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선거원칙'에 따른 참정권 보장 필요성 제기
OECD가입국 중 '우편투표 도입' 29곳
보안 우려·정치권 논의도 제자리걸음
재외국민 유권자들은 투표 환경의 어려움으로 참정권이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2월 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23 CES 최고 혁신상을 수상한 '지크립토' 부스를 방문해 영지식 증명(Zero Knowledge Proof) 기술을 활용한 블록체인 투표 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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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ㅣ박숙현 기자] 재외국민 유권자들은 국내 유권자들보다 투표소까지 가는 시간과 물리적 제약으로 투표권을 행사하기 쉽지 않다. 이들은 자국을 잠시 떠나 있더라도 '보통선거 원칙'에 따라 참정권을 제대로 보장받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안으로 우편투표와 인터넷투표가 떠올랐다. 하지만 관리 부실이나 해킹 등 시스템 보안 우려와 유권자의 신뢰 문제가 커 도입 논의는 더디다. 기저에는 재외국민 유권자의 정치 성향이 편중돼 있다는 정치권 진영 논리, '과잉 대표성' 쟁점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해외는 우편투표 줄줄이 도입에, 인터넷투표 전면 실시까지
우편투표는 선거권자가 선거일 전 일정한 기간 내에 신청서를 제출한 후 자격을 인정 받아 투표용지를 우편으로 송부하는 방식을, 인터넷투표는 각종 기기를 이용해 정해진 기간 동안 지정된 웹사이트에 접속한 뒤 투표하는 방식을 말한다.
2020년 중앙선관위 연구용역 보고서 '제외선거제도 개선방안 연구' 내용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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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제도는 해외에서 얼마나 활용되고 있을까. '민주주의 및 선거지원 기구(IDEA)'가 2007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재외국민 선거를 도입한 나라는 115개국이며, 이중 45개곳(단일 방식 25곳, 복합 방식 20곳)에서 우편투표를 도입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이 2022년 발간한 '각국의 선거제도 비교연구'에 따르면 OECD 가입국(36개국)만 살펴봤을 때, 재외선거에서 우편투표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는 총 29개국이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캐나다, 호주, 오스트리아, 벨기에, 에스토니아, 필란드, 헝가리, 아일랜드, 이탈리아, 리트비아, 리투아니아, 룩셈부르크, 멕시코,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폴란드, 포르투갈,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튀르키예 등이다.
이들 국가 중 미국, 영국, 스페인,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뉴질렌드, 룩셈부르크 등은 국내에서도 우편투표를 실시하고 있는데, 반면 재외국민에만 한정해 우편투표를 허용하고 있는 국가는 13개국(스웨덴, 벨기에, 에스토니아, 핀란드, 헝가리, 이탈리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멕시코, 네덜란드, 노르웨이, 포루투갈, 슬로베니아)이었다. 또 재외국민 선거에서 우편투표를 단일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는 국가는 5곳(독일, 캐나다,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슬로바키아)에 달했다. 한국처럼 재외공관 투표만 허용하고 있는 곳은 칠레, 체코, 아이슬란드 등 3개 국가다. 덴마크와 이스라엘은 재외공관 투표·선상투표만 가능하고, 그리스는 재외국민의 선거권 행사를 위한 구체적 법령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편투표 방식이 한정된 경우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재외국민이 대선과 국민의회(하원)선거, 원로원(상원)선거, 유럽선거, 국민투표 등 대부분 선거에 참여할 수 있지만 우편투표는 하원선거, 재외프랑스인연합의원선거만 가능하다.
인터넷투표를 도입한 국가는 우편투표보다 훨씬 드물다. 미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아르메니아, 에콰도르, 에스토니아, 멕시코, 뉴질랜드, 오만, 파키스탄, 러시아, 아랍에미리트 등이 있는데, 이중 재외국민 선거에도 도입한 국가는 프랑스, 아르메니아, 에콰도르, 에스토니아, 멕시코, 뉴질랜드, 아랍에미리트 정도다.
에스토니아는 전 세계 최초로 인터넷 투표를 전면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디지털 신분증 발급을 의무화하고 개인정보 데이터를 분산 관리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한편 2002년 관련 선거법 제정으로 법적 기반을 마련해 2005년 지방선거에서 처음 도입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을 컴퓨터에 설치하고, 디지털 신분증 또는 모바일 ID를 통해 본인 인증을 거쳐 인터넷투표에 참여하는 식이다. 유권자가 개인 컴퓨터에서 투표한 내용은 암호화돼 저장되고 이 위에 디지털 서명이 들어간 신원 정보가 덧붙여지는데 중앙전산망으로 전송된 데이터에서 디지털 서명을 제거하고 익명으로 암호화된 투표 결과를 개표하는 기술이 적용됐다. 2019년 기준 143개국에 흩어져 있는 재외국민이 투표에 참여했다. 2021년에는 선거법 개정으로 인터넷투표와 오프라인투표 중복 여부를 확인해 중복일 경우 인터넷투표를 무효로 하는 규정을 추가하는 등 제도를 다듬고 있다.
