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6 (월)

트럼프 '면책특권' 美대법서 치열한 법리공방…조건부 수용 움직임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연방대법원 25일 구두변론 열어…보수 법관, '공적행위'에 불소추 특권 공감

진보 법관은 "쿠데타도 면책하냐" 반발…하급심 미흡해 파기환송 가능성도

뉴스1

도널드 트럼프 전 미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25일(현지시간) 면책특권 심리가 열리는 워싱턴DC 연방대법원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정지윤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미국 연방대법원이 대선 뒤집기 시도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던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기한 '대통령 면책특권'과 관련한 상고심 구두변론을 25일(현지시간) 진행했다. 9명의 대법관들은 6대 3으로 보수 우위였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면책특권의 법적 근거가 있는지 여부를 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 측 변호사와 특검팀 변호사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이 과정에서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은 재임 중 대통령이 행한 공적인 행위에 대해선 형사상 불소추 특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본안 재판에서 받는 혐의가 과연 공적인 행위였는지를 두고는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에 하급심으로 사건을 파기 환송해 피고인 혐의의 공무성을 가려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로이터·AFP 통신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날 연방대법원에서 2시간 30분 넘게 진행된 대통령 면책특권 관련 구두변론의 핵심 쟁점은 △대통령 재임 중 행한 공적인 행위에 대해 기소할 수 있는지와 △과연 공적인 행위와 사적인 행위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였다.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 대법관은 "면책특권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는 사적인 행위와 공적인 행위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가 핵심"이라고 짚었다. 이어 "재임 중 행위에 대해 후임자가 기소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대통령 스스로 사면을 시도하는 동기가 될 수 있다"며 면책특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보수 성향의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기소가 남용될 경우 "민주 국가의 기능이 불안정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AFP는 "대법관들 다수가 전직 대통령에 대한 광범위한 형사 불소추 특권을 요구한 트럼프 측 주장에 대해선 지지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도 "보수 성향의 대법관 4~5명이 적어도 '공적인 행위'로 간주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선 모종의 불소추 특권을 찬성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반면 진보 성향의 대법관들은 공적 행위라 하더라도 전직 대통령 불소추 특권이 무분별하게 인정될 경우 무소불위의 대통령이 탄생할 것을 우려했다.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은 "미래의 대통령들이 대담하게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상당한 위험이 있지 않겠냐"고 말했고,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은 "적국에 핵 기밀을 팔아넘긴 대통령도 소추를 면제받아야 하냐"고 되물었다.

그럼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 측 존 사우어 변호사는 대통령이 행한 어떠한 행위에도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며 정적에 대한 살해 명령을 내리거나 쿠데타를 계획했다고 하더라도 면책 대상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진보 대법관들이 내세운 가설들이 "매우 나쁘게 들린다"며 의회로부터 탄핵과 해임을 받은 뒤에야 기소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기소 전 탄핵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은 보수 성향의 대법관에 의해서 배척됐다.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9명의 대법관들도 의회 탄핵의 대상이지만, 탄핵이 형사 소추의 관문이 돼야 한다는 규정은 헌법의 관련 조항에 명시돼 있지 않다"면서 "왜 대통령만 달라야 하냐"고 직격했다.

대통령 면책특권의 법적 근거도 논의됐다. 보수 성향의 브렛 캐버노 대법관은 대통령 기록물과 통신 기록을 의회와 법원으로부터 보호하는 행정상 면책특권을 미 연방대법원이 헌법 제2조를 근거로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며, 이를 대통령 불소추 특권에 준용할 수 있느냐고 물었고, 사우어 변호사는 준용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이날 보수 성향의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은 하급심이 대통령의 공적 행위와 사적 행위를 구분하지 않고 단순히 '기소할 수 있다'고만 판결했다며 파기 환송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내가 읽은 판결문에는 단순히 '전직 대통령이 기소 중이기 때문에 기소할 수 있다'고만 적혀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1

지난달 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연방대법원 모습. 이날 미 연방대법원은 대법관 9인 만장일치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화당 경선 출마 자격을 박탈한 콜로라도주 대법원의 판결을 파기했다. 2024.3.4.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처럼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혐의가 공적 행위인지 여부가 중요한 이유는 연방대법원이 1982년과 1997년 각각 리처드 닉슨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피소된 사건에서 국가 최고 정책 책임자로서 행한 공적 행위와 관련해 민사적 책임을 면제한다고 판시한 바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공적 행위의 형사상 불소추 여부는 연방대법원 판례가 전무하다. 미국 헌법과 법률에도 대통령 면책에 관한 어떠한 규정도 명문화돼 있지 않다.

대통령 면책특권은 지지자들을 상대로 국회의사당을 점거하도록 선동해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한 혐의로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의 형사 재판을 받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소 중단과 1심 재판 지연을 목적으로 꺼내든 논리다.

지난해 8월 잭 스미스 미 연방특검은 2021년 1월6일 발생한 사상 초유의 국회의사당 점거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트럼프 전 대통령을 기소했다. 당시 의사당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인준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를 막기 위해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의회에 난입했다.

스미스 특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는 목적으로 지지자들을 선동한 것으로 판단했다. 점거 가담자들에게 중형을 선고했던 타냐 처트컨 워싱턴DC 연방지법 판사에게 대선 뒤집기 재판이 배당되는 등 판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지난해 10월 트럼프 측 변호인단은 대통령 재임 중 공무와 관련된 행위에 대해선 형사 소추를 면제받는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대통령 면책특권과 관련해 지난해 12월 워싱턴DC 연방지법과 지난 2월 연방항소법원은 모두 기각 결정을 내렸다. 연방항소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현재 퇴임한 만큼 다른 형사 피고인과 마찬가지로 기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에 불복해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연방대법원에 상고했고, 연방대법원이 지난 2월 상고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지난달 4일 열릴 예정이었던 워싱턴DC 연방지법의 대선 뒤집기 재판 역시 잠정 중단됐다.

대통령 면책특권과 관련한 연방대법원 판결은 회기가 끝나는 오는 6월 말에 나올 전망이다.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상고를 기각할 가능성이 높지만 면책특권 심리만으로도 본안 재판에서 피고인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다는 게 미 법조계의 시각이다. 6월 초 연방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는다면, 워싱턴DC 연방지법이 맡은 대선 뒤집기 관련 재판 일정이 추후 잡히더라도 관련 1심 판결은 오는 11월 대선 전까지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날 구두변론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출석하지 못했다. 그는 '성추문 입막음'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뉴욕주 맨해튼지방법원에 이날 연방대법원 출석을 허락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맨해튼지법의 후안 머천 판사는 지난 15일 재판에서 연방대법원 구두변론에는 당사자가 출석해야 할 의무가 없다며 기각했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맨해튼지법에서 열린 형사재판에 피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그는 법정에 출두하며 만난 기자들에게 "나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면서 면책특권은 공무상 꼭 필요한 권리라고 주장했다.

뉴스1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뉴욕주 맨해튼지방법원에서 열린 '성추문 입막음' 재판에 피고인 자격으로 출석했다가 법원 밖으로 나오고 있다. 2024.04.25.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seongskim@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