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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가짜노동 저자 "한국 교육열, 빨리빨리 문화가 거짓노동 만들어" [당신을 좀먹는 가짜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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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노동: ⑤데니스 뇌르마르크 인터뷰]
무의미한 업무 지적, '가짜노동' 저자
'내가 하는 일 의미' 멈춰서 고민해야
젊은 층, 기성세대 누구나 각성 필요
"저성장 늪, 가짜노동 척결에서 출발"


편집자주

오늘도 우리는 노동 현장에 몸담았습니다. 눈코 뜰 새 없이 하루를 끝내고 나면, 문득 물음표가 떠오르지 않나요? 상사 보고를 위해 30분을 기다렸고, '일하는 티'가 듬뿍 담긴 보고서를 쓰는 데 2시간을 보냈고, 밤 늦게까지 팀원들과 술을 마셨고···. 일다운 일을 한, '진짜 노동'을 한 건 몇 시간일까요. 그래서 한국일보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는 '가짜 노동'의 현실을 고발합니다. 당신의 삶을 흔드는 그 비효율성에서 노동자 모두가 해방되기 위한 길을 모색해 봅니다.
한국일보

지난해 12월 책 '가짜노동' 저자 데니스 뇌르마르크가 한국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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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재량시간이 더 확보될 때마다 자신을 계속 분주하게 만들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냈다. 더 추상적이고 점점 이해하기 어려운 유형의 일을 하느라 더 바빠졌다."
(책 '가짜노동' 65쪽 발췌)

1930년,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기술 발전을 근거로 "2030년까지 인간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 15시간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그 '약속의 시간'을 6년 앞둔 지금, 선진국 문턱을 넘은 한국은 여전히 주 40시간 노동을 하고 있으며, 일 짧게 하기로 유명한 프랑스는 24년 동안 주당 노동시간을 '35시간'에서 줄이지 못한다.

기술은 발전했는데, 왜 인간은 계속 '노동의 굴레'를 이리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 이유를 명쾌하게 제시한 책이 바로 덴마크의 데니스 뇌르마르크와 아네르스 포그 옌센이 함께 쓴 '가짜노동'이다. 두 사람은 "바쁜 척하는 헛짓거리, 노동과 유사한 무의미한 업무인 가짜노동을 하느라 사람들은 여전히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고 주장한다.

2022년 번역 출간돼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던 이 책의 공저자, 덴마크 인류학자 뇌르마르크를 한국일보가 만났다. 지난해 말 본보와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그는 "실제 업무가 사회에 얼마나 기여하는지에 대한 고민, 효과성에 대한 고민이 한국 사회에 없었던 것 같다"며 "가짜노동을 없애기 위해선 과도한 교육열도 줄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본보가 뇌르마르크와 나눈 일문일답.

_가짜 노동이란 개념이 이 시대에 호소력을 갖게 된 배경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마음 한 편에 '내 일이 의미가 없다'는 나름대로의 추정은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입밖으로 꺼내지를 못했죠. 자신이 항상 최적화되고 효율적인 일을 하면서 산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일 자체가 잘못됐다기보다, 내 판단이 잘못됐다고 생각한 거죠. 가짜노동은 이런 사람들을 연결시켜줬다고 생각해요. 책이 처음 나왔을 때(덴마크판 2018년) 사람들은 지금까지 '내가 잘못된 줄 알고 있었는데 나만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게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고 서로 공감을 얻은 것 같아요."

_한국 독자들의 반응도 있었나요?

"한 강연에서 한국 친구들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었어요. 제 책이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많이 읽히고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덴마크에서는 전 세대적으로 공감을 얻었을 뿐 아니라, 관리직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이 책을 읽고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제게 전하곤 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젊은 층에 집중돼서 호응이 나타나는것 같아요."

