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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말로만 인문학 중요하다"…덕성여대 독문·불문과 폐지에 술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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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대학 인문대에 영향 줄까 '촉각'…"시사점 매우 큰 사안"

"학문도 흐름따라 변화해여 하지만 보호도 제대로 하길" 지적

뉴스1

(내용과 관련없는 사진)ⓒ News1 권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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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임윤지 기자 = "불문학, 독문학은 꼭 빠지지 않는 어문학의 중심축이라 생각했는데 소식을 듣고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연세대 인문계열을 졸업한 김 모 씨는 내년부터 덕성여대가 독어독문학과·불어불문학과 신입생을 배정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에 놀랐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과 등 다른 계열에 비해 덜 실용적인 학문이라 해서 쓸모가 없는 게 아닌데 학문을 경시한 태도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26일 덕성여대에 따르면 학교법인 덕성학원 이사회는 최근 독문과, 불문과 신입생을 배정하지 않는 내용을 담은 학칙 개정안을 최종 의결했다. 서울권 대학으로는 처음이다.

덕성여대 측은 "자체 평가 기준안에서 두 학과가 최하위를 기록했다"며 경영난과 인기 저조를 근거로 내세웠지만, 학내에서는 "학교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며 "학칙 개정안 의결 과정 역시 민주적이지 않았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덕성여대 폐과 소식에 다른 대학 인문대 소속 학생들과 교수들은 "이번 일은 시사하는 점이 매우 큰 사안"이라며 "타 대학에서도 이 사례를 참고해 유사한 패턴의 일이 하나둘 나타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런 폐과 결정을 두고 "놀랍지만 어찌 보면 예견됐던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학에서 인문계열 학과를 통폐합하거나 없애는 사례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한국외대는 영어통번역학부 등 4개 학부·전공을 융합인재학부로 통폐합했고, 2022년 동덕여대 역시 독일어과와 프랑스어과를 통합했다. 전국 4년제 대학 어문계열 학과는 2018년 920곳에서 2023년 750곳으로 5년만에 18%가량 사라졌다.

서울 소재 대학 철학과에 재학 중인 조 모 씨(23·여) 역시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다들 말만 하지 그 중요성에 대해서 정작 아무도 논의하지 않으니 결국 이 사태가 난 것 같다"며 "대학과 정부가 주인의식을 갖고 인문학의 중요성을 대변할 책무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문과 소외 현상에 관심을 갖는 건 고작 인문학과 학생들과 교수들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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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과 관련없는 사진)ⓒ News1 박지현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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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흐름에 따라 대학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바뀔 수는 있지만, 그것이 학과 폐지로 흘러가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사학과 졸업생 김 모 씨(27·남)는 "이공계나 특정 학과로 쏠림 현상은 나라마다 다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폐과시키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한 것 같다"며 "이럴수록 어느 학문이 소외되지 않도록 지원해야 하지만, 대학 등은 방치만 한 채 이익만 추구하는 게 아닌지 무기력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이번 덕성여대 폐과 결정이 20년 이상 이어온 문과 소외 경향이 가시화한 결과라고 본다고도 말했다.

서울 소재 사립대학 인문사회계열 교수 A 씨는 "학과와 전공 간 장벽을 깨자는 사회적 요구는 시대 흐름에 부합하지만, 학문마다 고유의 발전 속도가 있는데 기초학문을 응용학문만큼 속도감 있게 발전해야 한다는 잣대로 바라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부의 무전공전공 자율선택제 선발 확대 정책도 인문학 쇠퇴를 불러올 거란 지적도 나온다. 무전공 선발은 입학한 뒤 여러 전공을 탐색하다 2학년에 올라갈 때 자유롭게 전공을 선택하는 제도다.

A 씨는 "학생들의 적성을 찾는 시간을 주는 취지는 좋지만 학문의 불균형이 이렇게 극심한 상황에서 이 제도가 확대되면 인문계열 비선호 학과는 중장기적으로 폐과할 수밖에 없다"며 "적어도 '인문학을 평생 공부해도 먹고살 만하겠구나' 생각이 드는 수준으로 학문이 보호됐을 때 추진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 강조했다.

강창우 전국국공립대 인문대학협의회장(서울대 인문대학장)은 "세계대학평가 지표 등을 봤을 때 지난해와 평가 지표가 동일함에도 유독 우리나라만 다른 아시아권 국가에 비해 순위가 하락하고 있다"며 "그 원인은 복합적이겠지만 확실한 건 우리 학문 생태계에 점점 문제가 있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는 현상"이라 말했다.

강 회장은 "지금은 하나의 작은 일이지만 이런 추세가 누적되면 국가 경쟁력과 발전에 큰 위험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immun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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