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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3 (토)

[이경욱 칼럼] 이강인과 존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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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아시아투데이 대기자


고교 1년 선배, 대학 3년 선배와 함께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입사 동기들끼리 있을 때 동갑내기 동기들이 고교·대학 선배에게 반말하는 게 영 듣기 불편했다. 선배 동기에게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막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선배와 단둘이서 만날 때에는 존댓말이 튀어 나왔다. 매년 신입사원들이 들어왔다. 후배들과 친숙해지기 전 존댓말을 했다. 후배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말 놓아주세요. 존댓말 부담스럽거든요." 우리말은 우수하다. 한류 덕에 제2외국어로 채택하는 나라가 점점 늘고 있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이 줄지어 서 있다. 그러나 존댓말에 관한 한 개인적으로는 글쎄다.

국민적 관심사였던 '손흥민-이강인 사건'. 국가대표 축구 선수, 소위 '월드 클래스'라는 두 축구 선수 사이에 벌어진 사건이다. 축구대표팀 회식 후 개인행동을 하려던 이강인을 손흥민이 만류하는 과정에서 다툼이 있었고 손흥민이 다쳤다는 게 정설처럼 통한다. 이후 이강인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이강인을 모델로 한 기업의 홈페이지는 모델 취소 요구로 도배가 됐다. 이강인은 막대한 위약금을 물게 됐다. 그가 손흥민에게 사과함으로써 사건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됐다.

혈기 왕성한 두 젊은이의 드잡이를 두고 많은 생각을 했다. 드잡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무 일도 아닐 수 있는 사안이 너무 불거진 것 아니냐는 뜻을 담고 있다. 손흥민이 주장이기에 이강인은 그의 지시나 의견을 따라야 한다. 두 사람이 '근무시간' 격인 축구 경기 도중 이런 드잡이를 했었다면 그건 엄한 징계를 받아야 한다. 9살 차이의 두 사람은 드잡이 과정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평소 이들의 대화는 어땠을까. 서로를 존중하는 말투를 썼을까.

이 자리에서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려는 게 아니다. 우리말의 존칭이 주는, 뭔가 딱 잡아서 설명하기 힘든 모호함에 대해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다. 존댓말은 이제 생각해 볼 대상이 됐다. 우리 사회는 20~40대의 MZ세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MZ세대의 소통 방식에 무게를 둬야할 시기가 됐다는 뜻이다. 유교적 전통에 거부감 없는 세대는 밀려나고 있다. 젊은이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어하는 인간관계의 밑바탕에는 말투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우리의 말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윗세대가 면밀히 들여다봐야 할 때다.

존댓말이 사회 전반에 걸쳐 경직과 불통 관계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닐까. 직장 상사와 부하, 학교 선후배 사이의 관계가 불편해지거나 원활한 소통에 지장이 초래되는 것은 아닌지,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하는 우리가 존댓말에 묶여 지금 이 수준에서 멈춰 있는 것은 아닐지 걱정된다. 선진국에 진입한 우리 사회의 건강함은 나이·경력에 상관없이 서로 원활한 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탄탄해지지 않겠는가. 연장자라고, 상급자라고 무턱대고 반말을 내뱉고 단지 나이가 적고 입사가 늦다는 이유로 기계적으로 존댓말을 하고 위축되는 게 영원히 옳을까.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거친 언행을 일삼는 우리는 과연 합당한 인격체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평준화는 상향이 더 낫다. 그렇다면 나이 차, 세대 간 구분 없이 모두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쪽으로 우리의 언어 습관이 상향평준화된다면 더 멋진 우리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유달리 욕설이 많은 우리말이 순화되지는 않을까, 아래를 향한 반말이 자리 잡은 학교, 직장, 우리 사회에 새로운 바람이 불지는 않을까. 손흥민과 이강인이 서로 존댓말을 하고 인격적으로 존중했더라면 드잡이가 있었을까.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존댓말 사용을 통해 평등한 시선과 존중의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되는 날을 기대하는 것은 비단 꿈에 지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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