해 주었다. 음식 추천을 부탁하자 양고기를 좋아하냐면서, 자기가 몇 번이고 이걸 정말 맛있게 먹은 사람처럼 실감 나게 설명해 주었다. 맛이 아니라 이 사람의 열정 때문에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좁은 구석 자리에서의 저녁 식사가 즐거웠던 건 전부 그 웨이터 덕이었다.

이날 즐거웠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한국의 값비싼 레스토랑에 가지 않는다. 맛은 문제가 아니다. 한국 셰프의 요리 경험과 실력은 이제 상당하다. 그러나 비싼 옷 한 벌 걸친 것과 옷을 잘 입는 것이 다르듯 음식만 맛있다고 외식 경험이 즐거운 게 아니다. 내가 가끔 가 본 한국의 고가 레스토랑이 그랬다. 어딘가 어색한데 역설적으로 도도한 접객. 겉만 화려하고 전반적으로 조금씩 떨어지는 세부 사항들. 모처럼 무리해서 먹고 나왔는데 ‘이 돈 내고 이 기분을 느끼는 게 맞나’ 싶은 기억들.

모든 식당을 싸잡아 비난하는 게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나는 한국 사람들이 대중 지향 식당에 너무 과하게 군다고 생각한다. 나는 저렴한 국밥집에서 국밥을 건네주는 아주머니의 엄지손가락이 국물에 담겨 있어도 상관없다. 음식 한 그릇에 묻은 친절과 디테일은 모두 유료다. 저렴한 국밥집의 소소한 세부가 덜한 만큼 고기 한 덩어리라도 더 나오는 걸 안다. 그러므로 저렴한 식당의 친절이나 서비스를 불평하는 건 개념적으로 맞지 않다. 같은 이유로 비싼 레스토랑의 미숙한 친절과 서비스도 참작 대상이 아니다.

멋진 레스토랑 웨이터는 결국 일을 대하는 자세와 연결된다. 멋있는 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멋있게 하면 모든 일이 멋있다. 절도 있게 음식 접시를 척척 나르며 손님에게 웃어 주는 웨이터는 멋있다. 내재화된 전문성과 소명으로 일하며 손님이나 주변 사람에게 신뢰를 준다면 현장직이든 계약직이든 멋있다. 일이 삶의 짐이 되어 편한 돈만 좋아하는 지금 서울에서 그런 사람들은 점점 귀해진다. 직업에 귀천이 있는 게 아니라 직업을 대하는 태도에 귀천이 있음을 사람들이 깨닫게 될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저 종종 제네바의 웨이터를 떠올릴 것 같다.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피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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