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제14주기 천안함 46용사 추모식'에서 유가족이 추모비에 새겨진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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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의 천안함 46용사 추모비 앞. 고(故) 조진영 중사의 어머니 박정연(64)씨는 여전히 앳된 스물네 살의 얼굴로 남아있는 아들의 부조상을 연신 어루만졌다.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14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천안함 유가족들의 시간은 2010년 3월 26일, 그 날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듯 했다.
이날 2함대사령부 주관으로 엄수된 천안함 14주기 추도식에는 고 민평기 상사의 모친 윤청자 여사와 김태석 원사의 딸 해나·해강·해봄 양, 문규석 원사의 모친 유의자 여사 등을 비롯한 100여명의 유가족이 참석했다. 최원일 옛 천안함장(예비역 대령) 등 26명의 천안함 참전용사, 전·현직 해군 관계자까지 모두 200여명이 함께 했다.
26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제14주기 천안함 46용사 추모식'에서 유가족과 참석자들이 신형 천안함을 둘러본 후 배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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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쯤 추도식이 시작되자, 오전 내내 빗발을 뿌리던 구름이 걷히고 맑은 하늘이 드러났다. 천안함 사건 경과 보고와 묵념, 추도사, 헌화 등이 이어지는 동안 자리에 앉은 유족들은 간간이 눈물을 훔쳤다. 천안함 추모곡 ‘바다의 별이 되어’가 제창되고 “살아서 귀환하라”는 대목이 나오자 몇몇 유가족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매년 천안함 추도식에 참석해온 최원일 전 함장의 자리 옆에는 나무 위패가 놓인 의자가 있었다. 해군 관계자는 "산화한 전우들이 앉는 자리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날 추도식은 부활한 천안함이 함께 해 의미가 더 각별했다. 지난해 12월에 작전 배치된 최신형 호위함 천안함(FFG-Ⅱ)이 공식 행사를 통해 언론에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새 천안함의 승조원 15명과 박연수 함장도 이날 자리를 지켰다. 2010년 천안함 사건 당시 승조원이었던 그는 최원일 전 함장, 참전 장병들과 함께 46용사 추모비 앞에 헌화했다. 박 함장은 “14년 전 오늘이 눈 앞에 생생하고, 그날 이후로 전우들을 하루도 잊은 적 없다”며 “천안함 전우 모두와 함께 전장으로 나아간다는 마음가짐으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완벽하게 사수하겠다”고 말했다.
김경철 2함대 사령관(소장)은 양용모 해군참모총장의 조전을 대독하며 "바다를 수호하다 산화한 천안함은 이제 첨단 무기체계를 갖춘 최신형 호위함으로 부활해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며 "우리는 바다에 서린 전우들의 한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모비 옆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신원식 국방부 장관 등의 조화가 차례로 놓였다. 야권의 조화는 보이지 않았다.
이날 유족들은 천안함 사건에 음모론을 제기하는 정치권을 향해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고 이상희 하사의 부친이자 유족 회장인 이성우씨는 "천안함 폭침은 북한의 도발로 발생했다는 게 명명백백히 밝혀진 사실"이라며 "그럼에도 일부 정치인들은 북한 소행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조한기, 박선원, 노종면, 권칠승, 장경태 등 이번 국회의원 총선 출마자의 이름을 거론한 뒤 “북한에 의한 폭침을 부정하는 망언자들은 천안함 유족과 국민 앞에 진심어린 사과를 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26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제14주기 천안함 46용사 추모식'에서 유가족과 참석자들이 신형 천안함 함교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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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자식을 잃은 부모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유자녀들의 아픈 가슴에 다시 한 번 비수를 꽂고, 생존 장병들의 명예를 폄훼하고 있다"며 "5.18 (광주 민주화 항쟁) 폄훼를 처벌하는 것처럼 차기 22대 국회에서 '천안함 괴담 방지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약 한 시간 가량의 추도식 이후 유가족과 생존 장병들은 신형 천안함으로 이동해 함정 곳곳을 돌아봤다. 천안함 사건 당시 갑판 병장이었던 전준영씨는 "그 때 갑판에서 전우들과 휴식을 취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고 김경수 상사의 가족들은 신형 천안함을 둘러보며 "배가 참 잘 생겼다"고 연신 감탄했다.
당시 조타 상병이었던 정현구(35)씨는 "새로운 천안함에 올라와 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아직도 전우들의 가족들을 보면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죄송스럽고 힘들지만, 전우들에게 '너희들 몫까지, 나 정말 열심히 살겠다'고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최원일 전 함장은 "새 천안함의 전투 지휘실에 들어와 본 건 처음인데 장비가 많이 발전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함미 갑판에서는 고 민평기 상사의 모친 윤청자(81) 여사가 3·26 기관총(K-6)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의 옆에서 천안함 전투 체계관인 안제혁 소령이 "오전에 비가 많이 와서 총이 녹슬까봐 안 꺼냈다가 방금 꺼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여사가 "(총은)잘 나가나요"라고 묻자 원 소령은 "네. 정비도 새로 잘 받았다"고 답했다. 윤 여사는 "되도록이면 고장 없이 나라를 지켜달라고, 새 천안함에 올 때마다 말하고 간다"고 했다.
3·26 기관총은 앞서 윤 여사가 민 상사의 유족 보상금 등 1억원을 해군에 기탁해 도입했다. 새로운 천안함에는 2정이 배치됐다. 그는 팔순의 나이에도 함정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갑판 하부에 있는 행정실을 둘러봤다고 했다. "아들이 근무했던 곳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고 싶었다"고 했다.
3640t급 신형 호위함으로 부활한 새 천안함은 원점 타격 능력이 크게 향상됐고, 예인선배열음탐기(TASS)가 탑재돼 원거리에서도 잠수함을 탐지가 가능해지는 등 대잠 능력도 개선됐다.
평택=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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