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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생후 18개월 쪽쪽이 물고 나타났다…‘기후소송’ 5시간 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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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3일 기후소송 공개변론을 앞두고 기자회견에 참석한 '딱따구리' 청구인 18개월 최희우(왼쪽 아래 안긴 아기) 등 기후소송 청구인들. 김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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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월 아기를 비롯해 청소년 등 255명이 “국가가 기후위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아 기본권을 침해받고 있다”며 제기한 ‘기후소송’의 첫 변론이 23일 열렸다. 2022년 6월 소송을 제기할 때 20주 태아였던 태명 ‘딱따구리’ 청구인은 벌써 태어난 지 18개월이 지나 쪽쪽이를 물고 헌법재판소에 나타났다.



청구인들 “탄소 40% 감축은 부족…미래세대에 부담 떠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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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기후소송이 열린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종석 헌재소장과 재판관들이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 부실이 기본권 침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가리는 공개변론을 위해 자리에 착석해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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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소장 이종석)는 23일 오후 탄소중립기본법 위헌확인 등 4개 사건을 병합해 공개변론을 열었다. 2020년 3월 청소년 환경단체인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들이 처음 소송을 제기한 지 4년 만이다.

청구인들은 2021년 9월 만들어진 ‘기후위기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과 시행령으로 정해둔 ‘2030년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한다’는 목표가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과 재해는 국민의 생명권·건강권·재산권 등을 구체적, 현실적으로 침해하고, 감축 부담을 회피해 미래 세대에 전가하는 건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청구인 측은 “국제사회가 합의한 ‘산업화 이후 1.5도 이내 상승’ 목표를 달성하려면 각 나라가 자기 몫을 해야하며, 주요국이 2030년 목표로 2010년 대비 40~60% 감축을 설정해둔 것에 비해 대한민국은 27%에 불과해 턱없이 부족하다”고도 했다. 청구인 측은 “입법부와 행정부가 대응에 실패하고 있다”며 해외 기후소송의 사례를 들어 “기후변화가 되돌릴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에 지금 헌법적 보호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목표 실패해도 누구도 책임 안 지는 것도 위헌”



현재 우리나라 탄소중립기본법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배출량 0)’ 및 2030년 목표 감축량을 정해뒀지만, 2030년과 2050년 사이에는 중간 목표치를 구체적으로 정해두지 않았다. 청구인들은 ▶2031~2050 연도별‧부문별 세부 감축 목표를 정하지 않은 것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다음 감축목표에 반영할 지, 누가 책임질지 등 감축을 보장할 규정이 없는 것도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청구인 측 대리인은 “감축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경우 누구도 헌법‧법률‧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2020년 감축목표를 이행하지 않고 폐기해버린 전과가 있고 그간 정부가 정한 감축 목표를 지킨 적이 없는데, 또 그럴 가능성을 통제할 법적 장치가 전혀 없는 게 중대한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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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기후소송 공개변론을 앞두고 청구인단은 전국의 어린이, 청소년, 학부모, 성인 등이 헌법재판소에 보내는 편지도 모아 제출했다. 사진 기후미디어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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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축 계획 정부 자율, 미래 기후재난 가능성은 소송 못해”



이번 공개 변론에 이해관계인으로 출석한 정부 측은 ▶헌법소원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소송이며 ▶정부의 목표치는 현실적으로 자율 결정한 타당한 수치인데다 ▶법령에 기본권 침해 내지는 위헌적인 부분이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 측 대리인은 “(기후변화 대응에 관한 국제협약인) 파리협정은 우리 헌법적 가치보다 상위에 있지 않고, 감축량은 입법자가 결정하는 것”이라며 “먼저 산업화를 겪고 감축을 시작한 선진국과 단순 비교할 수 없고 설령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국가기본계획은 정부를 상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청구인들이 직접 당사자가 아니고,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기후재난 가능성으로 현재의 생명권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폈다. “법 조항은 ‘기후변화에 대응할 정부의 역할’을 규정할 뿐, 기성세대와 미래세대를 차별하고 있지 않다”며 “미래의 기후재난이 발생하더라도 국가의 조치로 충분히 보호될 수 있다”고도 했다.

정부 측 대리인은 “탄소중립기본법 1조에서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의 삶의 질을 높이고 생태계와 기후체계를 보호한다’고 분명히 밝혔다”며 “정부의 목표가 미래세대에 짐을 떠넘기는 것으로 오인되지 않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국가의 조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호의무 위반인지 따져봐야하며 무리한 감축 목표를 세울 경우 기업경쟁력을 약화시켜 오히려 다른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도 했다. 파리협정에 따라 일단 목표를 한번 설정하면 후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설정해야한다고도 덧붙였다.

정부 측 김재학 변호사는 “'2050 탄소배출 0'을 명확히 선포했고, 5년마다 국제사회에 보고하기 때문에 계획에 공백이 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5년마다 감축목표를 상향하고 2년마다 점검 보고서를 국제사회에 내야 해 국가 신인도와 연결돼있기 때문에 상당한 압박이 있고, 정부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판관들이 감사원의 온실가스 감축 분야 감사 결과 및 국가인원위원회의 의견서 등을 들며 현재의 감축목표가 인권침해 우려가 있다는 의견에 대해 묻자 김 변호사는 “기술적인 면과 외교적인 면을 모두 고려해 결정한 감축목표”라며 “기관의 의견은 존중하지만, 정부의 노력에 대한 평가 의견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기성세대가 막아야” “기회의 창 닫히고 있다” 입 모아



참고인으로 출석한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이미 산업화 이후 지구 평균 온도는 1.1℃ 상승한 상태고, 나이가 어릴 수록 가중된 기후위기를 겪기 때문에 IPCC도 ‘기후위기는 정의롭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며 “기성세대가 ‘막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탄소배출을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측 참고인인 안영환 숙명여대 기후환경에너지학과 교수도 “1.5℃ 목표에서는 멀어지고 있고, 기회의 창은 닫히고 있다”며 “다만 탄소중립기본법에 이행점검 조항(9조)이 있고, 그에 따라 보고서를 작성해 탄소중립위원회에서 심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변론은 5시간동안 이어졌다. 헌법재판소는 다음 달 21일 한 차례 더 변론기일을 열고 한국환경법학회 국제이사를 지낸 연세대학교 박덕영 교수 및 유연철 전 외교부 기후변화대사를 참고인으로 불러 의견을 더 들을 예정이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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