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의심 52건 중 33건 조사 못 해…16건만 진상규명
"피해자 치유·명예 회복 위해 책임 있는 조치·대책 수립해야"
대열을 갖춰 이동하는 무장 계엄군 |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정다움 기자 =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본 피해자 다수가 사망하거나 조사를 거부하면서 계엄군 성폭력 사건은 전모를 드러내지 못하고 미완의 과제로 남겨졌다.
2일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조사위는 자료 수집 과정에서 5월 항쟁 기간 계엄군 성폭력이 의심되는 52건의 사건을 포착했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여성가족부·국방부가 공동 구성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이 발굴한 17건과 5·18 보상심의 자료에 기록된 성폭력 의심 사건 26건, 개별 신청 사건 8건, 법원에 사실조회 의뢰 기록이 있는 1건 등이다.
이 가운데 34건은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진상규명 활동을 접어야 했다.
사망한 피해자를 대신해 진술해 줄 가족들이 조사를 거부(6건)했기 때문이다.
생존해 있는 피해자의 상당수(14건)도 다시 조사받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고, 일부(4건)는 정신질환이나 치매로 진술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 연락이 닿지 않은 피해자의 사건도 9건에 이른다.
조사에는 협조했지만, 진상규명 판단은 제외해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결국 조사위는 나머지 19건에 대해서만 개별 사건을 조사해 신빙성이 부족한 3건을 제외하고 16건을 진상규명으로 결정했다.
조사 대상 사건에서 제외했더라도 피해 사실을 부정하기 어려운 사건의 경우 그 피해 유형과 실상을 구분해 향후 종합보고서에 수록하기로 했다.
조사위는 이러한 결과가 5·18 성폭력의 종합적인 피해 실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스스로 시인했다.
이는 성폭력 사건 이후 피해자와 가족들이 겪은 신체적·정신적 고통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피해자들은 사회로부터 부정적인 눈초리를 받거나 성 관련 피해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고, 온전한 가정을 꾸리지 못했다.
특히 대다수 피해자는 당시 청소년이었고, 계엄군의 만행에 충격을 받아 정신 질환을 앓으며 생을 마감해야 했다.
일부 피해자의 경우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배우자에게 '투명 인간' 취급받았고, 피해 사실을 알게 된 가족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조사위는 계엄군에 의한 피해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만큼 국가의 책임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사위는 보고서에서 "국가는 43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피해자들의 치유와 명예 회복을 위해 책임 있는 조치를 강구해야 할 주체"라며 "군과 경찰 등 국가 권력이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성폭력과 같은 반인도적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수립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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