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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7년 일한 직장인데 ‘내일까지만 나오라’며 해고…아파트 경비원 ‘갑질’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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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 일한 직장에서 ‘내일까지 짐 챙겨 나가라’며 해고 통보를 받고 2∼3개월마다 계약서를 쓰게 해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함을 느끼며 경비원들이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지난해 한 경비원이 사망한 지 1년 남짓 지났는데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은 셈이다.

세계일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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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입주자 회장이 술을 마시고 전기실에 들어가려다 직원들과 다퉜습니다. 직원들은 ‘위험하니까 더 이상 들어오면 안 된다’고 말렸는데 이후 입주자 회장이 ‘인간성이 좋지 못한 직원은 잘라야 한다’고 따졌고, 회장을 말린 직원들은 결국 퇴사해야 했습니다.

#2. 관리소장이 근로계약서에도 없는 야간 주차단속이나 놀이터 청소, 관리소장의 빨래지시, 휴계시간 내 업무 등 부당한 업무지시를 하길래 분리조치를 요구했습니다. 진전이 없길래 노동청에도 진정을 넣었지만 결국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후 분리조치를 요구했던 제게 회사는 계약만료를 통보했습니다.

각각 지난해 6월과 지난해 11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이 같은 사례는 관리소장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다가 지난해 3월14일 숨진 서울 강남구 아파트 경비원 박모씨 사례와 비슷하다. 21일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해 1월1일부터 지난 15일까지 접수된 이메일 중 아파트 등 시설에서 일하는 경비, 보안, 시설관리,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상담 요청은 47건이다. 부당업무지시와 막무가내식 해고 통보로 이어지는 고용불안 문제는 박씨 사망이 400여일 지난 현재도 여전했다.

상담자들이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한 사람은 주로 관리소장, 입주민, 용역회사 직원들이었다. 경비원 괴롭힘 문제는 ‘원청 갑질’의 문제와도 닿아 있다. 경비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한 용역회사는 관리소장이나 입주민을 상대로는 ‘을’의 위치이기 때문에 ‘갑’의 의사에 반해 경비 노동자를 보호하고 나설 가능성이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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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조건도 갑이 요구하는 대로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2019년 발간된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응답자의 94%가 1년 이하의 단기 계약을 맺고 있고 3개월 계약도 21.7%에 달했다. 3개월 이하로 초단기 재계약을 하는 구조일 경우 곧바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 경비원은 관리소장이나 입주민 등과 갈등이 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행 공동주택관리법상 입주자, 입주자대표회의 및 관리주체 등은 경비원 등 공동주택 종사자에게 관계 법령에 위반되는 지시나 부당한 지시를 명령하는 행위가 금지되지만, 부당한 지시의 범위가 모호해 실제 업무 시에는 계약 연장 여부가 달린 노동자는 대부분의 지시를 따르게 된다는 게 직장갑질119 설명이다.

이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뿐 아니라 각종 비위에도 오히려 피해자가 퇴사하기도 한다. 한 여성 미화원은 “미화반장이 뒤에서 끌어안거나 손을 잡는 등 성추행을 수십 차례 했다”며 “가해자 뺨을 치며 격렬히 거부하고 이 사실을 본사에 알리기도 했으나, ‘알려지면 여사님도 좋을 것 없다’며 가해자도 해고할 테니 같이 퇴사하라는 요구가 왔다”고 전했다.

임득균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다단계 용역계약 구조에서 경비노동자들은 갑질에 쉽게 노출된다”며 “공동주택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갑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내 직장내 괴롭힘의 범위를 확대하고, 단기 계약 근절·용역회사 변경 시 고용승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14일 강남 아파트 경비원 박씨가 사망한 뒤 직장 동료였던 경비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해자로 지목된 관리소장의 사과와 해임을 요구했지만 이 역시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해당 아파트는 지난해 12월31일 경비원 76명 중 44명에게 오히려 계약만료를 통보했다. 노조는 아파트 측의 일방적인 해고 통보에 맞서 지난 1월10일부터 복직 투쟁을이어가고 있으며, 지난 19일은 투쟁이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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