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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선거와 투표

귀화 외국인 “투표는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길” [총선기획, 다른 목소리 ⑦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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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러시아 출신 귀화자 이유진씨(47)가 지난 5일 서울 강동구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두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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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만 3825명.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2년 11월 기준 국내 거주 귀화 외국인 수다. 영주권을 취득한 후 3년이 경과한 외국인에게는 지방선거 선거권만이 주어지지만, 귀화자는 총선과 대선에서 모두 한 표를 행사할 권리가 있다. 피선거권을 부여받기 때문에 직접 선거에 출마할 수도 있다.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를 지내고 현재 녹색정의당 비례대표인 이자스민 의원, 국민의힘 비례대표 출마가 유력한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은 모두 귀화 외국인이다.

한국에서 귀화 외국인의 정치 참여는 여전히 험난하다. 지난 5일과 9일 각각 만난 귀화 외국인 이유진씨(47·러시아 태생)와 이본아씨(29·미얀마 태생)는 입을 모아 이러한 ‘진입 장벽’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유진씨는 한국에서의 첫 투표였던 2016년 총선을 잊지 못한다.

“투표하려고 줄을 서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왜 외국인이 여기에 왔냐며 다 들리게 수군거리더라고요. 선거 관리하는 직원도 저한테 ‘여기 한국인만 들어올 수 있다’며 나가라고 했어요.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니 그제야 들여보내 줬어요. 그때 기분이 너무 나빠서 투표장을 나오자마자 남편에게 이젠 투표 안 할 거라고 했어요.”

‘투표 거부 선언’이 무색하게도 이유진씨는 2022년 대선 날에도, 같은 해 열린 지방선거 날에도 꼬박꼬박 투표소를 찾았다. “제가 외국인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 국민으로서 투표장에서 제 의견을 내야죠.” 그는 주어진 참정권을 행사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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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출신 귀화자 이본아씨(29)가 지난 9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두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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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본아씨는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이다. 현재 중앙당 다문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주변에 투표에 참여하고 싶어하거나 입당하고 싶어하는 귀화 외국인들은 많은데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외국인을 위한 정치 참여 교육이 더 활성화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본아씨는 “잘 모르니까 주변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투표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있다”며 “일단 정치에 대해 알아야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고국 간의 관계는 이들의 정치적 지향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후 이유진씨는 윤 대통령의 외교 정책을 비판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유진씨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할 수 있지만, 한국과 러시아 양국 간 관계를 생각하면 무기 지원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통령으로서 할 일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본아씨는 미얀마에서 반복되는 쿠데타를 경험하며 정치인이 되어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한국인 남편을 만나 2018년 국내에 들어온 이본아씨는 2021년 미얀마에서 일어난 군부 쿠데타를 계기로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쿠데타 발발 직후 한국에서 ‘미얀마의 봄’이라는 연극을 했는데 그때 민주당 의원들과 접촉이 많았기에 자연스레 민주당에 입당하게 됐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미얀마 민주화 지지 연설 때문에 민주당과 마음이 더 가까운 이유도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5월 미얀마 군부를 대표하는 주한 미얀마 대사를 국내 무기 수출 행사에 초청했다. 이는 이본아씨를 정부·여당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주한 미얀마 대사는 미얀마 국민이 아니라 군부를 대변하고 있는데, 그런 대사를 무기 홍보 행사에 초청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며 “미얀마에서 무기를 수주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비판했다.

이본아씨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법무부 장관 시절 내놓은 출입국·이민관리청 신설 정책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한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조선업 일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 외국인 투입을 늘리고 있는데, 이유는 하나다. 거기는 어차피 대한민국 젊은 분들이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면서 “(젊은이들이) 자동차라든가 이런 부분(업종)은 가고 싶어 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 외국인을 늘리는 것은 안 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본아씨는 “한 위원장의 이민 정책은 이민자와 내국인의 갈등 해결을 제도화하는 데에는 고민이 없어 보인다”라고 비판했다.

이본아씨는 귀화 외국인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당사자 정치인’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아이수루 시의원(키르기스스탄 출신)이 서울시 최초의 귀화 시의원으로 당선돼 의정 활동을 펼치고 있다”며 “한국은 다문화 가정과 이주여성,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식과 지원이 아직 미흡한데 미얀마 출신 대한민국 국민인 저와 같은 당사자 정치인이 앞장서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유진씨와 이본아씨는 오는 4월 10일 총선 투표장을 찾아 국민으로서의 한 표를 행사할 예정이다. 이유진씨는 “이번 총선 때에는 다른 사람 의견에 의존하지 않고 내 가치관에 맞는 후보자를 찍기 위해 공약들을 찾아보고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본아씨는 “2022년 대선 때 선거 공보물을 처음 받았는데,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뿌듯하고 자부심이 생겼다”며 “이번 총선에서 다문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어주는 정치인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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