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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마라톤 기록 단축한 운동화 기술…댄스 실력도 높여줄까 [비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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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멘터리

브랜드에도 걸음걸이가 있다고 하죠. 이미지와 로고로 구성된 어떤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각인되기까지, 브랜드는 치열하게 ‘자기다움’을 직조합니다. 덕분에 브랜드는 선택하는 것만으로 취향이나 개성을 표현하고, 욕망을 반영하며, 가치관을 담을 수 있는 기호가 됐죠. 비크닉이 오늘날 중요한 소비 기호가 된 브랜드를 탐구합니다. 남다른 브랜드의 흥미로운 디테일을 들여다보고, 그 설레는 여정을 기록합니다.

마라톤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완연한 봄이 되면서 강변이나 동네 하천 주변을 달리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삼삼오오 모여 뛰는 러닝 크루가 종종 목격되는가 하면, 주말마다 지역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마라톤 행사도 열리고 있고요.

그런데 혹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100m 단거리 달리기엔 자메이카 출신 우사인 볼트가 대표 선수이지만(9.58초), 장거리 마라톤에선 케냐 출신 엘리우드 킵초게 선수가 독보적이에요. 그의 최고 기록은 1시간 59분 40초. 201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대회에서 인류 역사상 최초로 42.195㎞인 풀코스를 2시간 안에 완주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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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최초로 마라톤 풀코스를 2시간 안에 완주한 케냐 출신 엘리우드 킵초게 선수. 사진 나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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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록만큼이나 주목받았던 것은 또 있었습니다. 바로 킵초게가 신은 마라톤화였죠. 나이키가 킵초게 선수만을 위해 맞춤 제작한 러닝화 시리즈 중 하나인 ‘줌엑스 베이퍼플라이’입니다. 이 신발은 마리톤화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을 받았어요. 에어와 탄소섬유 기술을 활용해서 뛰면서 가볍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거든요. 발에 가해지는 충격도 줄일 수 있죠. 비록 대회가 세계육상연맹의 규정을 따르지 않아 킵초게의 기록은 비공식으로 남았지만, 이후 ‘베이퍼플라이’는 러너들 사이에서 ‘킵초게 신발’이라고 불리며 입소문이 나기도 했습니다.

오늘 비크닉에서는 ‘에어’라는 운동화 아웃솔로 러닝화의 역사를 만드는 나이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고유한 기술력의 탄생 스토리와 함께 달리기를 넘어서 스포츠 전반을 이끌게 된 브랜드의 성장 비결을 자세히 알아볼게요.



46살 된 나이키 에어…시작은 프랑스 퐁피두 센터?



나이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에어’입니다. 신발 바닥에 가득 채워진 공기주머니 덕에 걸을 때나 뛸 때 무릎 충격을 줄일 수 있죠. 에어는 나이키의 DNA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나이키의 정체성을 잘 드러냅니다.

에어 디자인은 의외의 장소에서 시작됐어요. 1981년 나이키에 건축 디자이너로 입사해 85년 신발 디자인을 하게 된 팅커 햇필드(Tinker Hatfield)는 프랑스 파리의 현대 미술관인 조르주 퐁피두 센터를 보고 유레카를 외칩니다. 배관·계단 등 건물 내부에 있어야 할 시설물이 바깥으로 드러난 파격적인 미술관 외관에서 영감을 얻은 거죠. 그는 에어 쿠션을 신발 바깥으로 드러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1987년, 드디어 나이키 ‘에어맥스 1’을 세상에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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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전경.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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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에어 쿠션 자체는 디자인으로 주목받기 훨씬 전인 1977년 이미 개발된 발명품이에요. 미국 항공 우주국(NASA) 출신 엔지니어였던 프랭크 루디(Frank Rudy)가 우주인용 신발 제작에 쓰인 공기주머니 기술을 운동화에 적용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죠. 당시 그는 신발 회사 23군데에 사업 제안을 하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어요. 나이키만이 유일한 투자자였죠.

브랜드의 베팅은 대성공을 거둡니다. 1978년, 에어를 최초로 적용한 운동화 ‘에어 테일윈드’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주목을 받았으니까요. 데뷔 무대였던 하와이 호놀룰루 마라톤 대회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죠. 미국의 달리기 열풍에다 실제 편하다는 러너들의 후기가 이어지며 ‘러닝화=나이키’로 자리매김합니다. 브랜드 급성장에 신호탄이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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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출시된 첫 나이키 에어 제품 '테일윈드'. 사진 나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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킵초게·음바페 옆에는 항상 AIR가 있다



“에어가 러너들에게 좋다면 다른 스포츠에서도 유용하지 않을까?”

