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전북 효자5동에서 점심을 마친 김상운(59)씨는 전주을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호남이 대체로 야당 텃밭이라지만 이곳은 다양한 성향의 주민이 뒤섞여 있고, 토박이보다는 신도심에 유입된 인구가 많아 민심이 변화무쌍하다는 의미였다. 김씨가 말한 세 명은 더불어민주당 이성윤, 국민의힘 정운천, 지역구 현역인 진보당 강성희 후보로 호남서 보기 드문 3파전 구도다.
전북 전주을에 출마한 정운천 국민의힘, 이성윤 민주당, 강성희 진보당 후보(왼쪽부터). 프리랜서 김성태, 박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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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을은 동네마다 분위기가 판이했다. 90년대 지어진 구축 아파트와 원룸촌이 많은 삼천동은 구도심 인상이 강했다. 구도심에서 서쪽으로 50m 폭의 하천을 건너 있는 효자동은 신축 아파트와 도청·교육청 및 금융기관이 몰려 신도심 느낌이 물씬 났다.
지역에 대한 주민 인식도 각양각색이었다. 공인중개사 임재석(58)씨는 “신시가지는 돈깨나 있는 주민이 살아 ‘의사 아파트’라고 불리는 단지도 있다”며 “교육열도 높아 전주의 대치동 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삼천동에 사는 이만덕(80)씨는 “맨날 뭐 한다고 말만 허지 바뀌는 건 하나도 없어”라고 했고, 카페를 운영하는 황모(43)씨도 “요즘 상가가 텅 빈 절간 같다”라고 푸념했다. 그래도 총선 판세에 대해선 대체로 “민주당세가 다소 강하지만 3파전이면 아무도 모른다”는 반응이 많았다.
중앙정치 무대에서 이목을 끌거나 중량감 있는 후보가 도전장을 낸 점도 이런 흐름을 강화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낸 이 후보는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며 ‘반윤·친문 검사’란 말을 들었다. 5인 경선을 뚫고 6일 공천장을 거머쥐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농식품부 장관을 지낸 정운천 국민의힘 후보는 2012년 총선 때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소속으로 전주을에서 이긴 지역 강자다. 강 후보는 18일 전주에서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윤 대통령과 악수하며 “국정 기조를 바꾸라”고 항의하다 경호원에게 입을 틀어막힌 채 쫓겨나 ‘입틀막’이란 별명을 얻었다.
전북 전주을에 출마한 이성윤 민주당 후보가 11일 전주 효자광장 사거리에서 출근길 유세를 하고 있다. 박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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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윤 후보를 향해서는 정권 심판의 기대감이 컸다. 호프집을 운영하는 조모(54)씨는 “이 후보가 금의환향했으니 팔 걷어붙이고 도울 것”이라며 “윤 정부와 잘 싸울 싸움닭을 국회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과일가게를 하는 이모(63)씨는 “이 후보가 윤 정부에서 너무 탄압받아서 안씨럽다(안쓰럽다)”고 말했다. 반면, 삼천동에서 만난 주부 이모(53)씨는 “그 쪽(이 후보)은 지역 사정을 몰러도 너무 몰러(몰라)”라며 “무작정 당만 믿고 늑장 출마한 것 아녀?”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27일 전주을 출마를 선언한 이 후보가 정치 초보임을 꼬집은 발언이다.
11일 오전 이 후보는 전주 효자광장 사거리에서 출근길 유세를 했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선 이성윤’이라는 문구가 큼직하게 적힌 팻말을 멨다. 이 후보가 연신 손을 흔들자 일부 차량은 지지의 의미로 약한 경적을 울렸고, 창문을 내리고 “힘내세요”라고 외치는 주민도 있었다. 한 70대 남성은 이 후보의 손을 잡고 “될거여, 암 되고말고”라고 격려했다.
정운천 국민의힘 후보가 10일 전주 신일교회 앞에서 유권자를 만나 인사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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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천 후보를 두곤 정책 추진력을 높게 샀다. 전주에서 15년간 민주당 후보만 찍었다는 이모(47)씨는 “정 후보가 지역 현안을 잘 꿰고 있어서 이번엔 뽑아주려고 한다”며 “생각 없이 민주당을 밀어준 결과가 지금 이 꼴”이라고 했다. 반면 국민의힘 간판이 약점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택시 기사 김대화(69)씨는 “정 후보가 쩍은(작은) 행사장까지 얼굴 들이밀고 열심히 했지”라면서도 “그런데 그 양반, 옷 색깔(정당)을 너무 잘못 골랐어”라고 지적했다.
