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버블 절정…디스코 불야성의 시대
"주가 최고치에도 호시절 못 느껴" 비관론도
23일 NHK는 주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던 1989년 버블 절정기 당시 상황을 톺아보는 기사를 보도했다. NHK는 "주가와 지가가 모두 급등해 일본 기업이 미국 명문 기업을 매수하는 등 재팬 머니가 시장을 석권하던 시기"라고 강조했다.
1989년 12월 29일 도쿄증권거래소의 모습.(사진출처=NH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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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은 일본의 연호가 60년간 지속된 쇼와에서 헤이세이로 바뀐 헤이세이 원년이다. 1989년 5월 2일 도쿄증권거래소 일부 상장기업의 시가 총액이 501조3664억엔(4426조7143억원)으로 처음으로 500조엔을 돌파했다. NHK는 "뉴욕증권거래소 시가총액이 3월 말 기준 343조522엔(3028조4499억원)으로 도쿄 시장이 큰 차이로 세계 1위를 달렸다"고 설명했다. 12월 29일에는 닛케이 평균주가가 3만8915엔(34만3600원)으로 과거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소니가 미국 영화사 '콜롬비아'를 사들이고, 미쓰비시 토지가 뉴욕의 록펠러 센터 인수를 발표하는 등 재팬머니의 위력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이에 청년 취업이 보장되고, 회사에서는 연 4회 보너스가 나오고, 밤에는 디스코장에 가고 지금은 비싸 엄두도 못 내는 택시를 웃돈을 주고 타는 일본 버블 경제가 시작됐다.
밤새도록 마시고 춤춰…열도 휩쓴 '디스코 피버'
쥴리아나 도쿄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사진출처=NH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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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나비 신문은 2017년 버블 시대에 추억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2030 젊은이들이 공유하는 추억은 도쿄에 위치한 대형 디스코장 '쥴리아나 도쿄'다. 1991년 개장해 1994년까지 영업했던 곳으로 당시 2000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회장이 컸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하도 몰려 서로 부딪히지 않고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당시 몸에 달라붙는 정장 원피스 차림을 뜻하는 '완렌 보디콘 패션'이 이때 유행했고, 쥴리아나 도쿄에는 이 완렌 보디콘 차림의 여성들이 이곳의 부채를 들고 신나게 디스코를 추는 모습이 도쿄 버블경제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떠올랐다. 일본 여고생의 춤 공연으로 유명해져 우리나라 '셀럽파이브'가 리메이크한 '셀럽이 되고 싶어'가 이 당시의 차림과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했다고 볼 수 있다.
10만원 흔들며 택시 부르고, 회사 접대비는 무제한
택시비가 비싸 택시 타는 것은 엄두도 안 낸다는 일본도, 버블 경제기에는 웃돈을 주고 부르기까지 했었다. 마이나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50대 남성은 "회사에서 택시를 자유롭게 탈 수 있는 택시 이용권을 100장 묶음으로 줬다"고 밝혔다. 다른 50대 남성은 "지나가는 택시를 세우는 데 1만엔(8만원)짜리를 들고 손을 흔들었다"고 밝혔다. FNN에서도 60대 남성이 "라멘 먹으러 택시를 타고 갔다. 다들 그랬으니까"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매일 1만엔을 내고 택시로 통근했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대부분 택시를 부담 없이 이용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회식이 끝나고 상사에게 거마비로 1만엔을 받았다는 응답도 있었다. 회사의 접대비는 무제한이었으며, 매스컴을 탄 레스토랑을 주말에 방문해 회사 경비를 펑펑 써도 문제 삼는 이가 없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보통 직장인 보너스는 월급의 2배로 책정됐으며 결산 상여나 임시 보너스 등 연 4회 이상 보너스를 받은 사람도 있었다. 회사 사원 연수도 해외로 갔다는 답변도 나왔다. 사람들은 주식과 부동산 투기에 열광했다. 아내는 매일 주식으로 수십만엔의 용돈을 벌고, 나는 돈이 넘쳐 매일 밤 디스코장에 갔다는 60세 남성의 답변, 그리고 친구가 1억엔( 8억8200만원)짜리 집을 사면 다음 날 3억엔(26억4800만원)에 사고 싶다는 연락이 오고, 고민 끝에 입주하지 않고 팔아버렸다고 밝힌 사람도 있었다.
청년 취업도 수월했다. 기업은 취준생들을 데려오기 위해 면접비, 접대 등 현금 살포에 나섰다.
버블경제 시기 1990년 10월 도쿄 신주쿠에서 택시를 타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출처=FN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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훅 꺼진 거품…주가 회복해도 비관론 여전
그러나 결국 과열된 주식과 부동산 시장은 1990년대 이후 붕괴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대지진, 옴진리교 테러 등의 각종 사건 사고가 연이은 쇼크로 작용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된 배경이다.
오랜 침체기를 겪은 탓에 닛케이 사상 최고치에도 불구, 언론은 마냥 웃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산케이신문은 "닛케이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해도 34년 전과 같은 호경기의 실감은 나지 않는다"며 "일본으로 들어오던 금융은 저출산 고령화, 기업의 글로벌화로 해외로 흘러갔고, 임금인상은 더욱 어렵게 됐다. 주가 강세가 경기에 직결되지 않는 경제 구조가 정착돼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가 급등의 혜택은 해외 투자자들이 많이 보게 되는 것"이라며 "주식을 보유한 일부 부유층이나 고소득자는 이득을 보겠지만, 일반 샐러리맨까지 수혜를 보기엔 어렵다"고 덧붙였다.
구마노 히데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현재 국내 기업의 주가는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을 반영하지 않게 됐다"며 "국내 경기가 나빠도 해외 수익성이 높아지면 주가는 상승한다. 버블경제 시기 일본 주가가 곧 경기를 의미했던 것과는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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