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씨티은행의 지난해 실적 성적표다. 2022년 한국씨티은행 당기순이익은 1460억원이었다. 지난해는 2776억원으로 훌쩍 뛰었다. 여타 은행권 금융지주사나 시중은행 당기순이익은 같은 기간 소폭 증가했거나 감소했다. 한국씨티은행만 이례적으로 늘어나다 보니 업계 관심이 뜨겁다.
지난해 비이자수익 약진으로 순익이 껑충 뛴 한국씨티은행. 박스 사진은 유명순 행장. (한국씨티은행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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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순익 늘렸나
특수 통화 매출채권 할인 특화
대손비용.
매출채권 중 부실 자산 여지가 있어 최악의 경우 회수 불가능한 상황을 가정해 추정손실로 인식하고 비용으로 잡을 때 쓰는 말이다. ‘대손충당금을 쌓는다’라고 할 때가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채권별로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등급은 다 다를 수 있다. 금융감독당국은 가급적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으라는 입장이다.
그래서 각 은행마다 대손비용이 올라가는 분위기다.
한국씨티은행도 만만찮다. 2023년 말 대손충당금 적립액은 전년도 대비 1.2% 증가한 3105억원. 총여신이 28%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많은 충당금을 추가 적립했다.
한국씨티은행 관계자는 “IMF 외환위기 상황에 준하는 경기 악화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실시한 위기 상황 분석 결과를 미래 경기 전망에 반영해 충분한 대손충당금을 적립했다”고 밝혔다. 2023년 12월 말 기준 한국씨티은행의 총여신 대비 충당금 적립률은 2.64%를 기록했다. 시중은행 평균 0.98%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향후 금리가 하락세로 전환되고 경기 회복세가 진행된다면, 대손충당금 환입으로 신용 비용(Credit Cost)이 감소하면서 한국씨티은행 당기순이익에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이지만, 여하튼 이런 식으로 한국씨티은행은 당장 순익을 희생하며 보수적으로 재무관리를 단행했다.
그러고도 전년 대비 당기순이익이 90% 이상 증가한 만큼 금융권에서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때 핵심 기여를 한 부문은 비이자수익이다. 통상 비이자수익은 은행권 영업이익 중 이자이익을 제외한 부분을 의미한다. 송금, ATM 수수료, 신용카드 수수료, 신탁 수수료, 펀드 판매 수수료, 방카슈랑스 판매 수수료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 채권, 외환, 파생상품 관련 수익, 부동산 임대수익 등도 비이자수익에 포함된다.
은행 이자수익은 금리 변동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다. 반면 비이자수익은 은행 수익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논리에 한국씨티은행이 적극 부응한 결과가 지난해 실적이다. 한국씨티은행의 지난해 비이자수익은 전년 대비 101.2% 증가했다. 사실상 소매금융 철수를 마무리 짓고 지난해 기업금융에만 집중한 결과라 더 특기할 만하다.
대표적으로 호응을 받은 상품이 해외 매출채권 할인 프로그램이다. 기업 고객이 교역에서 발생하는 인수된 환어음(Accepted Drafts, Bills of Exchange)이나 사후송금방식(Open Account, O/A)의 송장(Invoice)을 바탕으로 선적 후 발생한 채권을 할인해 자금 융통을 해주는 상품이다. 수출하고도 돈을 제때 못 받아 현금흐름이 막힐 법한 국내 수출 기업에 숨통을 틔워주는 상품이라 큰 호응을 받았다.
특수 통화 매출채권 할인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었다. 이 상품은 특수 통화 익스포저에 노출될 위험을 효과적으로 헤지하는 금융 솔루션이다. 환차손을 걱정하는 대기업이 대거 이용했다는 후문이다. 더불어 원자재 수요가 있는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한 원자재 헤지 거래 등 각 기업 요구에 맞는 한국씨티은행만의 차별화된 상품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각 금융 업종별 맞춤형 서비스도 먹혔다. 국내 보험사 맞춤형 상품인 국채 선도 거래, 은행 맞춤형인 무역금융 거래·해외 송금 서비스 확대, 카드사 전용 외화 ABS 발행 관련 에이전트 역할 수행, 자산운용사를 위한 수탁 서비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외환, 파생상품, 유가증권 관련 이익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은행 관계자는 “트레이딩 수익이 증가한 부분도 있고, 외환·파생상품에서 고객 수익이 증가한 부분이 컸다”고 말했다.
