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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생지옥 아이티…갱단, 어린이 죽이고 통치수단으로 성폭행(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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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보고서 "6천여명 사망, 피란민도 31만명…국가기관 붕괴 직전"

갱단, 이동 통제하며 자체 '세금' 징수…주민들은 '자위대' 결성, 사적 처벌

연합뉴스

폭력 사태가 난무하는 아이티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제네바·서울=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김연숙 기자 = 빈곤과 치안 부재 속에 폭력 사태가 난무하는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의 안전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수도 포르토프랭스를 장악한 갱단들은 어린이들을 모집해 학대하고 탈출 시도가 있을 때에는 죽이는가 하면, 미성년자를 포함해 여성 성폭행도 끊이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주민들을 위협해 임의로 세금을 걷는가 하면 공권력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28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아이티의 상황을 "부패와 법치 실종, 열악한 통치 구조와 갱단 폭력 증가로 아이티의 국가기관들은 붕괴 직전에 이른 상태"라고 상황을 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22일까지 아이티에서 폭력사태로 인한 사망자는 1천554명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4천451명이 숨졌다.

국내 피란민도 지난해 12월 기준 31만3천900명이 발생했다.

피해는 갈수록 불고 있다. 보고서는 갱단이 인질을 붙잡아 성폭행하고 가족에게 몸값을 요구하는 일이 속출하지만 처벌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갱단은 미성년자들을 포섭해 학대하고 다른 갱단원들이 납치와 강도를 저지르는 것을 감시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이들의 탈출 시도가 있을 때에는 살해도 서슴지 않아 미성년자들은 보복이 두려워 조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줬다. 작년 1월 이후 가옥과 사업체 1천880곳 이상이 약탈당하거나 파괴됐다. 아이티의 곡창지 아티보니트에선 농장들이 공격당하고 가축도 수백마리 도난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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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처럼 변한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 AP=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행인들이 불붙은 폐타이어 옆을 황급히 지나가고 있다. 아리엘 앙리 총리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대는 도로를 점거한 채 폐타이어에 불을 지르거나 주요 시설물에 돌을 던지면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2024.02.07 passion@yna.co.kr


성폭행도 만연하다. 갱단이 통제하는 지역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해 여성들은 통근 혹은 통학길에 대낮에도 무장 갱단에게 매복 공격을 당하고 집단 성폭행을 당할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일부는 조직원들과의 성관계를 강요당하고 거부하면 살해 위협을 받는다. 여성을 납치해 가족에게 몸값을 강요하려 성폭행을 동원하기도 한다. 일부 성폭행 피해자들은 신체 일부가 절단되거나 살해됐다.

그러나 지역사회의 낙인과 가해자의 보복 위협, 생존자를 위한 의료·심리 지원 서비스 부족, 사법체계에 대한 신뢰 부족 등으로 제대로 보고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사건 보고가 이뤄지더라도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구 밀집 지역들에서 갱단들의 충돌이 벌어지면서 3개월 된 아기를 포함해 주민들이 집과 거리에서 총격으로 숨지는 일이 속출했다. 일부는 경찰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갱단들이 사람뿐만 아니라 상품과 서비스의 이동까지 제한하면서 주민들의 일상생활이 큰 지장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현지 소식통들은 무장 갱단이 주민들이 동네 안팎의 이동을 통제, 제한하기 위해 '검문소'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갱단들은 물이나 전기 같은 공공 서비스 이용, 뇌물, 강도, 협박, 강탈 등을 이유로 검문소에서 비공식적으로 '세금'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연합뉴스

시위대가 점령한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 EPA=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수천 명의 시위대가 거리를 점령한 채 걸어가고 있다. 아리엘 앙리 총리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대는 도로를 점거하고 폐타이어에 불을 지르거나 주요 시설물에 돌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2024.02.07 passion@yna.co.kr


무기 밀매는 갱단이 혼란을 키우는 요인 중 하나다.

보고서는 무기 금수조치에도 불구하고 아이티 국경을 통해 무기와 탄약이 정기적으로 밀매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갱단들이 경찰보다 화력 면에서 우위에 서게 하는 요인이다. 게다가 경찰 인력은 저임금과 인력 부족 등으로 국민 1천명당 1.3명 수준에 그치고 있다.

볼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지상의 끔찍한 상황에도 여전히 무기가 쏟아져 들어온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라며 "무기 금수 조치의 보다 효과적인 시행을 청한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민간인으로 구성된 소위 '자위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들은 경범죄로 기소되거나 갱단과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개인을 처형해왔다. 지난해에만 법 테두리 밖에서 이뤄지는 사적 처벌이 최소 528건 보고됐다. 올해는 주로 포르토프랭스를 중심으로 지금까지 59건이 발생했다.

사정은 이러하지만 사법 시스템은 제 기능을 못 하고있다.

튀르크 대표는 중대한 인권 침해와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 광범위한 부패와 사법 시스템 불능이 있다며 이러한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법치와 국가기관에 대한 대중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책임규명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언론도 불능 상태다. 언론인들은 갱단에 대한 위협이나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높은 수준의 자체 검열을 받고 있다. 2022년 기준 아이티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언론인이 위험한 국가로, 업무와 관련해 최소 5명이 숨졌다.

미주 최빈국으로 꼽히는 아이티에서는 2021년 7월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 암살 이후 극심한 혼란이 거듭되고 있다.

갱단 폭력에 따른 치안 악화, 심각한 연료 부족, 치솟는 물가, 콜레라 창궐 속에 행정 기능은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갱단의 습격과 이들에 맞선 경찰·시민군의 교전, 각종 보복성 폭력 등으로 숱한 사망자가 나왔다.

갱단들은 이달 3일 수도인 포르토프랭스에 있는 국립교도소를 습격해 재소자 3천여명을 탈옥시켰다. 이 과정에서도 1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규모 탈옥 사태 직후 아이티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prayerahn@yna.co.kr

noma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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