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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카페 음료에 값싼 청색 색소를 사용한 이유 [박영순의 커피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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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건강하고 맛있게 즐기기 위해선 결점두(Defect bean)를 꼼꼼하게 골라내야 한다. 썩거나 벌레 먹으면 커피에서는 나오지 말아야 할 성분이 만들어져 불쾌하고 몸에도 좋지 않다. 특히 박테리아나 곰팡이 감염으로 인해 군데군데 새파랗게 얼룩진 커피 생두를 보면 섬뜩하다. 독소가 파란색(Blue)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아 인류는 파란색 먹을거리에 대해서는 식욕을 억제하도록 진화했다.

200도 안팎에서 10분가량 볶는 과정에서 독소가 대체로 사라지기 때문에 ‘커피음료에 관해 색상이 주는 경고’에 대해선 그다지 민감하게 대하지 않는다. 여기엔 과학과 기술의 발달 덕분에 해로운 음식이 일상생활에 쉽게 진입하지 못하도록 한 사회적 시스템도 한몫했다.

이 때문일까, 커피에서 파란색은 귀한 대접을 받기도 한다. 신선한 커피 생두는 속에서 푸른빛이 우러나오는 듯 보인다고 해서 에메랄드 보석에 비유된다. 게샤(Gesha) 품종을 세계적으로 알린 파나마 커피 농장의 명칭이 ‘에스메랄다’이었다. 에메랄드의 스페인어 표기이다.

세계일보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청색 색소 원액을 넣어 만든 음료를 공개한 사진. 음료를 쏟아낸 컵에 짙은 파란색이 선명하다.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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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3년 오스만튀르크 30만 대군이 합스부르크의 빈을 포위했다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신성동맹의 가세로 인해 급히 퇴각하며 두고 간 커피 생두에서 ‘블루보틀(Blue bottle)’이라는 단어가 생겼다. 생두가 물에 젖지 않도록 병에 나눠 담아 카페에 줄지어 두었는데, 멀리서 보기에 푸른빛이 감도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파란색이 인간의 관능과 감성에 끼치는 영향을 밝힌 여러 논문에서 새로운 가치가 드러났다. 파란색에 노출되면 감정 조절과 관련된 편도체와 신체 기능 조절에 중요한 시상하부 활동이 활발해져 이성적인 판단이 촉진된다. 색채심리학에서는 ‘블루’를 차분하고 평온한 감정을 유발하는 색으로 본다. 스트레스나 불안감은 식욕 증가를 초래하기 때문에 블루가 불러일으키는 안정감은 식욕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음식문화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같은 ‘블루의 반격’은 음료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블루가 안전하다”는 학습효과 덕분에 파란색은 이제 상쾌함과 차가움, 수분 보충을 상징하는 여름 음료시장의 키워드가 됐다. 오랫동안 음식에서 금기시한 색을 사용함으로써 시선을 끄는 효과도 누릴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여름철에 인기를 끄는 파란색 음료에는 대부분 ‘블루 퀴라소’를 넣는다. 쓴맛이 강해 생으로 먹기 불편한 ‘라라하 오렌지’를 사용해 리큐르를 만든 다음 파란색 색소를 넣은 것이다. 1961년 엘비스 프레슬리가 주연한 영화 ‘블루 하와이’가 크게 인기를 끌면서 파란색 음료는 세련됨과 낭만의 가치까지 장착하게 됐다.

음료에 색소를 직접 넣지 않고 리큐르를 통해 파란색을 드러내는 것은 비단 멋이나 맛 때문만이 아니다. 커피전문점에서 흔히 사용하는 타르계열의 청색 색소는 석탄의 콜타르에 함유된 벤젠이나 나프탈렌을 추출해 합성한 것이기 때문에 유해성 논란이 따른다. 특히 어린이에게는 과잉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등의 유해성으로 인해 섭취 및 사용량을 제한하고 있다.

최근 거액을 들여 유명인을 모델로 쓴 덕분에 수백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고 자랑한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청색 색소 원액을 탄 음료를 어린이에게 팔았다가 위해성 논란에 휘말렸다. “광고에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해 값싼 재료를 썼다”는 비난에 대해 스스로 해명해야 한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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