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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김형렬의 건설人sight] 반도체 강국에서 K-건설 강국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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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2022년 3월 개통된 튀르키에 ‘차나칼레 1915 대교’.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세계 최장 현수교로. 왕복 6차선에 전체길이 4,608m, 주경간장(주탑간 거리)만 2,023m에 달한다. 제작에 들어간 강재가 모두 국산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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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 자식만 빼고 다 바꿔 봐”




어느 기업 총수가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업의 존망을 걱정하며 한 말은, 나라의 존망을 바꿀 만큼 큰 변화를 일으켰다. 소위 ‘신경영 선언’으로 불리는 이날의 발언 이듬해인 1994년, 이 기업은 세계 최초로 256메가 D램 개발에 성공한데 이어 1996년 1기가 D램을 개발했다. 반도체 수출 강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을 세계에 각인시킨 순간이었다.

세계 각국이 가진 발전 동력을 보면, 날 때부터 ‘금수저’를 쥔 듯한 나라가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1859년 펜실베이니아주 ‘타이터스빌’에서 인류 최초로 석유를 발견했다. ‘검은 황금’이라 불리는 석유를 바탕으로 자동차 등 가파른 산업화를 이뤄낸 미국은, 현재 세계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러시아는 과거 러시아 제국 시절 카스피해의 ‘바쿠’에서 미국보다도 많은 석유를 생산하며 부를 축적했다.

석유가 매장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 열강들의 각축장이었다. 네덜란드가 이 지역에서 ‘황금의 샘’을 개발하면서 부를 축적했고 일본의 근대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일본도 태평양 전쟁 당시 석유 확보 목적으로 수마트라 섬을 한때 점령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날 때부터 ‘흙수저’인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가 그렇다. 넓은 땅덩이와 풍부한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오직 인적자원, 즉 기술력뿐이다. 반도체가 세계적 명성을 떨치기 훨씬 이전인 조선시대에도 ‘달항아리’ 등 세계적 수준의 도자기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이 같은 기술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비록 쇄국주의 정책과 일본의 식민지배, 6.25전쟁 등 시련을 거치면서 한때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하기도 했지만, 국토의 대동맥이자 고도 경제성장의 상징인 경부고속도로 건설, 전 국민이 함께 잘살아 보자는 새마을운동, 사우디아라비아 알올라 ~ 카이바 고속도로와 리비아 대수로 공사 등 해외건설 붐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대한민국의 역량을 세계에 널리 알렸고, 그 결과 2017년에는 선진국 문턱인 1인당 국민총소득(GNI) 3만 불을 넘은데 이어, 국내외 어려운 여건속 5만 불에 지속 도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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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파딜리 가스플랜트 공단 전경. 국내 기업이 따낸 사우디 수주 사상 최대 규모인 72억불에 달하는 공사다. [GS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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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정에,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부터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완전 탈바꿈했다. 2000년 개발도상국에 대한 공적 개발원조를 논의하는 OECD 산하 DAE(개발원조위원회)의 수원국 명단에서 완전 제외된데 이어, 2010년에는 선진 공여국으로 공식 인정받았다. 우리나라가 1987년 EDCF(대외경제협력기금)로 유상원조를 시작한 이래, 현재 탄자니아, 인도네시아 등 중점 협력국들을 대상으로 유상협력사업을 추진 중이다.

탄자니아에서는 도로, 농업용 저수지, 병원 등 20여 개의 EDCF 사업들을 진행해 오고 있다. 특히, 옛 수도인 ‘다레살렘’의 아가칸 병원과 코코 해변의 인근지역을 연결하는 왕복 4차선 다리인 ‘뉴 샐린더 교량(일명 탄자니아 브리지)’은 한국 건설사의 위상을 드높인 대표적인 작품으로, 지역의 교통 혼잡 해결은 물론이고 관광명소로서 자리 잡았다. 잔지바르의 ‘킨냐시니’ 및 ‘음렘멜레’ 등에서 진행된 농업용저수지와 관개시설 개발사업도 있다. 농지를 천수답에서 2~3모작이 가능한 땅으로 탈바꿈시켜 농업혁명을 이뤄냈다.

