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달성하는 유일한 길은 대화와 외교입니다. 이를 위해 어떤 직급에서도 관심 사항에 대해 전제조건 없이 대화를 재개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계속 보낼 것입니다.”
정 박 미국 국무부 대북고위관리, 5일(현지시간) 워싱턴DC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세미나에서
미국 태평양세기연구소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남북미 합동공연을 추진했으나 불발됐다. 사진은 한국 측 원형준 린덴바움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의 공연 모습. 린덴바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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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과 일본이 심상치 않습니다.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데, 두 국가는 연신 북한을 향해 대화 메시지를 던집니다. 심지어 북한의 비핵화 ‘중간 단계 조치’까지 언급했습니다. 보기에 따라 비핵화 협상이 아닌 군축 협의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급기야 미국은 남북한을 모두 초청해 합동 공연까지 추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참석 예정자의 '북한 주민 접촉 신고'를 거부하며 외면했습니다.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비핵화 ‘중간단계’ 언급한 미국, 민간에선 남북미 합동공연 추진
10일 복수의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미국 태평양세기연구소(PCI)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 호텔에서 열리는 ‘빌딩브리지어워드(Building Bridges Award)’ 행사에서 남북미 합동 오케스트라 공연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남북미 최초의 합동 공연을 추진한 것입니다.
재단이 초청한 인사는 우리 측 원형준 린덴바움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음악감독(바이올리니스트)과 북한의 김송미 소프라노였습니다. 이들은 2019년 2월 트럼프-김정은의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같은 해 5월과 9월 중국 상하이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남북 합동 공연을 펼쳐 ‘오케스트라 외교’의 가능성을 보여준 인물들입니다.
주목할 점은 미 국무부가 재단의 움직임에 반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 정부 측에서 반기진 않았지만, 반대한 것도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초대받은 원형준 바이올리니스트도 “주최측은 전날까지 미국 정부를 설득하는 데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며 “음악의 힘을 빌려서라도 정치권을 설득하는 일이 우리 음악인들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심화하고 있다는 이유로 남북 간 민간 교류를 전면 차단한 우리 정부와 달리,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말 그대로 “어떤 형태의 대화든 환영”이라는 입장을 민간에도 적용하고 있는 겁니다.
PCI 행사에 참석한 한 인사는 “북미 간 접촉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번 교류 시도는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말했습니다. 11월 미 대선에서 바이든 행정부 2기가 출범하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든 북한과의 대화 시도가 본격화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실제 바이든 정부는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다시 시작하고자 줄곧 뉴욕 채널 등을 통해 외교적 해법을 북한에 제안해왔습니다.
합동 공연은 북 측의 무반응으로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미 측에서 북한과 민간차원의 접촉을 계속 시도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만큼, 미국에서 남북 합동 공연이 성사돼도 이상하지 않은 국면입니다.
“대화 시도 계속될 것”이라는데…정부는 “민간대화 불허”
2019년 5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원형준(왼쪽) 음악감독과 북한 소프라노 김송미의 합동 공연. 린덴바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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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북한을 둘러싼 상황이 물밑에서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문을 닫고 완고한 태도를 고수하는 데 치중하는 모습입니다. 이번 행사 추진과정에서 관련자들이 통일부에 북한 주민 사전 접촉 신고 여부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통일부는 “과거와 차원이 다른 북한의 도발과 국가안전보장을 위협하는 상황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불허할 수밖에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이에 미 측에서 추진하는 행사라고 했더니 통일부 관계자는 말을 바꾸고는 “신고 접수를 받지 않는 것으로 하겠다. 상황을 지켜보자”고 한발 물러서면서도 여전히 뒷짐만 졌다고 합니다. 북한의 위협 때문에 민간 대화를 허용할 수 없다면서 미국의 움직임이 어떤지 눈치만 보는 것으로 비칩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일본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고려한 다양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만큼 우리의 원칙과 입장을 정리하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합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가 진지하게 북한과 대화를 추진했다면 지난해 상반기부터 시작했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미 대선 이후 바이든 2기 행정부가 들어서든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든 북미 간 대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한국이 배제되지 않도록 대비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바이든 행정부는 선거를 앞두고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북한과 다양한 물밑 접촉을 추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민간 예술교류, 신뢰구축 시그널…이 때문에 정쟁에 휘말리기도
4월 방한할 예정인 볼쇼이 발레단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 해프닝피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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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I재단은 왜 남북 오케스트라 공연을 추진한 것일까요? 역사적으로 오케스트라는 ‘문화외교’의 대표적 수단으로 활용됐습니다.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56년 미국 보스턴 심포니는 옛 소련을 방문해 음악회를 열었죠. 이는 스탈린의 사망 이후 동서 긴장화 국면을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후 뉴욕 필하모닉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가 옛 소련을 방문하며 문화교류를 계속했습니다. 미중 관계 정상화 때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인민대회당에서 연주하는 등 합동 공연은 정치적 교착상태에 물꼬를 트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조 연구위원은 “민간교류는 경제적으로 큰 의미가 없지만, 신뢰 구축 초기 단계에서 물꼬가 될 수 있다”며 “남북미 공연이 미국에서 이뤄진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대화가 이뤄진다는 시그널”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정부, 북한과 접촉 반대... 미국과 일본은?
동맹 미국이 한국과의 대화 없이 북한과의 접촉에 쉽게 나서진 않을 것입니다. 실제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은 외교채널을 통해 북일 물밑 접촉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수시로 확인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이 북한과의 접촉을 반대한다고 해서 미국과 일본이 그 의견에 그대로 따른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정부는 ‘선(先) 비핵화 선언, 후(後) 대화’를 강조합니다. 이는 “평화를 위한 모든 종류의 대화는 환영”한다는 미국 정부의 입장과 결이 달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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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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