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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이슈 미술의 세계

[단독]한국인이 日올림픽대표 감독 맡은 셈… “韓日, 차이보다 공통점 더 많이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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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72년 사상 첫 외국인 예술감독 이숙경씨]

작년 광주비엔날레서 첫 인연… 日 모리 작가가 선택해 맡게 돼

日재단 “이감독 국제네트워크 강점

문화의 힘으로 한일 이견 극복 가능”

동아일보

17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한 이숙경 일본 국가관 예술감독(오른쪽)과 일본 대표 작가인 모리 유코. 이 감독은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한 일본 국가관의 72년 역사상 첫 외국인 예술감독이다. 이들 뒤편에는 모리 작가의 설치 작품 ‘모레 모레(물이 새는)’가 보인다. 베네치아에서 구한 잡동사니가 얼기설기 얽혀 있고 이들을 연결하는 호스에서 물이 떨어지며 소리가 나는 등 서로 상호 작용하는 모습을 담았다. 베네치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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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현대미술 축제이자 ‘미술 올림픽’으로 불리는 베니스 비엔날레가 17일(현지 시간) 사전 개막한 가운데 일본 국가관 예술감독을 맡은 이숙경 영국 휘트워스미술관장(55)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비엔날레에는 각 나라가 국가관을 설치해 ‘경쟁’하는데 마치 일본 올림픽 국가대표팀 감독을 한국인이 맡은 격이기 때문. 일본은 1952년부터 비엔날레에 국가관을 세웠는데 이번에 72년 만에 처음 외국인 예술감독을 초빙하며 한국 예술인에게 총책임을 맡긴 것이다.

한국인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외국 국가관에 대표 작가로 참가한 적은 있지만 예술감독이 된 것은 이번 비엔날레가 처음이다. 앞서 1993년 백남준은 독일관 대표 작가로, 1995년 최재은(재일교포 설치미술가)은 일본관 대표 작가로 참가한 바 있다. 이날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 전시장 내 일본관에서 이숙경 예술감독을 만났다. 이번 전시에서 ‘합’을 맞춘 일본관 대표 작가인 모리 유코(44)와 함께였다.

일본이 파격적으로 이 감독을 선택한 배경은 무엇일까. 최근 일본이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바꿨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번에 참가 작가를 먼저 선정하고, 작가가 예술감독을 선택하게 했다. 지난해 일본관 대표 작가로 선정된 모리 작가가 이 관장을 지목하면서 협업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길지 않았지만 깊은 교감을 느꼈다고. 두 사람이 처음 함께 일한 것은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였다. 당시 예술감독이었던 이 감독이 모리 작가를 초청해 광주 남구 양림동의 예술공간에서 설치 작품 ‘I/O’를 전시했다. 이 작품은 한강의 소설 ‘흰’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이 감독은 “모리 작가가 광주비엔날레에서 한국의 역사를 진지하게 연구해 감동받았다”고 했다. 모리 작가는 “광주에 수개월 동안 머물렀을 때 자주 가던 와인바의 사장님과 친해졌는데 나중에 그녀를 대학에서 가르쳤던 교수님이 한강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놀란 경험이 있다”며 “이렇게 세상의 많은 것들이 우연 같지만 서로 깊이 연결된 모습이 많은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한국인 감독’을 맞은 일본 미술계, 더 나아가 일본 현지의 반응은 어땠을까. 모리 작가는 “일본 언론에선 이 감독이 임명되자 관심이 매우 뜨거웠다”면서 “참여 작가인 내 얘기는 쏙 빼놓고 감독에 대해서만 다루기도 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앞서 예술계는 국적이 중요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있긴 했다. 이에 일반인들의 반응을 좀 걱정했는데 반대보다는 호응이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관을 운영하는 외무성 산하 일본국제교류기금의 사토 아쓰코 문화사업부장은 “아시아인 최초 영국 테이트모던 국제미술 수석큐레이터 출신인 이 감독의 국제적 네트워크와 경력을 알고 있었고, 원칙적으로 큐레이터(예술감독)에는 국적 제한이 없기에 모리 작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때로 한일 양국의 정치적 의견이 다르고 때론 민감하지만 문화의 힘으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기에 두 사람의 협업은 기쁜 일이었다”고 했다.

1995년부터 비엔날레에 국가관을 연 한국 역시 올해 외국인이 공동 감독을 맡았다. 덴마크 출신의 야코브 파브리시우스 아트 허브 코펜하겐 관장이 이설희 큐레이터와 함께 한국관 전시를 책임지게 된 것. 한일 양국에서 모두 외국인 감독이 참여하는 첫 비엔날레가 된 것이다.

이 감독에게 ‘한일관계 때문에 작업하는 데 부담은 없냐’고 물었더니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답이 나왔다. “공통점이 더 많이 느껴졌다”고 힘줘 말한 것. 그는 “베네치아에서 모리 작가와 일하며 한일 간 차이점보다 아시아 여성으로서 닮은 점을 더 강하게 느꼈다”고도 했다.

이날 이 감독은 검은 옷을, 모리 작가는 화려한 패턴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같은 디자인의 검은색 신발을 나란히 신고 있었다. 서로 다른 국가적 배경을 지녔지만 ‘미술의 길’은 함께 걷는다는 느낌이었다.

베네치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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