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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김영용 칼럼] 가격의 신호 기능 왜곡과 경제질서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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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어느 해 여름 가뭄이 심하게 들어 농산물 생산량은 예년에 비해 크게 줄어들고 가격은 많이 올랐다고 하자. 그런데 농산물 가격이 올라간다고 해서 당장 공급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생산된 농산물의 양에는 변화가 없다는 이유로 가격을 낮게 규제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농산물 공급이 늘어나는 데는 시간이 걸리므로 가격을 낮게 규제한다고 해서 단기적으로 존재하는 농산물의 양에 변화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이 경우에 우선 가격이 자유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정부가 규제하지 않고, 가격 상승에 따른 수입(收入) 증가가 생산량 감소에 따른 수입 감소보다 크다면, 농가 수입은 증가할 것이다. 소비자는 가격이 오른 농산물 소비를 줄이고 다른 소비를 늘리는 등, 가격 변화에 반응하며 소비를 조정해 나갈 것이다. 반면에 가격을 예년 수준으로 낮게 규제하면 가격 상승에 따른 수입 증가 효과가 없으므로 농가 수입은 감소할 것이다. 소비자는 농산물 공급 사정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소비 패턴을 그대로 유지하고 소비를 조정하지 않을 것이다.

장황하게 이 사례를 드는 이유는, 농산물 가격은 농부와 소비자가 각각 앞으로 농산물 생산과 소비에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신호 기능을 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요점은 가뭄으로 생산량이 예년보다 줄었으므로 가격이 올라가야 하지만, 가격이 얼마이든지 이미 생산된 농산물의 양에는 변화가 없다는 이유로 가격을 낮게 규제하면, 농부들이 앞으로 가뭄 극복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할 유인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런 노력에 대한 보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산량은 계속 줄어든다. 즉 농산물 가격은 농부가 앞으로 계속해서 농사를 지을 것인지, 아예 그만둘 것인지, 다른 업종으로 전환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소비자는 농산물이 이전보다 더 희소해졌는지 풍부해졌는지를 판단하여 소비를 조정하도록 안내하는 신호등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의료 대란은 한층 더 실감 나는 사례다. (가격의 신호 기능에 집중하기 위해 면허제에 따른 진입장벽과 건강보험 문제는 접어두기로 하자). 흉부외과나 소아청소년과 등, 이른바 필수 의료 분야의 의사 수가 줄어들어 환자가 받을 진료나 치료 기회가 줄어드는 가장 큰 이유가 건강보험의 급여 항목에 묶인 수가(酬價) 규제에 있기 때문이다. 위의 예에서와 마찬가지로 수가를 규제하더라도 당장 이 분야의 의료 서비스 공급이 크게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의사들은 좋든 싫든 그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분야에 새롭게 진입하는 의사 수는 줄어든다. 이 분야에서는 의사가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의 비용 대비 편익이 낫다는 사실을 규제된 수가가 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건강보험에서 비급여 항목이 많은 분야의 수가는 다른 분야의 수가보다 높으므로 의사들이 몰린다. 이런 현상은 규제 기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심화된다. 그 결과 오늘과 같은 필수 분야에 의료 대란이 벌어진 것이다. 흉부외과나 소아청소년과에서 받아야 할 서비스를 다른 분야의 서비스로 대체하여 조정할 수 없는 환자가 겪을 고통은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유류세를 낮춰 휘발유(또는 경유) 가격을 낮추는 정책은 정부가 가져갈 세금을 줄이는 것이므로, 정유사의 수입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소비자의 소비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휘발유 가격이 올라간다는 것은, 휘발유에 대한 수요에 변화가 없다면, 필경 원유 공급이 줄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물론 소비자가 원유 공급 감소에 대한 구체적 이유까지 알 필요는 없다. 문제는 휘발유 가격이 올라가도록 규제하지 않으면 소비자가 자가용차 사용을 줄이고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의 소비 조정을 하지만, 휘발유 가격을 계속 낮게 규제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휘발유 가격 규제로 말미암아 원유 공급이 줄어든 사정을 반영하는 가격의 신호 기능이 소비자에게 전달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류세를 인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를 휘발유나 경유 가격을 낮게 규제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면 가격의 신호 기능이 왜곡된다.

과일 가격 상승으로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우려한 정부가 과일 가격을 낮추려는 최근의 정책도 마찬가지다. 농식품부가 국민 부담을 덜기 위해 농축산물 할인지원 예산을 590억원에서 690억원으로 100억원 늘려 최대 40%까지 할인하고, 유통업계에 사과·배에 대한 자체 할인율 매칭을 요청한 것이다. 이에 따라 소비자가 실제로 지급하는 가격은 정부 보조금과 유통업체의 할인율에 비례하여 낮아진다. 따라서 유통업체가 공급하는 농축산물 유통량은 감소하고, 소비자는 지급 가격에 별다른 변화가 없으므로 소비 패턴을 바꾸지 않는다.

가격은 일차적으로 소비자가 특정 재화나 서비스에 부여하는 가치를 반영하고, 생산자가 그런 재화나 서비스를 만들어 얻는 보상을 나타낸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비자와 생산자가 앞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안내하는 신호등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이를 무시하면 당장에는 시장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소비 공급 사정을 왜곡함으로써, 자유 시장에서 사람들의 기대를 일치시켜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형성되는 경제질서를 훼손하여 사람들의 삶을 고단하게 만든다.

시장은 수많은 참여자의 아이디어와 가치 등을 조화롭게 조정하는 기능을 하는 거대한 소통 기구이다. 정치적 의사결정을 하는 투표와는 달리, 미치는 영향력에 차이는 있지만 모든 참여자의 의견을 반영한다. 이런 시장을 특별한 목적을 위해 규제하면 최근의 의료사태와 같이 반드시 커다란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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