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석유화학 업황 악화에 고유가까지 위기
유류비 부담 큰 해운·항공에도 악영향
정부, 중소기업 비상대책 등 대안 마련 필요
서울의 한 주유소에서 운전자가 주유를 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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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롯데케미칼은 플라스틱 원료 페트(PET)를 만드는 울산공장 직원들의 인력 재배치를 검토하는 것으로 17일 알려졌다. 그동안 이어진 중국의 공급 과잉에 대응해 생산 효율을 높이려는 뜻도 있지만 최근 원재료가 되는 기름의 가격이 많이 오르는 상황과도 관련성이 깊다. 회사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 사안은 결정되지 않았다"며 "최근 유가 상승과 업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정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중동 지역 정세의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산업계 전반에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당장 원유 수급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국제 유가가 크게 오르면 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달러 환율이 역대 네 번째로 1,400원을 찍을 만큼 고환율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상황이 악화하면 석유를 원재료로 하는 정유·화학업계는 물론 유류비 비중이 큰 항공·해운업계 등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한국무역협회는 국제 유가와 원·달러 환율이 각각 10%씩 상승했을 때 국내 기업의 원가는 2.82%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전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나눠 보면 제조업 원가는 4.42%, 서비스업 원가는 1.47% 각각 올라 제조업이 환율과 에너지값 상승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것으로 파악됐다. 제조업만 보면 해외에서 들여오는 원유 가격 상승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석유 제품의 원가 상승률이 12.89%로 가장 높았다. 이어 석유화학(7.42%), 비철금속괴(5.71%), 전력가스(5.59%), 철강 1차 제품(4.91%)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서비스업 중에서는 연료비 부담이 특히 큰 운송 서비스 업종의 상승률이 4.25%로 가장 높았다.
무협은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 초반에서 최근 1,400원까지 빠르게 상승하고 국제 유가도 80달러(약 11만 원) 초반대에서 90달러 안팎으로 오른 상황을 반영, 원·달러 환율과 국제 유가가 동반 상승한 상황을 고려해 국내 기업의 영향을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불황에 원자재가격 상승까지... 겹악재 걱정하는 석유화학업계
그래픽=이지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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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석유화학업계의 시름이 깊다. 글로벌 수요 침체와 중국발 과잉 공급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유가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까지 겹칠까 봐 걱정이다. 게다가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값은 연초와 비교해 10% 가까이 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하반기 업황 개선에 대한 기대를 갖기도 했지만 지금 상황은 사실상 포기"라며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볼 뿐"이라고 답답해했다.
정유업계는 국제 유가가 오르면 단기적으로 재고 이익이 나타나는 등 긍정적 성과도 기대해 볼 수 있지만 중동 리스크가 길어지거나 유가가 폭등하면 악영향을 피할 수 없어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석유 제품 가격은 국제 유가와 연동해 움직인다"며 "다만 갑자기 (가격이) 뛰면 이를 모두 소비자 판매 가격에 반영해야 할지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대부분 정유사들의 마진율이 10% 안팎이라 가격 폭등 시 대응하기 쉽지 않다"며 "결국 정부가 나서 유류세 감면, 비축분 방출 등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운·항공업계도 불안 가중...중소기업 지원책 마련도 시급
국내 최대 해운사 HMM의 1만1,000TEU급 컨테이너선 HMM 블레싱호. HMM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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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업계도 유가 상황을 주의깊게 보고 있다. 해운은 전체 매출의 10~25%를 유류비로 쓰니 고유가가 지속되면 이익을 반감 시킨다. 더구나 홍해 리스크로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지 못하고 멀리 돌아가야 한다.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선박이 아프리카 대륙으로 돌아가면 약 6,500㎞를 더 가야해 유류비가 추가로 발생하니 유가 상승과 중동 분쟁 악화 상황이 오면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 관계자는 "지난해 매출액 약 9조 원 중 약 14%(약 1조 원)를 유류비로 썼다"며 "유가가 오르면 급유하는 기항지마다 가격을 정교하게 비교하고 급유해서 비용을 줄이는 등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기름값이 오르면 유류 할증료를 적용해 탑승권 가격에 반영하기 때문에 항공사가 입을 직접 피해는 크지 않다"면서도 "다만 유가와 환율이 오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겨우 살아난 여객 수요에 악영향을 끼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박성근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국제 유가가 100달러를 넘으면 직접적으로 정유사와 석유화학 소재부품 기업들에게 큰 타격을 줄 것"이라며 "대기업은 사업 재편 속도가 빨라지고 종소기업 중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은 무너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작은 기업들의 부실이 산업계 전체로 번지지 않게 대비해야 한다"며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들이 다른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게 여러 지원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강희경 기자 kstar@hankookilbo.com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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