프랑스는 2009년부터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인터넷투표를 도입했지만, 하원의원 선거와 영사대표 선거로만 한정했다. 프랑스는 해외 11개 권역 선거구에서 재외국민을 대표하는 별도의 하원을 선출하고 있는데, 이들을 뽑는 선거에만 인터넷투표를 용인한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실시한 '20대 대선 재외유권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재외국민들은 재외투표를 위한 선거인등록을 하지 않은 이유로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가장 많이 꼽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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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효과 살펴보니...투표율 상승 미미하지만 이용 증가 추세
우편 또는 인터넷 투표 도입으로 기대되는 부분 중 하나는 투표율 상승이다. 시간적·공간적 제약의 번거로움이 해소되면 투표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조사한 '20대 대선 재외유권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재외선거 유권자들은 선거인등록 미신고 미신청 사유에 대해 시간적, 공간적 어려움을 가장 많이 꼽았다. 또 투표방법 개선 방안으로 전자투표를 가장 선호(전체의 34.5%)한다고 답했다.
일본 재외선거의 경우 우편투표를 택하는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 /일본 총무성 '재외선거 현황'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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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제도를 먼저 도입한 국가들은 어떨까.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재외국민 투표율 상승 효과가 현저히 나타나지는 않았다. 다만 다수 국가에서 유권자들에게 편의성을 제공해 보통선거원칙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총무성 '일본의 재외선거 현황'에 따르면 재외선거가 도입된 2000년 중의선 선거부터 최근까지 일본 재외선거의 투표율은 대체로 20% 초중반대 추이를 보이고 있다. 우편투표 대상을 전면 확대한 2004년 참의원 선거 이후에도 눈에 띄는 투표율 상승은 없었다. 우편투표 비율이 오히려 감소하는 경향도 보이고 있다.
인터넷투표를 전면 도입한 에스토니아도 재외국민 전체 투표율이 증가하지는 않은 모습이다. 프랑스에선 유의미한 투표율 변화를 보였다. 프랑스에선 인터넷투표를 도입했던 2012년 하원선거에서 재외국민 평균 투표율이 20.6%였는데 전자투표가 중단됐던 2017년 평균 투표율은 17.7%로 소폭 낮았다. 다만 두 국가에서 인터넷투표를 이용하는 재외국민 유권자 비율은 꾸준히 상승했다. 에스토니아의 경우 2007년 총선에서 2.0%를 기록했고 이어 이어 3.9%, 5.7%, 6.3%, 7.8% 투표율을 보였다. 지방선거도 2011년 2.8%부터 4.2%, 5.1%, 4.1% 등으로 대체적으로 늘었다. 프랑스는 2022년 하원의원 선거에서 재외국민 투표자 10명 중 인터넷 투표 이용자가 7명(77.94%)인 것으로 나타났다.
에스토니아는 전세계에서 최초로 인터넷투표를 전면 도입한 국가다. 2019년 5월 16일 에스토니아 한 유권자가 한 카페에서 투표하기 위해 노트북 컴퓨터에 유럽 선거의 선거인 명단을 띄운 모습. /AP=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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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사고, 해킹 등 보안 우려 여전
우편·인터넷투표 도입으로도 투표율을 획기적으로 늘리지 못한 데는 제도에 대한 유권자 신뢰 문제가 원인으로 꼽힌다. 이들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비밀선거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편투표의 경우 선거관리위원회의 감시와 관리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 실시돼 가족이나 다른 사람의 강요에 의해 투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2020년 미국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대선 불복까지 시사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투표지 훼손, 잦은 배달사고 및 배달 지연에 따른 '무효표' 발생도 유권자의 불안 요인 중 하나다.
우편투표의 경우 배달 지연과 투표지 훼손, 강요 투표 등의 우려 등 문제가 있다. 2020년 미국 대선이 1주일 남은 10월27일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한 주민이 도서관 앞에 설치된 공식 우편투표물 투함통(드롭박스)에 우편투표물을 집어넣고 있는 모습.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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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투표제를 전면 실시한 에스토니아의 경우 인구 수가 130만 명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적어 시스템 관리가 가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프랑스의 경우도 인터넷투표 도입 적용은 국내 선거구와 완전히 분리해 반대 여론이 크지 않았다는 평가다. 다만 에스토니아가 주기적으로 선거와 관련된 설문조사를 실시해 전자투표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현황을 검토하고 전자투표 시스템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는 부분은 시사점을 준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2023년 12월 '인터넷 투표제도 쟁점과 도입 방향' 보고서에서 "인터넷 투표는 해킹 가능성, 선거 결과 조작 위험, 비밀투표 원칙 침해 등 보안 취약성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이는 유권자의 선거결과에 대한 신뢰저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인터넷 투표제 도입과 정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유권자, 후보자, 선거관리 기관 등 사용자의 신뢰이다. 기술에 대한 믿음을 비롯하여 사회구성원 간에도 신뢰가 구축돼야 한다"고 했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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