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교남동 대단지 아파트에서 만난 40대 공공기관 직원 최모씨(46)는 “여당은 안 찍겠다. 제 또래 중에 대통령을 좋게 평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평창동에서 만난 50대 직장인 최모(56·여)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하지만, 그 사위라는 곽상언 후보가 장인을 따라갈 수 있는 인물로는 안 보인다”고 말했다. ‘정치 1번지’ 종로에서도 상대 정당·후보 반감에 기댄 ‘심판 투표’와 세대간 균열의 양상은 이처럼 확고했다.
제22대 총선서 서울 종로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곽상언 후보, 국민의힘 최재형 후보, 개혁신당 금태섭 후보. 정용환·장서윤·박건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종로에는 더불어민주당 곽상언, 국민의힘 최재형, 개혁신당 금태섭(기호순) 등 ‘빅3’를 포함해 총 7명의 후보가 도전장을 냈다. 전국에서 후보가 가장 많다. 동남권의 노후 저층 주거지 밀집 지역 창신·숭인동 주민들은 오랫동안 야권 지지 성향을 보였다. 반대로 단독주택·대단지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서북권 평창·교남동에선 상대적으로 여권 지지세가 강하다.
지역별 민심이 팽팽하게 엇갈린 탓에, 2000년 이후 치러진 6번의 총선에선 국민의힘 계열(16~18대)과 더불어민주당 계열(19~21대) 후보가 각각 세 번씩 당선했다. 지난 대선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3042표를 더 얻어 득표율 3.02%포인트 앞섰다.
4·10 총선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곽상언 후보가 22일 오후 창신역에서 주민들에게 퇴근길 인사를 건네고 있다. 정용환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야권 지지세가 두터운 동남권에선 ‘정권 심판론’ 바람이 거셌다. 창신골목시장에서 두부집을 운영하는 임모(59)씨는 21일 “대통령이 자꾸 국민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이번엔 민주당을 찍겠다”고 말했다. 같은 시장의 반찬가게 상인 오명자(76ㆍ여)씨는 “내가 (윤 대통령과 같은) 충청도 사람이고 오세훈 서울시장과 같은 집안인데, 이번엔 무조건 민주당이여”라고 말했다. 22일 창신역 퇴근길 인사에 나선 곽 후보는 “종로 구민들이 최근에 달라졌다”며 “저한테 ‘안 되면 죽을 줄 알라’거나 ‘당선되면 대통령을 탄핵해달라’고 말하는 분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반면 서북권 주민들은 인물론에 중심을 뒀다. 30년 평창동 주민 이상용(68)씨는 23일 “최 후보는 보수의 기틀이 잘 잡힌 사람이다. 연륜도 있고 생각도 가장 깊어 보인다”고 지지 이유를 밝혔다. 교남동에서 만난 정의윤(37)씨도 “최재형 후보를 찍을 것”이라며 “지금은 뽑아줄 만한 다른 인물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23일 사직동을 찾은 최 후보는 “종로 주민들이 품고 계신 정치에 대한 자부심이라는 게 있다”며 “2년간 소통해왔던 현역 의원으로서 (여당 소속) 대통령·시장·구청장까지 네 바퀴로 달려서 종로의 여러 현안을 해결해가겠다”고 말했다.
4·10 총선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한 국민의힘 최재형 후보가 23일 오전 사직동에서 주민들을 만나 현안을 청취하고 있다. 장서윤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양당 소속 두 후보에 비해 지지율이 낮긴 하지만, 금태섭 후보는 인지도에서 가장 앞서는 분위기다. 24일 오전 빅3 후보가 전원 동심산악회 시산제 현장에 출동했을 때 차이가 드러났다. 멀리서 알아보고 먼저 다가와 손을 내미는 주민들이 가장 많았던 게 금 후보였다. 주민들은 “종로에 나와주셔서 감사하다”(60대 남성) “금 후보 같은 분이 돼야 나라가 발전한다”(60대 여성)고 말했다. 혜화동에 거주하는 30대 남성 윤모씨는 “윤석열 대통령, 이재명 대표 둘 다 싫어 투표를 안 하려고 했는데, 금 후보가 출마했다는 말을 듣고 투표장에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만 금 후보에겐 사표론의 장벽이 높았다. 평창동에서 41년째 공인중개사를 운영하는 한 70대 남성은 “금 후보가 인물은 좋은데 지지율이 5%라서 내 표가 사표 될까 봐 그게 아쉽다”고 말했다. 종로에 30년 살았다는 황모(59)씨는 “이준석 대표랑 같이 있으니 마음을 못 주겠다”고 말했다. 금 후보도 “처음부터 어려운 길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으니, 앞으로 계속 노력해야 한다”며 “주민들을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뵙고 정치 교체를 호소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4·10 총선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한 개혁신당 금태섭 후보가 24일 오전 이화동에서 동심산악회 시산제에 떠나는 주민들을 만나 인사를 건네고 있다. 박건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종로의 숙원 과제로는 ▶주거환경 개선 ▶주차장 확보 ▶북부 지역 지하철역 신설 등이 꼽힌다. 최근엔 낙후 지역의 노령·공동화가 심화하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 위주로 육아 수요가 생겨나면서 출산·육아 환경을 조성해달라고 말하는 주민도 크게 늘었다. 그러나 “이런 걸 해결해주겠다는 정치인들에 하도 속아서 이제는 안 믿는다”(평창동 공인중개사)라거나 “두드러진 숙원 과제가 없기 때문에 주민들이 정치적 이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조기태·79)는 말도 나온다.
다만 대권 주자급 후보가 맞대결을 벌였던 과거에 비해 후보 체급이 떨어졌다는 평가도 주민 사이에서 들렸다. 통인시장 떡집 주인인 60대 여성은 “후보자들이 낯설다 보니 섭섭한 마음이 있다. ‘정치 1번지 종로도 한물갔나?’ 싶다”고 말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앞집 이웃이었다는 이모(83·여)씨는 “원래 정치에 관심이 많고 투표도 항상 했는데 이번에는 찍어주고 싶은 인물이 정말 없다”며 “예전 국회의원 후보들은 대한민국을 위해 몸 바쳐 일하겠다는 포부를 지니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배지 다는 게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정용환·박건·장서윤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