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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정부 온실가스 감축목표 안일” vs “산업구조 감안해야”…기후소송 공개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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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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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감축목표 40%는 기본권를 위한 최소 기준에도 미치지 못한다”(청구인 측)
“선진국 대비 떨어지지 않는다…제조업 중심 산업구조도 감안해야”(정부 측)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이른바 ‘기후소송’ 공개변론에선 시민들로 이뤄진 청구인 측과 정부가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국내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기후소송 공개변론인 만큼, 130여명이 현장 방청을 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온라인 방청 신청자는 215명에 달했다.

이종석 헌재소장은 “최근 유럽인권재판소에서 스위스 정부의 기후 변화 대응책이 불충분해 스위스의 여성과 노인 등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결정을 선고한 바 있고 국내 언론에도 크게 보도되며 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더 높아졌다고 생각한다”며 “재판부도 이 사건의 중요성과 국민적 관심을 인식해 충실하게 심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변론은 청소년 환경 단체인 ‘청소년 기후 행동’ 회원 19명이 정부의 소극적 기후위기 대응이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국회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한지 4년 만에 열렸다. 이외에 시민 123명, 영유아 62명의 부모, 다른 시민 51명이 청구한 헌법소원 심판 3건까지 병합해 헌재가 이날 본격 심리를 시작했다.

●“정부 감축 목표 안일” vs “산업구조 등 현실 감안해야”청구인 측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40%로 줄이기로 한 탄소중립기본법과 시행령 등이 헌법상 환경권, 생명권, 건강권 등 기본권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파리협정 등 국제기후조약의 목표치인 지구 온도 1.5도 제한에 부합하지 못한 데다, 2030년 이후의 감축부담이나 실패시 계획 등에 대해선 아무런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으므로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청구인 측은 이날 변론에서 “40% 감축 계획은 기본권을 보호하는데 유효하고 적절한 최소한의 기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정부가 지나치게 안일하고 자의적으로 목표를 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구인 측은 영유아 청구인 중 1명의 태아 시절 발 사진을 제시하면서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중요한 기후 소송이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되고 있고 이 판결이 유라시아의 많은 최고법원 판결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며 “재판관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전향적 판결을 촉구했다.

반면 국무조정실장, 환경부장관 등 정부 측은 해당 법이 국민의 권리나 의무를 직접 제한하지 않기 때문에 헌법소원 대상이 되는 공권력 행사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각국의 산업 구조, 배출량 정점 및 감축 시작 시기 등 실정에 따라 달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는 점, 제조업 비율이 높은 국내 산업구조와 경제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하면 산업 부분의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줄인 것을 위헌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맞섰다. 정부 측 대리인은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 에너지 소비가 많은 환경에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로 온실가스 배출이 많아 산업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감축은 국가산업 전반의 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4번째로 탄소중립 선언을 했다”며 “각국의 기준이 달라 비교가 어렵지만 우리나라의 감축 목표가 선진국 대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 ‘우르헨다’ 시작으로 미국 독일 등 해외서 정부 기후 대응 책임 인정

해외에서는 이미 굵직한 기후소송에서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책임이 인정된 바 있다. 기후소송의 시초로 평가받는 네덜란드 ‘우르헨다(Urgenda)’소송이 대표적이다. 환경단체 우르헨다 재단과 시민 886명이 2013년 ‘네덜란드 정부가 기후변화 대응책임을 소홀히 해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네덜란드 대법원은 2019년 12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의 25%까지 감축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네덜란드 대법원은 “기후변화는 인권을 위협하고, 각국은 그에 대응해 자기 몫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국제적으로 감축을 합의하는 것은 정부의 권한인데 이를 하지 않을 경우 국가 의무 위반”이라고 판시했다. 서구 국가에서 최초로 인권 침해라는 법리로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승소 판결이 나온 것이다.

미국 몬태나주 법원은 지난해 8월 “몬태나주에서 화석연료 정책을 승인할 때 기후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며 주정부의 기후대응 책임을 인정했다. ‘우리 아이들의 신뢰’라는 비영리단체가 5~22세 아동, 청소년 16명을 대리해 “주정부가 기후변화를 신경 쓰지 않고 화석연료 개발을 승인한 탓에 깨끗한 환경에서 살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는데, 법원이 이들의 손을 들어주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기후소송이 잇따라 기각됐던 미국에서도 변화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사례로 평가된다.

2021년 4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독일 기후변화대응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 감축을 정한 기후보호법의 목표가 2030년 이후 세대에게 과도한 부담을 전가하며, 2030년 이후 목표 규정이 부재한 것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판단이었다. 이후 독일 정부는 이후 법을 개정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1990년 대비 55%에서 65%로 상향 조정했다.

장은지 기자 jej@donga.com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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