_자기 업무가 가짜 노동인지를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핵심은 지루한 일과 가짜 노동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살면서 한 번쯤은 흥미 없는 지루한 일을 하게 되죠. 다만 이게 모두 가짜노동은 아니예요. 가짜 노동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미한 일들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을 잠시 무시해보는 노력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매달 파리에 있는 본부로 보고서를 보냈어야 했는데, 한 5년간 이 일을 멈추고 있음에도 아직도 아무 연락도 못 받았다고 합니다. 완전히 가짜노동인 거죠. 꼭 실제 행동으로 이어가지 않더라도 자기 업무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고민해보는게 중요합니다."

_한국은 효율성에 목숨을 거는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왜 한국에 가짜 노동이 이렇게 많을까요?

"효율성과 효과성을 구분해야 합니다. 효율성은 '얼마나 빠르게 일을 해치울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라면, 효과성은 '일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지는지'의 문제죠. 한국은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데 집중했을 수 있지만, 효과성에 대한 고민을 해본적은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효율성'을 중시하는 문화는 가짜노동을 만들어내기도 하죠.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척 하거나, 쓸데없는 회의 일정으로 캘린더를 채워요. 효율성의 상징처럼 보이는 일들을 많이 채워놓으면, 되게 멋지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것에 현혹돼선 안됩니다."
한국일보

지난해 12월 책 '가짜노동' 저자 데니스 뇌르마르크가 한국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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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한국의 교육열은 최고 수준입니다. 그런데 당신 책에서는 과도한 교육이 가짜노동을 만들어낸다고 했어요.

"대학을 졸업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전공분야가 점점 세분화되지요. 그러다보니 기업들은 이런 세부전공을 공부한 사람들을 고용하기 위해 사사로운 직책들을 만들어냈어요. 결과는 가짜노동이죠. 예를 들어 제품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제품을 위한 TF팀을 만드는데 신경쓰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소비자나 고객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직접 돕기보다는 '돕기 위한 프로세스'를 개발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실제 가치를 창출하는 일보다 새로운 미팅을 하고 관리를 하고 전략을 짜는 식의 가짜노동이 늘어난 거죠.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_교육열을 줄일 방법이 있을까요?

"태도나 사고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겠죠. 한국도 마찬가지고 전 세계가 사무직이나 관리직 아니면 학문직에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명예롭고 가치 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고 방식이 존재합니다. 이를 멈춰 세울 필요가 있어요.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에 필요로 하는 업무가 무엇인가 생각해봐야 해요. 단적으로 덴마크에서는 사무직이 넘쳐 흐르는 반면, 풍차를 만들거나 파이프를 수리하는 것 같은 기본적인 노동을 할 사람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집 수리를 하려면 두 달을 기다려야 할 정도죠. 기업들은 '생산성이 가짜노동을 하는 사무직이 아닌 직접 노동에서 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체계를 고쳐나가야 합니다."

_실제로 가짜노동을 줄여 효과를 본 사례가 있을까요?

"최근에 독일에서 한 베이커리 사례를 봤어요. 5,000명 정도의 직원이 종사하는 사업체인데, 여기서 직원들 스스로가 가짜노동을 파악하고 식별을 하게 만들었죠. 이후 한 집단에서는 계속해서 가짜 노동을 하도록 하고, 다른 한 집단의 직원들에게는 없애도록 했다고 해요. 결과적으로 가짜노동을 없앤 집단이 생산성이나 판매 지표의 차원에서 5%가량의 개선을 이뤄냈어요."

_한국에선 가짜노동의 심각성을 느끼는 정도가 세대별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젊은 층들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거 같아요.

"젊은 층 본인들의 노동력이 하나의 권력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굉장히 매력적인 노동층입니다. 젊은 세대가 가지는 노동자로서의 가치가 높기 때문에 이것이 권력임을 알고 계속해서 기성세대에 질문을 해야합니다. 기성세대도 젊은이들의 질문에 짜증을 낼 게 아니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하죠. 비판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지닐수록 더 빠른 변화가 가능합니다."

