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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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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터지면 “시스템 개선”…얼마 못 가 ‘안전불감’[세월호 10년, 함께 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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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태원 참사 발생 한 달을 앞둔 2022년 11월 27일 시민들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서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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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 영통구 경기도청 10층에 있는 안전관리실 안전특별점검단은 봄 축제 안전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지난 26일 찾은 사무실에는 축제를 준비하는 시·군들의 안전관리계획서가 책상에 하나둘 쌓이고 있었다. 올해 4~6월 사이 예정된 경기도 내 봄 축제는 90여개에 이른다.

일정 규모 이상의 지역축제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지자체는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인파 관리, 응급 상황, 화재 예방 및 대처, 질병 예방 등의 조치가 담겨야 한다. 안전특별점검단은 이 계획서를 바탕으로 현장을 직접 점검해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보완하도록 한다. 안전과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사전에 점검·예방하는 시스템이다.

사람들이 몰리는 지역축제 안전관리를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맡게 된 것은 세월호 참사의 영향이다. 정부는 세월호 이후 대형 참사의 예방과 대응에 있어서 지자체의 역할을 명확하게 규정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과거에는 축제 현장 안전 관리를 지자체에서 꼼꼼하게 챙기지 않았다”면서 “안전 문제만을 전담하는 별도의 조직이 생기고 나니 업무가 체계화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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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과천시 과천지식정보타운 인근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구간이 2022년 12월 29일 화재로 녹아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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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16일 304명이 숨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 정부와 지자체는 전면적인 ‘안전 시스템’ 개선에 나섰다. 그동안 소홀히 했던 안전 관련 조직을 신설하고 예방활동이나 대응체계도 보완했다.

정부와 지자체 조직은 대대적으로 개편됐다. 정부는 국무총리 직속의 국민안전처를 설치했다. 국민안전처는 2017년 폐지 전까지 안전행정부(현 행정안전부)와 소방, 해경의 일부 사무를 이관받아 재난안전 분야를 총괄해왔다. 광역 자치단체에는 2급 고위 공무원이 책임자인 ‘실·국·본부’ 단위의 재난안전 전담 조직이 설치됐다.

재난안전법 개정으로 재난현장 지휘권도 명확해졌다. 재난현장에서 긴급구조 활동 시 참여 기관의 인력·장비 운용에 관해서는 시·군·구긴급구조통제단장인 소방서장의 지휘를 따르고 긴급구조 활동 종료 후에는 시·군·구 통합지원본부장(시·군·구 부단체장)이 재난현장의 수습상황 총괄·조정하도록 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4월16일은 ‘국민 안전의 날’로 지정돼 모든 국민이 매년 안전에 대해 생각해보는 날이 됐다. 재난대비훈련이 강화돼 훈련주관 기관의 장은 매년 정기적 또는 수시로 재난대비훈련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했다.

교육현장에서는 학생 안전교육이 대폭 강화됐다. 교육부는 유치원과 초중고 학생은 학기당 51시간 이상, 교사는 연간 15시간 이상 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규정했다. 모든 초등학생은 의무적으로 생존 수영도 배우고 있다. 전국 곳곳에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재난 상황을 체험하고 상황별 대처 법을 배울 수 있도록 ‘재난안전체험관’이 들어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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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8층짜리 스포츠시설 건물에서 불이 나 119 소방대가 진화작업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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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세월호 구조 실패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됐던 ‘재난통신 네트워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난안전통신망도 구축했다. 경찰과 소방, 지자체 등 333개 국가기관의 무선통신망이 하나로 통합돼 실시간으로 재난 상황을 통보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전국 지자체들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 및 안전사회를 위한 조례’를 만들었다. 조례를 만든 지자체는 광역 단위에서는 서울과 경기·인천·대전 등 7곳이다. 기초 단위에서는 서울 은평구, 경기 성남과 수원, 전남 목포 등 4곳이다.

서울시 조례를 보면 “4·16세월호참사로 인한 희생자 추모를 통하여 인간존엄과 안전사회에 대한 시민의식을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조례는 시장이 안전사회에 대한 시민의 의식 함양을 위해 희생자 추모와 안전의식 증진에 관한 사업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필요한 시책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다른 지자체의 조례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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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가 침수돼 소방당국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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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대적인 정부와 사회의 안전 시스템 개선이 이뤄졌음에도 참사는 판박이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2022년 ‘이태원 참사’, 지난해 ‘오송 궁평2지하차도 참사’ 등은 세월호 참사 이후 정비된 시스템이 아직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참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않으면서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경향은 관련 연구로도 확인된다.

이달별 동의대 교수(소방방재행정학과)는 2022년 발표한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안전분야 연구개발 과제 변화 분석’ 논문에서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재난 직후 재난·안전분야 관련 투자가 짧은 기간에 급격히 증가했지만 얼마 안 가 다시 투자가 줄어드는 경향이 관찰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대규모 재난은 우리 사회 전반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의 창’을 제공한다”면서 “이 창이 활짝 열려야 기존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 나갈 수 있는 동력을 가지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창은 오랜 기간 열려 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도는 만들었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일들도 벌어진다. 생존 수영이 대표적인 예다. 모든 학생이 수영 실습을 체계적으로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지만, 이론으로만 배우고 정작 실습은 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김병욱 국민의미래 의원이 2022년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에 수영장을 보유한 초등학교는 81곳으로 전체 학교(6157개) 대비 1.3%에 불과하다. 생존 수영 이론 및 실습교육에 참가한 초등학생은 전체의 57%에 불과했고 물에서 실기교육을 이수한 학생은 전체의 2%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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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9일 광주 동구 학동의 한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붕괴, 도로 위로 건물 잔해가 쏟아져 시내버스 등이 매몰됐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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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구축된 재난안전통신망 역시 활용되지 못한 사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는 1조5000억원을 투입해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했다. 4세대 무선통신기술을 활용해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라며 대대적인 홍보도 했다. 하지만 정작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을 때 정부는 망을 사용하지 않았다.

세월호 유가족은 반복되는 참사에서 세월호가 잊혀선 안 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대표 등으로 활동한 전명선 4·16 민주시민교육원장은 “참사 당시에는 대책을 쏟아내지만 그 이후 정부가 바뀌고 참사는 잊힌다. 바뀐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말하며 규제를 완화한다. 결국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잊을 수밖에 없기에 잊지 않게끔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제도가 됐던, 교육이 됐던 정말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려고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안전의 중요성을 정착시키고 어떻게 발전시킬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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