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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올해 방통고 졸업 82세 송준형씨 "이제는 나도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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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중앙고 방통고, 경기대 서예전공 입학
초등 졸업 70년 만에 고등학교 졸업장 받아
"건강하면 대학원 공부도..." 학구열 불태워
한국일보

경기대 서예전공에 입학한 송준형(82)씨가 붓글씨를 쓰고 있다. 아산=윤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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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장에 이어 대학 입학통지서까지 받으니 꿈만 같습니다."

충남 아산시에 사는 송준형(82)씨는 3월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송씨는 올해 경기대 파인아츠학부 서예전공에 합격, 입학을 앞두고 있다. 최근 자택에서 만난 송씨는 “학력을 말할 때 가슴이 아팠다. 배움에 한이 맺혔다. 이제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됐다"며 활짝 웃었다.

1943년생인 송씨는 또래 빈농의 아들들이 그렇듯 평생 가난으로 얼룩졌다. 송씨는 초등학교 졸업 후 고향 아산에서 부모의 농사일을 도왔다. 친구들이 가방을 메고 학교를 갈 때 송씨는 지게를 메고 논과 밭에서 흙을 파고 풀을 베었다. 그는 "친구들은 학교에 가는데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농사일만 했다. 친구도 없고, 외로워서 고향이 싫었다"고 유년시절을 회상했다. 17세가 되던 해 무작정 상경했다. 하지만 친척도 없고, 누구 하나 아는 사람이 없는 서울의 삶도 팍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방황 끝에 5년 동안 출가하기도 했다. 환속 후 타고난 눈썰미 덕택에 시계수리공으로, 미장공으로 일하며 돈을 모았다. 고정 수입이 생기면서 결혼도 했다. 송씨가 학교 대신 택한 곳이 서예학원이었다. 서예에 푹 빠져서 고된 미장일을 하고도 하루도 빠짐없이 학원에 갔다. 논어, 맹자 같은 한문 고전을 읽으며 비로소 배움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맛봤다. 그러던 중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학교에서 가져온 '가정환경조사'는 그를 자괴감에 사로잡히게 했다. 부모의 직업과 학력을 써낼 때 '초등학교 졸업'이라고 써야 했던 것. 송씨는 "논어, 맹자를 아들에게 설명했는데, 학력을 초등학교 졸업이라고 써낼 때의 심정은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어요."

그때 받은 충격으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가족을 부양하느라 좀처럼 정식으로 학업을 재개할 기회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18년 천안중학교에 방송통신중학교 과정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입학했다. 그가 76세가 되던 해였다. 손녀딸도 있고 자식들도 성장해 굳이 '학력'을 소개할 일은 없었지만, 초등학교 졸업만으로 여생을 보낸다는 건 자존심이 허용되지 않았다.

중학교 과정을 마치자마자 천안중앙고 부설 방송통신고에 입학한 송씨는 서예와 학교 공부를 병행하면서 배움의 한을 풀어 나갔다. 호사다마였는지, 그토록 원하던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 만할 즈음 위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송씨는 학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가족들과 선생님도 쉬는 것을 권유했지만 아파트 경비 일을 하면서도 한 학기도 쉬지 않았다. 대학 진학이라는 뚜렷한 목표 때문이다. 마침내 지난해 12월 21일 대학 '합격' 통지서를 손에 쥐었다. 송씨의 아내 김정자(75)씨는 "남편은 무엇이든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대학생활도 잘할 것"이라며 "졸업할 때까지 뒷바라지로 힘을 보태겠다"며 남편의 등을 토닥였다. 송씨는 "중국 남북조시대 때 서체인 육조체에 심취해 대학 입학까지 하게 됐다"며 "건강이 허락하면 대학원도 진학해 육조체를 완성하고 싶다"고 포부를 말했다.



아산= 윤형권 기자 yhknew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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