_그런데, 직원들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문화가 때론 또 다른 가짜노동을 만들어낸다고도 지적하셨거든요.

"흥미롭게도 한국과 덴마크 사이에 이 부분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덴마크의 경우엔 관리직들이 거의 권력이 없다시피하고, 권한을 쓰는 것을 터부시하는 문화가 있어요. 사람들한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게 하면 인기가 없어지는 거죠. 그래서 오히려 관리직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중요한 결정들을 내리는 걸 회피하다보니 각종 가짜노동이 생겼어요. 반면 한국은 대부분의 결정들이 수직적으로, 톱다운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가짜노동이 파생되는 결과를 낳고 있어요. 완전히 정반대 성향을 지닌 것인데, 중간 지점을 찾는 게 중요하겠습니다."

_한국에선 오히려 직장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인가요?

"조금 전 독일 베이커리가 좋은 예시가 될거 같아요. 당시 관리직들한테 서류 작업을 줄이자고 하니 반발이 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직원들한테 어떤 일이 가짜노동이라고 생각하는지 직접 식별하도록 했고, 이를 줄였더니 실제로 생산성을 향상하고 가짜 노동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관리직이 회사 내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지만, 결국에는 관리직도 다 사람이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가짜노동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한국에는 그런 문화가 더 필요해요."

_책에서 부하직원을 강압적으로 감시하는 것보다 신뢰해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그런데 개인적이고 추상적인 방법 아닌가요?

"옳은 지적입니다. 다만 '신뢰'의 문제를 언급한 이유는 무엇보다 관리자들이 가짜노동의 폐해를 깨닫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관리직이 이 사실을 깨달아야만 노동자들이 의미 있는 일들을 할 수 있고, 그렇게 될 때 사람들이 가치 창출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죠. 또 최근 연구를 통해, 직원들에게 여유를 주면 더 많은 혁신이 이뤄진다는게 밝혀지고 있어요. 지금 한국사회도 그렇고 전세계가 노동자들에 대한 신뢰가 없이, 너무 많은 구속과 통제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혁신의 결여로 이어지죠."
한국일보

'가짜노동'의 저자 데니스 뇌르마르크. 자음과 모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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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한국에선 저성장에 대한 우려가 많습니다. 가짜 노동을 떨치려는 노력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까요?

"당연합니다. 가짜노동을 척결하고 나면 우리가 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더 많이 느낄 수 있게 되고, 우리가 하는 일을 즐겁다고 생각할 때 더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사고가 나올 수 있죠. 더 많은 동기부여는 덤이고요. 또 '인간은 누군가에 의해 강제될 때만 일을 한다'는 사고 방식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 사람들은 일에 집중할 수 없고, 생산성도 떨어지게 되죠."

_가짜노동을 강조하면, 누군가는 '사람을 줄이고 일자리를 없애야한다'는 결론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인력감축이 항상 답은 아니죠. 노동 시간을 줄이는 게 더 중요해요. 많은 기업에서 주당 노동시간을 줄이니 가짜노동이 줄고 효율성이 개선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요. 그리고 주당 근무시간이 25시간을 넘으면 노동자의 인지 능력이 떨어져 능률이 더 떨어진다고 해요. 덴마크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주 4일근무제를 하고 있는데 생산성이 훨씬 더 개선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_가짜노동에 시달리는 한국 노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덴마크에선 열린 자세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도움이 됐습니다. 단적으로 덴마크에서는 가짜 노동 해시태그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지면서 가짜 노동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이를 통해 사람들이 '혼자가 아니었구나'란 사실을 깨닫고 서로 경험을 나누기 시작했어요. 이것이 덴마크의 가짜노동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인들도 노동 효율에 대한 문제를 성역처럼 대하지 않으면, 변화를 더 잘 이끌어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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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현 기자 here@hankookilbo.com
장수현 기자 jangsue@hankookilbo.com
전유진 기자 xxjinq@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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