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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대통령실도 움직였다...구리 만세맨 “미워 말고 응원해주니 행복 두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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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중 대표, 400일 넘게 아차산 올라 '만세삼창'
처음엔 지인 응원하다 지금 전국서 신청 쇄도
"편갈라 공격 말고 서로 응원하는 문화 퍼지길"
"많은 사람에 희망" 대통령실 명절 선물 보내와
한국일보

만세삼창을 한 지 402일째 되는 날인 지난달 9일 경기 구리 아차산 시루봉에서 정정중 대표가 오늘의 만세 신청자 이름을 부르며 만세를 외치고 있다. 정정중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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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을 갈라 상대를 헐뜯을 게 아니라, 서로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문화가 퍼졌으면 합니다.”

경기 구리시에서 농산물유통업체(정중한F&B)와 카페(비니)를 운영하고 있는 정정중(53) 대표의 바람도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가 ‘구리 만세맨’이란 이름으로 주변 사람들을 두 팔 뻗어 응원하는 유튜버로 나선 이유다.

최근 구리시 아치울마을 비니카페에서 만난 정 대표는 “지난해 1월 4일 동틀 때 집 근처 아차산 시루봉(205m)에 올라 지인의 이름을 부르며 ‘만세’를 외친 것을 시작으로 1년 2개월(28일 기준 453일) 넘게 매일 새벽 아차산에 올라 만세응원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유튜브에는 지인의 결혼, 생일, 개업 등을 축하하며 목청 터져라 ‘만세삼창’을 외친 영상이 빼곡하다. 태극기를 가슴에 단 반팔 복장에 마무리 멘트는 언제나 ‘대박 나세요’ ‘사랑합니다’이다. 그가 만세를 불러준 상대만 하루 평균 15명, 지금까지 6,400여 명에 달한다.

정 대표는 “8년 전 중소기업청장상을 받게 돼 시상식장에 갔는데, 수상자들이 다 자기 기업 자랑만 하길래 나는 ‘여기 오신 분들의 건강을 기원한다’며 만세를 외쳤다”며 “그때 반응이 너무 좋아 남에게 힘을 불어넣어주는 사람이 되야겠다 결심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정 대표는 주변 사람들을 응원하는 만세삼창을 외친 뒤엔 한국일보 사설을 읽고 해당 영상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다. 정 대표가 한국일보 신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정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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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카카오톡에 뜬 생일자 이름을 부르며 만세를 외쳤고, 이를 휴대폰 영상으로 담아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나를 위해 만세를 외쳐준 사람은 처음이다”라며 감사 답장이 줄을 이었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도 1년 만에 2,000명을 넘겼다.

그는 “일상의 고단함 탓인지, 많은 사람들이 생각 이상으로 좋아해줘 오히려 감사했다”고 말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에서 ‘만세를 불러 달라’는 신청이 쇄도했다. 순산을 비는 30대 산모부터 팔순 부모의 건강을 기원하는 며느리, 합격을 고대하는 수험생까지 사연도 가지각색이었다.

감동적인 사연도 줄을 이었다. 정 대표는 “한번은 카페를 찾은 30대 임산부와 얘기를 나누다 다음날 만세를 불러줬다”며 “이후 그분의 남편이 ‘지난해 천국으로 떠난 딸이 더 좋아할 것 같다’며 답장을 보내왔는데 눈물이 왈칵 났다”고 전했다.
한국일보

하늘나라로 떠난 자신의 자녀 이름을 부르며 만세를 외쳐준 정 대표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신청자 아버지의 카카오톡 메시지. 정정중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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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을 앞둔 80대 아버지에게 특별한 선물을 건네고 싶다는 50대 아들의 요청에 만세를 외쳤는데, 다음 날 아버지가 영상을 보고 웃으며 눈을 감았다는 사연도 그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매일 새벽 아차산에 올라야 해, 맘 놓고 여행 한번 가기 힘들지만 단 하루도 만세응원을 멈출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세응원 뒤엔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들려준다. “치우치지 않는 중도 정론지라 선택했다”는 그는 한국일보 사설 읽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 자신의 유튜브에 공유한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냈으면 해 신문 사설을 읽어주고 있다”고 전했다. 그가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는 소식은 대통령실에까지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지난 설에 정 대표에게 전통주가 담긴 선물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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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대표가 지난달 설 명절을 앞두고 대통령실로부터 택배로 전달받은 명절 선물. 정정중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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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대표는 하루도 쉬지 않는 '만세응원' 탓에 성대 염증까지 겪고 있지만 이를 중단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그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지인한테도 요청이 왔는데, 진심을 다해 만세를 외쳤다”며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을 버리고 상대를 응원해주는 마음을 가지니, 오히려 내가 더 행복해졌다”고 웃어 보였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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