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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시위와 파업

전공의 파업 후 첫 주말... 퇴짜만 놓는 '위기의 응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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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쉬는 날' 의료공백 여파 더 거세
간단한 응급처치만, '구급차 뺑뺑이'도
인턴·펠로·교수 가세 조짐... '3월 대란'
한국일보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 돌입 후 첫 주말인 25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병원을 찾은 내원객들이 응급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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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이 없어서 그냥 소독만 하고 나왔어요.”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응급실에서 남편을 부축해 나오던 임모(76)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임씨의 남편은 얼마 전 담도암 수술을 받았는데, 연결해 둔 배관이 주말 새 빠져버려 충남 서산에서 급히 달려온 길이었다. 그러나 관을 다시 연결하는 수술이나 치료는커녕 환부 소독 등 간단한 처치만 받고 병상을 비워야 했다. 임씨는 “관을 아직 꽂지 못한 채로 일단 집에 간다”며 한숨을 쉬었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엿새가 지났다. 전공의 전면 파업 후 맞은 첫 주말, 환자와 보호자들이 체감한 의료 공백 여파는 더 거셌다. 외래진료가 없는 탓에 서울 주요 병원 응급실마다 뛰어 들어온 환자로 넘쳐났지만, 손사래만 치는 병원 측 통보에 2차 병원 등 다른 병원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간단한 처치만..." 응급실은 개점휴업

한국일보

25일 구급차에 실려온 환자가 서울 한 대학병원 응급진료센터로 옮겨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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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찾은 서울 종합병원 곳곳에선 ‘간단한 처치만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고 돌아가는 환자들이 실시간 눈에 띄었다. 동작구 보라매병원에서 만난 윤모씨(79)는 낙상사고로 턱이 찢어진 손녀를 데리고 응급실에 왔으나 응급처치가 고작이었다. 윤씨는 “벌어진 상처를 봉합해 줄 의사가 없어 다른 데로 가라 하더라”며 “일요일에 문을 연 병원이 없어 응급실을 방문한 건데 정말 미치겠다”고 하소연했다.

응급실에서 퇴짜를 맞은 환자와 보호자는 갈 곳을 직접 수소문해야 했다. 그러나 이날은 대부분 병원이 휴진이라 휴대폰을 붙들고 발만 동동 굴렀다. 육종암 말기 환자인 남편이 전날 각혈 증상을 보여 보라매병원 응급실을 찾은 송모(67)씨는 “응급실에 최대 24시간까지만 머무를 수 있고, 입원도 안 된다고 해 다른 병원을 섭외하려는데 연락 닿는 곳이 없다”면서 “수술과 진료를 모두 받은 병원에서 입원까지 연결이 안 된 건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이날 낮 12시 기준 이른바 ‘빅5’ 병원(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의 일반응급실 종합상황판에는 모두 빨간색 불(사용 가능 병상 수 50% 미만)이 들어왔다. 삼육서울병원, 보라매병원 등 2차 병원 응급실 역시 경고등이 켜진 곳이 부지기수였다. 2차 병원인 영등포구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실 앞에도 ‘의료진 부족으로 진료대기가 길어질 수 있으니 가벼운 증상은 인근 병의원을 이용해 달라’는 공지가 붙었다.
한국일보

25일 서울 영등포구 가톨릭대여의도성모병원 응급실 앞에 '의료진 부족으로 진료 대기가 길어질 수 있으니 가벼운 증상은 인근 병의원을 이용해달라'는 공지가 붙어 있다. 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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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진료 거부’로 기본적 처치조차 받지 못하고 한참을 길 위에서 헤맨 환자도 있었다. 강북구에 사는 이모(81)씨는 이날 오전 당뇨병 환자인 남편과 함께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아 한 시간 가까이 구급차를 타고 떠돌았다고 한다. 이씨는 “평소 투석 치료를 받는 남편의 혈관이 오전 8시쯤 갑자기 터져 구급차를 불렀는데, 종합병원 2곳에서 거절당했다”며 “겨우겨우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오긴 했지만 두 시간 동안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상태가 나빠질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위기의 3월... 확산하는 의사 집단행동


날이 갈수록 의료현장이 마비 상태로 치달으면서 ‘3월 대란’설도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의대를 졸업하고 다음 달 전공의 수련을 위해 병원에 들어와야 할 신규 인턴들이 전국 각지 병원에서 속속 임용 포기 선언을 하고 있다. 여기에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메워왔던 전임의(펠로)가 이달 말 재계약을 갱신하지 않으며 병원을 이탈할 가능성, 수련 종료를 앞둔 4년 차 레지던트들이 전문의 취득 후 병원을 떠날 가능성도 불거진 상황이다.

최근엔 현장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던 일부 교수들마저 “정부가 전공의 처벌을 강행하면 (집단행동에) 동참하겠다”고 경고하는 등 강경 대응이 의사집단 전체로 번질 조짐도 뚜렷해지고 있다.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
서현정 기자 hyu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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