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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순댓국과 ‘돼지 오마카세’… 오래된 것은 무해하다[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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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서울 은평구 응암동 ‘모래내순대’집의 순댓국(위쪽 사진)과 ‘돼지 한 마리’. 김도언 소설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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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심리를 정확히 뭐라고 부르는 게 적당할지는 모르나 사람에게는 오래된 것을 신뢰하는 본능 같은 게 있다. 항구성 또는 영원성 같은 것에 대한 동경이 반영된 결과일 텐데, 좀 더 쉽게 말하면 오래 살아남은 것에 대한 애틋한 연민 같은 것일 테다.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것은 해롭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은 해로운 것이 오래도록 자기 곁에 있도록 내버려두는 법이 없다. 오히려 멀리 바깥으로 쫓아내지 않던가. 그러므로 노포는 곧 사람들에게 무해한 공간이라는 말도 성립이 가능하다. 이 집은 모래내순대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가게의 위치는 모래내(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가 아니고 은평구 응암동이다. 정확히 말하면 대림시장 안쪽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대림시장도 그 이름 때문에 영등포 대림동에 있는 시장이리라고 지레짐작하는 분들이 많은데 은평구에 있는 유서 깊은 전통시장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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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 소설가


모래내순대는 이 자리에서 장사를 시작한 지 13년 됐단다. 이전에는 모래내에서 15년 장사를 했다고. 직장 생활을 하던 부부가 1년여 순댓국집에서 일을 배우곤 창업했단다. 고기는 독산동 우시장에서 생고기를 떼어다가 직접 삶아서 낸다고 했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당연히 순댓국이다. 국물이 다른 곳에 비해 조금 맑은 편이고, 그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순대와 거기에 더해지는 머릿고기에 군내가 전혀 없다. ‘서비스’로 내어지는 내장까지 더해 양도 넉넉해서 새벽부터 일하는 시장 사람들의 허기를 넉넉히 달래준다. 오픈된 주방도 물론이거니와 화장실도 모두 깨끗하다. 노포라고 하면 보통 위생이나 청결 상태를 미필적(?)으로 방치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 모래내순대는 그런 혐의로부터 자유롭다. 장사를 좀 고지식하게 하는 느낌이랄까.

이곳엔 순댓국 말고 꼭 소개하고 싶은 특기할 만한 메뉴가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돼지 한 마리’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수육 한 접시다. 말 그대로 돼지 한 마리의 부위별 고기를 한 접시에 서너 점씩 골고루 다 담아내는 것이다. 왜 참치나 민어 같은 몸체가 큰 생선 같은 경우도 맛과 식감이 다른 것을 부위별로 내놓아 사람들의 미각을 다채롭게 자극하는 경우가 있잖은가. 모래내순대의 ‘돼지 한 마리’라는 메뉴가 바로 그런 셈이다. 이 한 접시를 먹고서 돼지 한 마리를 다 먹었다고 과장을 해도 큰 흉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 그때그때 준비된 재료를 내어준다는 일본식 메뉴 오마카세가 인기라는데 그렇다면 모래내순대는 돼지 오마카세인 셈이다.

여기 단골손님들은 시장 사람들, 시장을 찾은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음식을 파는 사람이나 사 먹는 사람이나 형편과 사정을 속속들이 안다. 서로 형편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쉬운 게 있을 리 없다. 서로의 곤궁과 피로를 알고, 슬픔과 상처를 아는데 다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앞서서 노포는 사람들에게 해롭지 않은, 무해한 공간이 아닐까라는 말을 했지만, 이쯤 되면 노포는 무해한 곳을 넘어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곳이란 생각에 이른다. 그러니까 퍼블릭 에어리어인 것. 언제든 갈 때마다 내게 필요한 것을 내주는 곳이 곧 노포인데, 거기가 바로 안식처고 예배소다.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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