유명순 행장 리더십 재조명
기업금융 전문가로 연임 성공
한국씨티은행이 이런 전략을 쓸 수 있는 배경에는 전 세계 110개국에 걸쳐 있는 지사 네트워크의 힘이 자리하지만, 유명순 행장도 큰 역할을 했다.
유 행장이 취임할 즈음 씨티은행 글로벌 본사가 한국씨티은행 소비자금융 부문에서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한국씨티은행은 기업금융만으로 회사를 운영해야 한다. 문제는 수익성. 소매 부분을 빼고도 과연 순익을 늘릴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시선이 많았다.
유 행장은 1987년 한국씨티은행에 입행한 후 다국적기업금융부 본부장, 기업금융상품본부 부행장, 기업금융그룹 수석부행장 등을 거쳤다. 가히 ‘기업금융통’이다.
그는 취임 즉시 조직 개편 대신 핵심 전문가를 각 본부에 앉혀 전문성을 고도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기업금융 관련 조직인 자금시장본부, 기업금융그룹, 커머셜사업본부는 각자 신규 상품 개발, 고객 유치에서 힘을 냈다.
자금시장본부는 다양한 대기업의 헤지 전략 상품을 제공, 대기업 고객의 ‘록인’ 효과를 극대화했다. 기업금융그룹은 새롭게 뜨고 있는 업종의 중견·중소기업 발굴에 공을 들였다. 그 결과 IT 기업은 물론 전기차, 2차전지 회사를 새로운 고객으로 맞이할 수 있었다. 자금 여력이 있는 공기업도 적극 영입하고 다양한 금융상품을 제공해 해당 기업 사내 유보금 운용 수익률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커머셜사업본부에서는 각 기업이 필요로 하는 부분만 골라서 상품 추천을 해주는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면서 초과 실적을 달성케 했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유 행장은 지난해 하순 연임에도 성공했다. 임원추천위원회는 “유 행장이 ▲임기 동안 수익 모델의 전략적 재편이라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달성해 소비자금융 단계적 폐지를 실행하는 동시에 기업금융에 집중해 역량을 강화한 점 ▲수익 모델의 전략적 재편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2023년 이후 주요 재무지표가 가시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점 ▲조직 문화 활성화, 지속 가능 경영 추진, 책임금융 강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점 ▲리스크 관리에 역점을 두고 내부통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함으로써 최근 은행권에서 반발하고 있는 사고를 성공적으로 예방해온 점 등을 높게 평가한다”고 소개했다.
연임에 성공한 유 행장은 ‘공신 챙기기’로 화답했다.
올해 4월 한국씨티은행은 실적에 크게 기여한 엄지용 자금시장본부 부행장, 김경호 기업금융그룹 부행장, 유기숙 커머셜사업본부 부행장 연임(추가 2년)을 결정했다.
올해도 사상 최대 실적?
미국 본사 ‘흔들’ 변수
“좋은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한국씨티은행 관계자의 말이다.
유명순 행장은 “올해 한국씨티은행 기업금융그룹의 주요 전략은 기존 고객과의 거래 관계 심화, 신규 고객 유치, 마켓 상품 솔루션 제고, 신탁 비즈니스 확대로 요약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고객 요구에 맞는 차별화된 전문 금융 솔루션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씨티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전기차, 2차전지, 디지털, ESG, 신재생에너지 분야와 같은 신경제(New Economy) 분야 투자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변수는 의외로 미국 본사다. 미국 씨티그룹은 14년 만에 최악의 실적 부진에 빠진 상황. 씨티그룹은 지난해 4분기 18억달러(약 2조367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본사 차원의 대규모 구조조정 발표가 뒤따르면서 자칫 한국에까지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5호 (2024.04.17~2024.04.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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