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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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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확장’에 되살아나는 25년 전 트라우마···세르비아 시민들 “민간인 살상 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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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4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유고슬라비아 민간인에 대한 공습을 벌인 지 25주기를 맞아 시위자들이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구 육군본부 앞에서 세르비아 국기를 흔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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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유고슬라비아 민간인을 상대로 폭격·총격을 가한 ‘연합군 작전’이 24일(현지시각) 25주기를 맞았다. 유고슬라비아 영토였던 세르비아에서는 희생자 수천 명의 넋을 기리기 위한 추도식이 열렸다. 일부 세르비아 시민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확장된 나토를 경계하면서 세르비아 정부가 나토와 군사 협력을 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냈다.

세르비아 국영 통신 탄주그는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이 이날 프로쿠플레 토플리치키주나카 광장에서 연합군 작전 희생자 추도식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추도식에 참석한 부치치 대통령과 성직자, 지자체 관계자, 유족들은 추모비 앞에 헌화했다. 프로쿠플레는 나토가 첫 공습을 벌인 세르비아 남부지역 도시다.

공습 당시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은 보자나 토쇼비치는 행사에서 “부활절 휴가를 준비하고 있다가 변을 당했다”며 “시간은 흘렀지만 영혼의 상처는 깊숙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연합군 작전은 나토가 ‘라차크 학살’ 사건을 명분으로 1999년 3월24일부터 6월10일까지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에 행한 공중 군사 작전이다. 라차크 학살 당시 세르비아 민병대는 분리주의 활동을 벌이던 코소보 알바니아인에 대한 학살을 자행했다. 나토는 세르비아 민병대의 학살을 막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연합군 작전을 실시했다.

나토는 당시 유고슬라비아 영토에 8만t 규모의 폭탄을 투하하고, 약 3000기의 순항 미사일을 발사했다. 방사능이 포함된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하기도 했다. 세르비아 정부는 작전 당시 유고슬라비아 민간인 2500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집계했다. 나토군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승인 없이 폭격을 단행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됐다.

하지만 소련이 붕괴하고 유고슬라비아가 해체하면서 세르비아의 대 나토 기류가 바뀌었다. 세르비아는 2006년 나토가 주관한 ‘평화를 위한 동반자 관계’에 스물세 번째 국가로 가입했고, 비정기적으로 나토와 안보 협력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지난해 11월 부치치 대통령과 회담하면서 나토와 세르비아의 합동 군사훈련 가능성을 논의했다.

세르비아는 끊임없이 유럽연합(EU) 가입을 희망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러시아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점, 시민들이 연합군 작전을 벌인 나토에 대한 반감이 있다는 점 등으로 인해 선뜻 나토와 손을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시민단체 ‘전쟁과 제국주의 반대 모임’은 이날 수도 베오그라드 구 육군본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나토와의 모든 협력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전쟁과 제국주의 반대 모임’은 세르비아 정부가 나토와 합동 훈련을 하거나, 나토 인사들이 세르비아에 방문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견해를 줄곧 밝혀왔다.

라티슬라프 가스치 세르비아 내무장관은 나토 침공 25주기 기념식이 열린 지난 22일 이 작전이 ‘인도적 개입’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가스치 장관은 “2500명에 달하는 민간인과 750명 이상의 군인과 경찰이 사망했고, 기반 시설, 기업, 학교, 의료 시설, 언론사, 기념물, 교회 등이 심각하게 파괴됐다. 이는 믿을 수 없는 불의였다”고 지적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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