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거대 양당의 양극화 문제를 대안 정당들로 고칠 수 있을까? 제3지대에 강력한 정당이 등장해 거대 양당을 견제하면 양극화를 줄여 한국 정치를 살릴 수 있다는 주장이 들린다. 4·10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출현한 개혁신당이나 그 밖의 군소 정당들이 내세우는 다당제 옹호론이다. 그러나 실제 정치 상황을 봐도 이론적으로 따져봐도 이 주장은 공감을 얻기 힘들다.
이번 선거뿐 아니라 근래 일련의 선거에서 매번 똑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기존 양당에서 비주류로 밀려 있거나 낙천한 인사들이 뛰쳐나가 새 정당이나 정치연합을 급조한다. 서로 어울리지 않고 심지어 정적(政敵)이던 사람들이 갑자기 손을 잡는다. 기존 양당 세력에 맞설 대안적 빅텐트라는 기치를 내건다. 그러나 오래 못 간다.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내분으로 쪼개지거나, 무당층을 흡수하지 못해 저조한 득표만 기록하고 선거 후 사라진다. 이번에도 '낙준연대'는 11일 천하에 그쳤다. 남은 제3, 제4 정당들도 여론의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제3지대 빅텐트가 사각지대 노숙 침낭으로 전락하는 전철이 답습될 것 같다.
왜 대안 정당은 매번 오래 가지 못할까? 여러 이질적인 사람과 세력이 오로지 정치생명 연장이나 정치지분 확보를 위한 전략적 계산 아래 임시변통으로 모이면 당연히 내분이 불거지고 단명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극소수의 밀실 운영, 소통·타협 실종 등 기존 정당과 똑같은 모습을 보이면 유권자가 호응을 보낼 리 없다. 설혹 거대 양당의 극단화에 맞설 중도의 국정철학을 세워 중도정당을 표방하고 열린 자세를 강조해도 선거 직전에 툭 나온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유권자는 사표(死票)를 던지지 않으려는 심리를 지니기 때문이고, 또한 기존 양당에 실망한 무당층·중도층일수록 정치 신념이 강하지 않아 표심을 세게 집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의석의 6분의 5를 1인 승자독식으로 선출하는 현행 소선거구제에서 필연적이다.
만약 중도정당이 기적처럼 오래 버티며 힘을 발휘하면 양극화를 막을 수 있을까? 이 역시 회의적이다. 중도정당이 기존 양당을 중앙으로 끌어들이기는커녕 오히려 양쪽 극단으로 더 밀어낼 수 있다. 기존 양당은 중도정당에 쏠릴 중도층은 아예 포기하고 각자 양극단의 집토끼를 잡는 게 이익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고 현행 제도를 갑자기 바꿀 수는 없다. 정치 갈등 속에 비례대표제 확대 등 제도 변화를 이뤄도 국정 혼란, 대의 왜곡 등 각종 폐해가 지속된다. 대안적 중도정당도 그렇듯이, 새 선거제도도 양극적 대결 정치의 해결책으로 마땅해 보이지 않는다. 결국은 기존 양당 체제의 체질을 개선해 중도정치를 촉진하는 길이 더 현실적이다. 양당이 집권 대결을 펼치며 각각 빅텐트로서 다양한 입장을 포용한다면, 양극단으로 경직되기보다는 중도층 호소 경쟁을 벌일 것이고 중도정치의 문화가 퍼질 수 있다. 중도란 기계적 중간이 아니라 나만 내세우지 않고 다양한 남도 인정하는 자세에서 나온다.
물론 이런 시나리오가 쉬울 리 없다. 양당 주류와 지도부의 열린 마음과 당내 비주류 정치인들의 인내와 긴 호흡이 필요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제3지대 정당이라는 수사로 포장된 정치인들의 자리싸움에 현혹되지 않고 기존 양당이 수권정당답게 평균적 국민을 중시하는지 지켜보고 판단하는 유권자의 냉철함이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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