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포스트 박종언 전 편집국장, 정신장애인 기자들과 장애문제 담론화
"그동안의 활동,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 찾아가는 여정"
2024년 올해의장애인상 수상자 박종언 씨 |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심할 때는 집 앞 슈퍼에 가는 것도 두려워 스스로 온몸에 매질을 해야만 밖으로 간신히 나갈 수 있었어요.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고 생각한 순간 '나에게 남은 것은 문학'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2024년 '올해의 장애인상'을 수상한 박종언(52)씨는 조현병과 사투를 벌이며 기자·작가로서 정신장애인의 목소리를 담은 글을 써왔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포르투갈어과를 졸업하고 문학도를 꿈꾸며 부푼 마음으로 브라질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유학생활은 상상보다 훨씬 험난했다.
브라질의 치안 상황은 좋지 않았다. 청부 살해를 목격하기도 했고 알고 지내던 한인 교포들이 여럿 죽었다. '집 밖에서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공포감에 일상생활이 힘들었다. 그러던 와중 조현병이 발병했고 박 씨는 20년 이상 이와 싸우고 있다.
귀국 후에도 그를 괴롭힌 조현병으로 박 씨는 사회적 관계와 생업 모두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노점상 등을 했지만 잘 되지 않아 원양어선을 타기도 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는 생각을 하던 중 삶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박 씨가 기거하던 공동생활가정에서의 권유로 백일장에 나가 수상하게 된 것이다.
"당시는 젊은 시절 꿈꿨던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실패와 좌절만 남은 상황이었어요. 거기에 오래 전 꿈이었던 문학이 다시 찾아온거죠."
그는 글쓰기를 "내가 껴안아야 할 마지막 기둥"이라고 표현한다.
글을 쓰고 치료를 받으며 박 씨는 점차 정신장애인을 위한 작품 활동에 나서게 됐다. 2014년에는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에서 시로 우수상을, 이듬해 2015년에는 소설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의 글은 고단한 삶을 사는 정신장애인에게 존중과 위로를 전하고 있다.
박종언 씨가 2014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에서 은상을 수상한 시 '위로' |
2018년부터는 정신장애인의 인권 옹호를 위한 대안언론인 '마인드포스트'를 창간해 편집국장으로 일했다. 마인드포스트는 정신장애인 스스로의 시각에서 장애를 다룬 당사자 언론이다. 현재 세 명의 정신장애인이 기자로 일하고 있다. 슬로건 또한 '우리를 빼고 우리에 대해 말하지 말라'다.
"정신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늘 정신과 의사나 비장애인 시민의 시각에서 나오잖아요. 또 정신장애인들은 인터뷰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문제 의식도 있었어요. 기존 언론과 미디어에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왜곡·비하 보도가 많았어요."
이에 박 씨는 또다른 정신장애인 기자들과 함께 스스로의 이야기를 정치적으로 담론화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기사를 써 왔다.
그렇게 만나 인터뷰한 정신장애 당사자들과 관련자 21명의 이야기를 엮어 지난해에는 '마음을 걷다'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책에는 장애인 본인들뿐 아니라 그들의 곁을 지키는 가족, 정신장애를 치료하는 전문의, 장애복지 시설 담당자 등의 목소리가 담겼다.
제44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 |
정신장애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지만 박 씨는 최근 건강상의 문제로 마인드포스트 편집국장직 등의 책임을 내려놓고 쉬고 있다.
정신장애인의 삶을 다룬 시와 소설을 쓰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그는 "한때는 '내가 왜 태어나서 이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보잘것없는 삶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누군가의 삶을 존중하고 위로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동안의 활동은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 말고도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이 여정에 서 있으니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fa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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