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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악성 민원 생각하니 맥 풀려’…온라인 신상 공개 공무원 사망에 수험생도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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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보수 공사로 차량 정체…항의 민원 이어 담당 공무원 신상 공개돼

공무원 수험생들 사이서 ‘익명 커뮤니티가 사람 잡는다’ 울분

최초 글 올라왔던 커뮤니티 운영자는 공지서 “저희 카페 관련에 죄책감과 슬픔 밀려와”

세계일보

경기 김포시 도로 보수 공사에 따른 차량 정체에 관련 부서 공무원을 비난하는 댓글이 지난달 29일 국내의 한 온라인 커뮤니티 글에 달렸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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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보수 공사에 따른 정체로 연이은 항의성 민원에 시달린 공무원 사망 사건에 임용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 사이에서 우울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경찰 수사 중으로 항의 민원과 사망 인과관계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민 최전선에 있는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다는 공감대와 합격 후 자신에게도 비슷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불안한 예감 등의 작용으로 보인다.

6일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의 공무원 시험 관련 게시판을 보면 안타깝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한 누리꾼은 ‘공무원 비판은 그렇게 많이 하면서 또 바라는 것도 많다’며 날을 세웠고, 다른 누리꾼은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가 사람을 잡는다’고 가슴 아파했다. 또 다른 누리꾼도 ‘힘들게 합격해서 온라인에서 신상까지 공개된다고 생각하니 맥이 탁 풀린다’며 ‘악성 민원을 생각하면 시험을 접어야 하나 생각까지도 든다’고 토로했다.

앞서 지난달 29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김포 한강로 무슨 일일까’라는 글이 올라왔다. 서울에 다녀오는 길이라던 게시자는 ‘목적지까지 10㎞가 남았는데 도착까지 45분이 찍힌다’며 ‘공사 중인지 사고가 났는지 답답하다’고 썼다. 이 글에 비판성 댓글은 있었지만 특정인을 비난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한 누리꾼이 주무관 A씨 실명과 소속 부서 그리고 직통 전화번호 등을 공개하면서 분위기는 뒤바뀌었다. ‘집에서 쉬고 있을 이 사람 멱살 잡고 싶네요’, ‘정신 나갔네요. 2차로를 막다니’, ‘참 정신 나간 공무원이네’ 등 비난이 잇따랐다.

인천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5일 오후 3시40분쯤 인천 서구 도로에 주차된 차량에서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김포시 9급 공무원 A씨는 발견 당시 호흡과 맥박이 없는 상태였으며 차 안에서는 극단적 선택을 한 정황이 확인됐다. 경찰은 ‘A씨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유족 측 실종 신고를 받고 동선을 추적하다가 A씨 위치를 파악했다. A씨는 지난달 29일 김포 도로에서 진행된 포트홀(도로 파임) 보수 공사로 정체가 빚어지자 항의성 민원을 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유족 조사 과정에서 민원인들의 항의와 A씨 사망 간 인과관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A씨의 유서는 따로 발견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일단 범죄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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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김포시 공무원 비난 댓글에 논란이 일자, 해당 커뮤니티 운영자가 6일 오전 올린 사과문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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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최초 글이 올라왔던 커뮤니티의 운영자는 6일 오전 게시판에 공지를 올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손이 떨리고 마음이 아파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운영자는 “주무관님의 안타까운 소식에 저희 카페가 관련된 데 말할 수 없는 죄책감과 슬픔이 밀려온다”며 “운영진은 단순 민원성 게시물로 판단해 신상 털이와 마녀사냥식 댓글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저와 운영진 모두 돌아가신 주무관님께 죄송한 마음”이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김포시는 이날부터 오는 12일까지를 A씨 애도 기간으로 정해 시청 본관 앞에 추모공간을 마련했다. 시는 A씨를 상대로 작성된 신상정보 공개 글이나 인신공격성 게시글 등을 수집했고 민원 전화 통화내용도 확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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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김포시청이 6일 항의성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것으로 알려진 공무원 애도 문구를 송출하고 있다. 김포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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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김포시장은 “일어나서는 안 될 안타까운 일이 우리 김포시에서 발생했다"며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숨진 고인은 김포시와 시민을 위해 애써온 우리 가족”이라고 애도했다. 이어 “지난주까지만 해도 한 공간에서 함께 일해 온 가족이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 것에 대해 김포시 전 공무원은 충격과 슬픔 속에 잠겨있다”고 전했다. 김 시장은 “시는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즉각 마련하고 유가족과의 대화에 나서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출 것”이라며 “김포시 공무원도 검은 리본과 검은색 착장으로 애도를 표하고자 한다”고 알렸다.

김포시 공무원노동조합도 성명을 내고 “개인 신상 좌표 찍기 악플과 화풀이 민원에 생을 마감한 지금의 상황이 참담하다”며 “어느 때보다 전 직원이 동질감과 깊은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노조는 “유족의 의견을 존중하고 법적 대응 등 유족의 결정에 따라 시와 힘을 합쳐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공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이 다시는 이러한 사태에 이르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보호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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