10일 정 후보는 지역구 한 교회 앞에서 유세했다. 선거 운동 조끼에는 이름 석 자가 크게 적혀 있었지만, ‘국민의힘’ ‘기호2번’이라는 글자는 상대적으로 작았다.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이라 주민 상당수가 정 후보를 낯익어했다. 일부 주민은 “어이구”라며 먼저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고, 휴대전화로 인증샷도 수시로 찍었다.
강성희 진보당 후보가 10일 전주농수산물시장 인근 공원에서 유권자를 만나 인사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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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희 후보는 발로 뛰는 후보로 통했다. 김모(48)씨는 “데모만 할 줄 알았는데, 지역 일을 참 열심히 챙기더라”고 했다. 성태훈(34)씨는 “대통령에게 대든 소신을 높게 친다”며 “이번 공천을 보니 이재명 당엔 표를 못 주겠다”고 말했다. 반면 “저번에 강 후보가 뽑힌 거는 어부지리인겨”(60대 여성 조모씨)라는 평가도 있었다.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민주당 이상직 전 의원의 낙마로 치러진 지난해 4월 재선거에서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않았고, 강 후보가 당선됐다.
강 후보는 10일 하늘색 점퍼를 입고 삼천동 하천 인근에서 주민들과 만났다. 운동하거나 벤치에 앉아 있는 주민에게 달려가 “어디 사세요?”라며 명함을 건네는 ‘뜀박질 유세’를 했다. 일부 주민들은 지역구 현역인 강 후보를 알아보고 “또 보네요”, “왜 이렇게 열심히 돌아다녀요”라고 살갑게 맞았다.
정근영 디자이너 |
■ “복장 터져” 도심 한복판 방치된 ‘대한방직 터’ 선거 변수로
전북 전주을 지역의 서부 신시가지 한복판에 방치된 옛 대한방직 전주공장터. 박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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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을이 속한 서부 신시가지 한복판에는 흉물스럽게 방치된 23만㎡(7만평)의 부지가 있다. 인근 전북도청 부지를 두 개 더한 것보다 더 큰 이곳은 옛 대한방직 전주공장이 있던 자리다. 2018년 공장 가동이 멈춘 이후 부지 개발 방식 등을 두고 공전을 거듭하면서 6년 가까이 방치돼 있다.
10일 둘러본 이 부지는 회색벽이 넓게 둘러싸고 있었다. 굳게 닫힌 철문 입구에는 “절대 출입금지”라는 붉은색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틈으로 보이는 내부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건축 자재가 바닥에 널려 있었다. 공장 건물 외벽과 지붕은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주변을 걷던 박길수(66)씨는 “시가지 한복판의 넓은 땅을 펜스로 막아놔 답답해서 복장 터진다”며 “버려진 자재에서 가루가 날리고 흙먼지도 많아 눈이 아프고 목도 칼칼하다”고 말했다.
그나마 최근 전주시가 이 부지를 도시계획변경 협상 대상지로 선정하면서 개발의 길이 열렸다. 민간사업자인 자광㈜이 470m 높이 타워와 200실 규모의 호텔, 백화점 등을 이곳에 짓겠다는 개발 계획을 냈다. 3300여 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짓는 방안도 포함됐는데, 지난해 기준 인구 16만 7000명인 전주을 선거 구도를 뒤흔들 수 있는 규모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을 작게 보는 지역 주민과 시민 단체도 적지 않았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부동산 융자 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장밋빛 계획 아니냐는 것이다. 주민 오모씨는 “뺀날(맨날) 공사를 한다면서 이렇게 널따란 땅을 계속 방치하고 있다”며 “타워는 안 바라니 녹슬고 흉한 건물들이라도 싹 정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난 민심에 후보들도 저마다 공약을 내놨다.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부지 개발 뒤 예상되는 교통난을 해결하기 위해 지역 고가도로 설치 등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운천 국민의힘 후보는 이 부지를 전주특별자치도의 랜드마크로 지정하고 민간 기업 투자를 독려하겠다고 공약했다. 강성희 진보당 후보는 개발 이익 환수 방안을 최대한 빠르게 확정 짓고, 더 환수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전북 전주=손국희ㆍ박건ㆍ장서윤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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