러닝화로 입지를 쌓은 나이키는 이런 질문을 던지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러닝화를 만들며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농구∙육상∙축구 종목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죠. 1982년에는 에어 쿠션 기술을 담은 최초의 농구화 ‘에어 포스 1’을 만들었고, 이후 ‘에어 조던’으로 발전했죠. 전설적인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의 그 신발이요. 당시 폭발적인 인기 덕분에 ‘조던’은 나이키에서 독립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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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는 지난 11일 행사에서 육상·농구·축구 등 13가지 스포츠화 제품인 '나이키 블루프린트 팩'을 공개했다. 사진 나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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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나이키 에어를 보통 스니커즈나 러너를 위한 신발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스포츠 업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킵초게·켈빈 킵텀 등 세계 신기록을 만드는 마라토너를 비롯해 축구 천재 킬리안 음바페·농구 스타 르브론 제임스도 나이키와 함께 신기록을 만들고 있죠. 이처럼 에어는 스포츠 선수에게도 특별한 존재입니다.

마라톤부터 농구·스케이트·브레이크 댄스까지. 나이키는 앞으로 더 많은 스포츠 종목에서 함께 하겠다는 포부를 밝힙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브롱냐르 궁’에서 열린 ‘나이키 온 에어(Nike On Air)’ 행사에서 말이죠. 올해 7월 열리는 파리 대회를 앞두고 열린 이 자리에서 마틴 로티 나이키 최고 디자인 책임자는 “오직 선수만을 위한 제품을 만들었다”며 육상·농구·축구 등 종목별 특징을 잘 담아낸 신발 13종을 묶은 ‘블루프린트 팩’을 선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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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킹 댄스 국가대표 홍텐(Hong 10)과 파리 대회를 앞두고 출시될 댄스화. 사진 나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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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눈에 띄는 신발은 브레이킹용 운동화입니다. 브레이킹은 미국에서 시작한 힙합 기반 댄스로, 올해 여름 열리는 파리 대회에서 공식 종목으로 채택됐습니다. 나이키는 대회를 앞두고 브레이킹용 운동화를 출시한다고 해요. 비보이 국가대표 선수 홍텐(Hong 10)도 이날 행사에 참석해 기대감을 드러냈죠.



신발 개발을 위해 정신과학까지 연구한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에어 기술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 걸까요? 에어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선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나이키 본사 꼭대기 층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곳엔 약 8만2644㎡(약 2만5000평) 규모의 나이키 스포츠 연구소(NSRL·Nike Sport Research Lab)가 있어요. 연구소에는 농구 코트부터 200m 달리기 트랙과 100m짜리 인조 잔디 축구장까지 다양한 운동 환경이 갖춰져 있고, 사람의 움직임과 기후 영향을 측정하기 위한 수많은 장비도 자리하고 있어요. 에어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는 공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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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스포츠 연구소에 마련된 인조 잔디 축구장. 사진 나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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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에는 과학자, 엔지니어를 비롯해 소재 및 생체역학∙정신과학 전문가들이 모두 한 가지에 몰두합니다. 선수의 움직임과 능력을 측정해서 어떻게 하면 최고의 성과가 나올지 연구하죠. 물리적인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력’ 연구가 이곳의 핵심입니다. 선수들이 자신감을 얻는 법, 개인의 표현력을 극대화하는 방법도 연구한대요.



누구나 선수가 될 수 있다…여성 스포츠 발전 앞장서는 나이키



연구소에서는 매년 4000여명의 선수와 함께 연구를 진행해요. 그런데 90% 이상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선수들입니다. 역량도 다르고 성별·국적·나이도 모두 다양하죠. 단 1%의 스포츠 스타들만을 위한 곳이 아닌 거예요. 이는 나이키가 지향하는 가치와도 연결됩니다. 바로 ‘다양성’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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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스포츠 선수 지원을 위해 나이키가 진행한 'What The Football' 캠페인. 사진 나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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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는 5~6년 전부터 여성 선수들에게도 주목합니다. 다양성 가치를 위해 여성 선수가 직면하는 고민을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대요. 연구소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선수의 70%가 여성인 이유입니다. 지난해엔 여성 축구 선수를 응원하는 캠페인을 진행하더니 호주·뉴질랜드 등에 여성과 소녀를 위한 축구 시설과 학습 프로그램을 지원하기도 했어요. 미국 여자 농구협회에도 지원하고 있고요.

마라토너들의 신발인 줄로만 알았던 나이키 에어. 생각보다 많은 스포츠 종목에서 활약하고 있었어요. 에어 시리즈에 숨겨진 역사를 보니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 갈지 궁금해집니다. 7월 열리는 파리 대회에서 킵초게같은 선수가 또 등장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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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빈 기자 seo.hye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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