우리나라의 도시계획 능력도 원조의 한 축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중국이 도로 등 기반시설을 원조해 주기는 했으나, 그 품질면에는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나오는 탄자니아에 스마트 시티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공무원 초청 글로벌 연수를 추진 중이다. 수도를 ‘다레살렘’에서 ‘도도마’로 이전 중인 탄자니아에는 안성맞춤인 지원인 셈이다. ‘다레살렘’은 인도양을 마주한 동아프리카 지역의 전략적 요충지라는 특성으로 냉전시대 강대국의 침공이 우려됐기에, 1973년 신수도 이전계획에 따라 내륙 중심부인 ‘도도마’가 낙점됐다.

수도를 ‘자카르타’에서 ‘누산타라’로 이전 중인 인도네시아에도 우리나라의 도시계획 DNA를 이식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현 수도인 ‘자카르타’는 연이은 수해와 함께 해마다 23cm씩 가라앉으며, 향후 해저도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수도를 보르네오 섬 칼라만탄주 동쪽 해안의 ‘누산타라’로 이전하는 내용의 수도 이전법을 2022년 통과시켰다. 프라보워 대통령 당선자도 수도 이전을 포함, 전 정부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우리 정부는 신수도에 복합커뮤니티센터 건립을 위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우리나라의 건설기술과 축적된 도시계획 역량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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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해외원조 및 건설의 역사 중심에는 건설 기술력이 있었다. 이를 토대로 지구촌 곳곳에 세계적인 랜드마크를 쌓아 올리는 데에도 톡톡히 기여하고 있다. 2010년 1월 개장한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는 세계 최고층 건축물이다. 높이 828m, 층수 163층에 달하는 이 건축물은 K-건설을 세계에 널리 알린 작품이다. 2022년 3월 개통된 튀르키에 ‘차나칼레 1915 대교’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세계 최장 현수교이다. 왕복 6차선에 전체길이 4,608m, 주경간장(주탑간 거리)만 2,023m에 달한다. 제작에 들어간 강재가 모두 국산이며, 국내 건설사가 완성한 ‘Made in Korea’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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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원조 뿐만 아니라 K-건설은 지금도 연이은 수주 실적을 올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전 2030’ 계획에 따라 홍해 인근에 최첨단 미래도시인 ‘네옴시티’를 구상 중이다. 친환경 주거 및 상업도시인 ‘더 라인’, 팔각형 구조의 최첨단 산업도시인 ‘옥타곤’ 및 친환경 산악 관광단지인 ‘트로제나’로 계획된 바, 지난해 12월 ‘더 라인’의 지하터널 사업 중 우선 발주된 일부구간을 국내 건설사가 수주했다. 금년 4월에는 사우디 수주 역사상 최대 규모인 72억 불에 달하는 가스플랜트 공사를 수주했다. 한·사우디 정상외교의 결실이자 ‘1호 영업맨’ 대통령과 국내 기업의 원팀 효과다.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사업에서도 K-건설의 위상은 이어지고 있다. 2012년 전쟁 종료 직전, 재건사업의 일환으로 이라크가 바그다드 동남쪽에 건설하는 이 도시는 국내 건설사가 수주하여 건설하던 중 미수금 문제로 2022년 10월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최근 재개됐다. 이런 성과들은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건설산업의 위축과 건설인력 양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라 더욱 값지다.

세계 도처에는 아직도 개척할 시장이 많다. 특히, 민관협력투자개발(PPP)을 통한 우크라이나 재건사업과 인도 시장 등이 대표적일 것이다. 이미 정부와 국내 건설사가 민관합동 원팀이 되어 PPP사업 성과를 이뤄낸 전력이 있다. 국토교통부의 예비타당성조사비 지원이 수주로 연결된 ‘차나칼레 1915 대교’가 그것이다.

세계 시장을 개척할 정부의 지원과 세계적 수준의 K-건설이 융합되어, K-건설이 반도체와 더불어 우리나라를 다시 한 번 더 비상하게 할 또 하나의 강력한 엔진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반도체 강국에 이어 건설강국으로 불리는, K-건설의 르네상스가 이뤄질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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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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