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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이슈 미술의 세계

"조경은 땅에 쓴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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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마당에 정영선 작가가 조성한 정원.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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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집 손녀는 어릴 때부터 식물이 좋았다. 고교시절 백일장을 휩쓸었고 부친과 동문수학한 박목월 선생이 아꼈을 정도로 문재(文才)가 있었지만, 소녀는 시인이 되길 포기하고 삽을 들었다. 서울대 농대에 진학하면서 어떤 여성도 가지 않는 길을 택했다. 땅을 다지고 나무를 기르고 꽃을 가꾸는 일. 조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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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경의 대모' 정영선(83·사진)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이색 전시 '정영선: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가 식목일인 지난 5일 개막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올 9월 22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모든 면에서 새롭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처음 열리는 조경 전시인 데다, 미술관 중정의 전시마당에는 직접 정원을 꾸몄다. 한국에만 사는 자생 식물로 가득한 녹음이 그 자체로 전시가 된다. 지난 4일 만난 작가는 "전시는 저에게 황홀하고 기적이다. 조경 분야는 그냥 건축의 뒷전 정도로만 알고 있는데 제가 선배로 후배들을 위해 길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라 창피하고 부끄럽지만 기꺼이 응했다"고 말했다. 작가는 서구에서 시작된 조경의 개념을 한국의 국토와 경관에 맞게 정착시킨 주인공으로 손꼽힌다.

호암미술관 전통 정원 '희원'으로 환경문화대상(1998), 선유도공원으로 서울시건축상(2003) 등을 받았다. 이번 전시는 특히 한국 자생식물을 중심으로 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작가의 태도를 조명하는 데 주력했다.

60여 개 프로젝트 조경설계 도면과 사진, 모형, 영상, 수채 그림, 청사진 등 기록자료 500여 점을 총망라한 입체적인 볼거리를 전시장 바닥까지 활용한 독특한 형식으로 보여준다.

그가 국가 주도의 공공 건축·토목 사업을 이끈 경력은 셀 수 없이 많다. 예술의전당(1984), 선유도공원(2001), 서울식물원(2014), 경춘선숲길(2015~2017) 등에 조성된 숲이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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